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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ro Jun 08. 2020

08. 쫄지마! 괜찮아!

꿈꾸던 유학생활의 현실

  4개월 간의 어학원 과정을 졸업하고, 입학 어학 조건을 충족시킨 나는 꿈에 그리던 유학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학생증을 받고 기뻐하던 순간도 잠시, 이후 신입생 오리엔테이션과 같은 첫 행사 참여 때부터 긴장된 시간이 이어지기 시작했다. 


  원래부터 숫기 없는 성격이라 낮도 가리고 사람들과 친해지기가 쉽지 않은 나였다. 그런 나에게 의사소통이 편하지 않는 상황에서의 뻘쭘함이란 말할 필요가 없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학생들은 나보다 한참 어린 친구들이었고, 삼삼오오 모여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어학원에 처음 들어갔을 때도 느꼈던 분위기이지만 이번엔 대상들이 원어민 학생들이라 말을 걸기에는 더 큰 용기가 필요했다. 


  한편으로는 우리말을 쓰는 우리나라에서도 나의 생각을 자신 있게 말하지 못했고, 누군가와 대화를 해야 할 때면 긴장되고 불편했으니, 영어로 말해야 하는 상황을 어렵고, 불편하게 느낀다는 것은 잘 못된 것이 아니고 너무도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생각은 나에게 묘한 용기를 불어넣어주고, 나를 무대뽀 정신으로 무장시켜주었다. 그 덕분에 나는 옆자리에 앉아있는 친구에게 먼저 말을 걸어 인사를 하고, 점심 식사 시간에는 담당교수님 옆자리로 가서 앉아 같이 식사를 했다. 


  하지만 겨우 몇 마디를 나눈 건 뿐이었고, 그 몇 마디 중에서도 말귀를 잘 못 알아들어 동문서답한 것도 있었고, 내가 물어본 말을 상대방이 알아듣지 못해 어색하게 웃으며 상황을 마무리한 순간도 있었다. 생각하면 자꾸 얼굴이 달아오르는 순간도 있었지만, 나는 그 긴장된 시간을 무난하게 잘 넘긴 나 자신을 다독여주고 싶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새삼 깨달았다. 다른 사람에겐 아무것도 아닌 일상이 나에겐 계속 긴장의 연속으로 다가올 것이라는 것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느낄 수 있었다.
그 긴장이 어느새 내 안에서 설렘으로 승화되고 있다는 것을...


  학기의 첫 주에는 선택과목을 정해야 했다. 친한 친구도 없었고, 교수님들에 대한 정보도 별로 없었기에 나는 홈페이지에 안내된 정보만 확인하고 관심이 있는 과목들 중에서도 익숙한 부분이 있고, 쉬울 것 같은 과목 위주로 수강신청을 했다. 담당교수님과 면담을 하면서 조언을 구하기도 했고, 담당교수님의 수업 위주로 수강할까도 생각해보았지만 나에게 생소한 분야라서 교수님께 말씀드리고, 다른 과목을 선택했다. CourseWork 석사 과정이라 가능한 일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같은 대학원 과정에 입학한 동기 학생 중 나와 같은 선택과목을 수강한 학생은 별로 없었지만 괜찮았다. 같은 과정에서도 친한 친구가 없었으니 잃을 것은 없었고, 오히려 다른 친구들을 더 많이 알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예상하지 못한 일도 있었다. 내가 선택한 과목 중 한 수업의 첫 시간 나는 좀 일찍 강의실에 도착했다. 강의실의 문은 잠겨있었다. 강의실 문으로 난 유리창으로 강의실 내부를 살펴보니 책상은 없고, 큰 테이블만 배치되어 있었다. 내가 보기에 그곳은 강의실이 아니었다. 잘 못 찾아온 것이 아닌가 하고 다시 확인해보았지만 분명 강의실 번호는 정확했다. 시간이 좀 지나니 학생들이 한두 명씩 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강의실 문은 열리지 않았다. 강의 시작 5분 전 교수님이 세네 명의 학생들과 같이 오시더니 강의실 문을 여셨다. 나와 같이 강의실 밖에서 기다리던 학생들은 교수님을 따라 강의실로 들어갔고, 테이블에 둘러앉았다. 


  교수님은 본인 소개를 하시고 수업에 대해 안내해주셨고, 학생들에게도 본인 소개를 시키셨다. 강의실에 들어와 있는 학생은 나를 포함해서 모두 8명. 알고 보니 그 수업은 강의식이 아닌 토론식 수업이었던 것이다. 교수님이 앞에서 설명해주시는 것 없이, 학생들이 주제에 대해 공부해와서 서로 토론하고 교수님은 그 토론을 진행하시고 필요하실 때 보충 설명을 해주시는 방식이었다. 그 사실을 알고 나는 빨리 수업이 끝나고 선택과목을 변경할 생각만 하고 있었다. 


  하지만 왠지 그 교수님이 마음에 들었다. 일단은 본인도 이민 오신 분이라 그런지 말이 빠르지 않아 말씀을 알아듣기 편했다. 자기 소개할 때 파악해보니 나와 비슷한 수준의 영어를 구사는 유학생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첫 시간에 간단한 나의 소개 이외에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지만, 소규모라 그런지 다른 학생들의 대화를 듣고만 있어도 소속감이 들었고 소통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해서 나는 토론식 수업을 피하지 않고 참여하게 되었고,


 그 수업에서 살아남기 위한 나만의 서바이벌 방법을 고민하게 되었다.


  수업은 미리 정해진 주제에 대해 한 명이 준비하여 발표를 하면 나머지 학생은 그 주제에 대해 자신이 공부한 내용을 공유하거나 발표자에게 질문하거나 하면서 토론을 이어가게 된다. 교수님은 중간중간 학생들이 잘 못 이해한 부분을 설명해주시거나, 학생들이 놓치고 있는 핵심을 질문하시면서 토론이 활발하게 이어지도록 진행하신다. 그러면서 학생들이 얼마나 열심히 토론에 참여하는지 그리고 참여하는 학생이 얼마나 공부를 많이 해왔는지를 평가하신다. 수업과 본인 소개를 했던 첫 시간 이후 본격적인 수업이 진행되었지만 나는 그다음 수업에서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나름 주제에 대해 열심히 공부를 해갔었지만, 토론에 참여할 수 없었다. 다른 학생들의 대화를 듣고 나의 발언을 준비하고 용기를 내어 말하려고 할 때쯤엔 또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었고, 타이밍에 맞는 주장을 할 수 없었다.


  그 수업은 3시간짜리 수업이었다. 3시간 동안 꿀 먹은 벙어리로 마음 졸이며 강의실에 앉아있는 것은 정말 고역이었다. 그다음 수업에서는 잘 해보리라 마음을 먹고, 더 열심히 준비해서 수업에 들어갔지만 2시간이 지나도록 나는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정말 이러다가 그 수업에서 "F"를 받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마음을 졸이고 있을 때쯤 교수님이 나를 보시며 말씀하셨다.


"너무 조용하게 있는 것 같은데.
혹시 주제에 대해서 공부해 온 것 있으면 말해봐"


  교수님도 F를 주시기엔 가슴이 아프실 것 같으셨는지 그렇게 기회를 주셨다. 모든 다른 학생들은 토론을 멈추고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가슴이 터질 것 같았지만,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머릿속이 하얗게 되었지만, 준비한 자료를 꺼내어 읽기 시작했다. 토론이 아니라 리포트를 읽는 것 같았지만 그때 나에겐 그게 최선이었다. 땀을 뻘뻘 흘리며 한 문단을 읽었더니, 교수님이 중요한 부분을 잘 설명해주었다고 칭찬해주셨다. 일단 한번 그렇게 말문을 열고나니 토론에 참여 가기가 덜 부담스러워졌다. 다른 학생의 말에 질문도 하고, 내가 조사한 부분들은 추가로 말해주기도 하면서 세 번째 수업은 성공적으로 잘 마칠 수 있었다.


  그 다음 수업부터 나는 나만의 전략으로 수업에 임했다. 토론이 시작되면 어떤 화제도 생기기 전에 가장 먼저 손을 들고 내가 준비한 내용들을 말했다. 일단 토론이 시작되면 끼어들 타이밍을 놓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이었다. 그렇게 선방을 날리고 나면 마음도 편해지고, 이후에 말하기도 더 편해졌다. 매일 토론에서 가장 먼저 말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화제는 내가 말한 부분으로 시작되었고, 토론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기회도 많아지면서 교수님과 다른 학생들에게 적극적인 참여자로 보이기 시작했다. 토론 수업을 무난하게 참여하다 보니 다른 강의형 수업이나 발표를 할 때도 주눅 들지 않고 자신 있게 참여할 수 있었고, 그렇게 나는 유학생활에 조금씩 적응하고 있었다.



간추린!

내가 경험한 캐나다 대학원 수업 방식


소수 토론 수업

10명 이내의 학생들이 각자의 주제를 맡아 발표하고 발표가 끝나면 해당 내용에 대해 토론하는 방식. 교수님은 주제를 선정해서 할당해주시고, 발표와 토론을 참관하시며 핵심 내용이 누락되지 않도록 토론을 진행하시고, 질문하신다.

 - 장점 : 소수 인원으로 진행되다 보니 교수님, 다른 학생들과 쉽게 친해질 수 있다.

              유학생 입장에서 듣기와 말하기를 하드 트레이닝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

              별도의 시험이 없어 시험기간에 부담을 덜 수 있다.

 - 단점 : 영어가 편하지 않는 경우 원어민 학생들의 토론에 끼어들기가 어렵다.

              토론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못해,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할 것에 대한 불안과 부담이 크다.

              수업시간 동안 늘 긴장과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 참여 전략 : 주제에 대한 발표가 끝나고 토론이 시작되면 가장 먼저 준비한 내용을 말한다.

                     토론 중간에 끼어드는 것에 대한 어려움을 극복하고 긴장을 풀 수 있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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