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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ro Feb 21. 2021

09. 살아남아야 한다.

유학생활 학과 공부 따라가기

  낯설었던 학교생활이 점점 익숙해져 가긴 했지만, 그렇다고 학과 공부를 따라가기가 수월한건 아니었다. 한국에서 학교를 다닐 때 배웠던 부분들도 있었지만, 졸업한지도 어느덧 10년이 넘는 시간이 흘러 기억은 가물가물 했고, 회사에서 보고서만 작성하며 보낸 시간들은 학과 공부에는 도움이 되지 못했다.


  학교 공부로 힘든 시간을 보내며, 내가 잘 버터낼 수 있을지, 졸업이 가능한 성적을 받을 수 있을지 의문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졸업을 못 할 경우 이후 계획된 나의 캐나다 생활은 모두 물거품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마음은 항상 무거웠고, 졸업을 못 할 경우 캐나다에 정착하기 위한 다른 방법은 없는지 찾아보게 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내가 꿈꿔 오던 유학생활의 낭만은 온데간데없고, 내 생애에서 가장 공부를 빡세게 하는 생활이 매일 이어졌다. 매주 밤을 새우는 날이 있었고, 주말도 없이 매일 학교 도서관에서 살다시피 했다. 일요일 오후에 가족들과 잠깐 근처 공원을 산책하는 것이 유일한 여가활동이었다.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얻겠다고 마흔의 나이에 이러고 있는지, 야근 없는 곳에서 가족들과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낼 기대를 했었는데 주말에도 쉴 여유가 없는 내 신세가 야속하기만 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회사 생활할 때의 우울증과 무기력함은 없었다. 불확실한 미래가 걱정되어 마음이 무겁기도 하고, 몸도 마음도 피곤하긴 했기만 내 안에 에너지를 느낄 수 있었다.


투혼 정도로 표현할 수 있는 깨어있는 나의 정신, 나의 의지였다.
진정한 나의, 나를 위한, 나에 의한 삶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서의 생활을 모두 버리고 여기서 이렇게 고군분투하고 있는 내 모습이 대견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이런 것이 진정한 나의, 나를 위한, 나에 의한 삶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내 안에서 빠져나간 나의 알맹이들이 다시 채워지며 잊고 있던 내 꿈을 찾아가는 느낌도 들었다. 그렇게 만감이 교차하는 나날들을 보내며 나의 유학생활의 첫 학기를 버텨가고 있었다.


  단기 석사과정이라 한 학기에 6과목을 수강해야 했고 평소에 제출해야 하는 과제가 많았다. 과제의 수준도 나에게는 버거운 적이 많았다. 어떤 수업에서는 첫 과제부터 난관에 부딪쳤다. 도대체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 몰라 답을 한 줄도 쓸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인터넷을 검색하고 도서관에서 책을 찾아도 보았지만, 제대로 과제를 풀 수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다음 수업 때 다른 학생들에게 물어보았지만 그들이 열심히 설명해주는 것도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네가 한 과제 좀 보여줘"라는 말이 계속 맴돌았지만 베껴 쓰진 않을지 의심하며 싫어할 것 같아 말을 꺼내지 못했다.


  그러다가 한 학생이 나에게 과제에 대해 설명을 해주며 자신이 한 과제를 꺼내 보여주었다. 그의 설명은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고 사진 찍는 것을 대신해 그의 리포트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기억하기 시작했다. 그의 설명이 끝나자마자 나는 나의 노트에 기억나는 부분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모두 기억이 나는 건 아니지만 최소한 키워드들과 개념은 기억이 났고 그걸로 추가적인 조사를 할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냥 잠깐 보여달라고 했어도 괜찮았을 것 같은데, 그때는 다른 문화에서 이상한 사람 취급받는 게 아닐까 두려웠고, 보여달라고 하기에 나름 자존심도 상했던 것 같다.


  그렇게 귀동냥, 눈동냥으로 얻은 내용으로 과제의 답을 작성하는데 밤을 꼬박 새웠다. 영어로 된 자료를 찾아 읽고, 정리하고 작성하는데 원어민 학생들보다 몇 배의 시간이 걸리는 것 같았다. 다른 학생들은 길어야 두세 시간 걸릴 과제에 나는 데여섯 시간이 넘는 시간을 투자해야 했다. 


  하지만 시험만으로 평가하지 않는 것이 좋았다. 시험아무리 공부를 열심히 해도 보지 못한 부분에서 문제가 제출될 수 도 있고, 그날의 컨디션과 상황에 따라 점수를 잘 못 받을 수도 있는 것에 반해, 과제는 아무래도 내가 시간을 투자하면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과목별로 매주 제출해야 하는 과제가 있었고 도시락을 두 개씩 싸들고 아침 일찍 학교 도서관에 가서 저녁 막차를 타고 집에 돌아오는 생활이 반복되기 시작했다. 그렇게 열심히 했지만 과제 점수는 그리 좋지 않았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서 과제를 들고 교수님을 찾아가게 되었다. 교수님이 어떤 부분이 이해가 되지 않는지 물어보셨지만 나는 한참을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다가, 그냥 전체적으로 설명을 좀 해달라고 부탁드렸다. 교수님은 과제의 답을 알려주지는 않으셨지만, 과제가 요구하는 지식과 풀이 과정에서 필요한 내용들을 넓은 범위에서 설명을 해주셨다. 


  안타깝게도 부족한 영어 실력 때문에 완벽하게 이해하진 못하고 추가적인 질문도 많이 하진 못했지만, 어떻게 해 나가면 될지에 대한 방향은 깨달을 수 있었다. 어느 정도 답안을 작성한 후 다시 교수님을 찾아가 내가 작성한 것이 잘 된 것인지, 수정 보완해야 할 것은 없는지 물어보았다. 교수님께서는 잘 적은 답안, 잘 못 적은 답안을 알려주셨고, 올바른 답을 작성하기 위한 팁도 알려주셨다. 


  교수님을 찾아뵙고 과제에 대한 질문을 하는 것은 과제의 답을 찾을 수 있는 방법이기도 했지만 교수님께 얼굴도장을 찍고 성실한 학생으로 보일 수 있는 좋은 방법이었다. 실제로 이후 과제부터는 나쁘지 않은 점수를 받을 수 있었다. 과제를 제출하면 교수님께서 평가점수와 함께 답안에 첨삭과 피드백을 작성해서 돌려주셨었는데 어떤 과제에서는 첫 채점 이후 수정테이프로 점수를 지우고 더 좋은 점수로 적어주신 적도 있었다. 늦깎이 유학생이 어렵게 공부하는 것이 안쓰러워 보이셔서 힘내라고 격려를 해주신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석사과정이라 시험도 대부분 서술형이었는데 그 부분이 정말 좋았다. 얼핏 듣기에 서술형 시험을 좋아한다고 하면 엄청 실력이 좋고 잘 난 체 하는 재수 없는 놈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사실 생각해보면 교수님이 학생 평가에 융통성을 발휘할 수 있는 시험이 서술형이다. 객관식 시험은 답이 A일 때 B를 선택하면 그냥 틀린 것이다. 교수님이 아무리 잘 봐주려고 해도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서술형 시험에서는 내가 준비한 내용을 주저리주저리 적어 제출하면 그 내용 중에서 교수님이 마음에 드는 부분이 있다면 점수를 잘 받을 수도 있는 것이다.


  시험공부를 하면서 나의 예상문제를 들고 교수님을 찾아가서 물어보고, 시험이 끝난 후에는 교수님께 이메일로 시험 점수가 좋지 않다면 리포트 등으로 만회할 기회를 달라고 부탁을 드렸다.

이 전에는 나의 성격 상 교수님을 찾아가서 모르는 것을 물어보고, 부탁의 메일도 쓰고 하는 일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한국에서 학창 시절을 보낼 때는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새로운 환경과 목표에 대한 절실함이 나를 바꾸어가고 있었다.


  기말고사가 끝나고 남은 과제들도 모두 제출한 후, 가장 큰 미션이 하나 남게 되었다. 한 학기의 프로젝트로 주어진 소논문의 발표를 하는 시간이었다. 발표 전날까지 밤을 새우며 나름 열심히 준비를 해갔지만, 발표가 시작되자 하는 절망에 빠지고 말았다. 다른 학생들의 수준은 정말 놀라웠고, 그들의 발표 앞에서 나는 한없이 작아졌다. 정말 심각하게 이 발표를 포기하고 나가버릴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하지만 졸업을 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는 일이었다.


  자신감이 있어도 많은 학생들과 교수님 앞에서 영어로 발표를 하는 일은 쉽지 않은데, 자신감이 바닥나고 절망한 상태에서 나는 정상적인 발표를 할 수 없었다. 교수님 뺨치는 수준의 내용과 무대 장악력을 보여준 다른 학생들과는 달리 나는 어눌한 영어로 강단 구석에서 고개를 떨구고 준비한 스크립트를 읽기만 하다가 내려왔다. 발표에서 기본적인 아이컨텍도 한번 하지 못하고, 준비한 내용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 것이다. 쥐구멍으로 들어가고 싶다는 게 이런 거구나 하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 하지만 그 경험을 통해 나는 이후의 웬만한 발표에서는 떨지 않는 맷집이 생겼다. 


그런 끔찍한 상황도 있었는데 이 정도야 아무것도 아니지.
그 최악의 경험이 일종의 발표 울렁증의 백신이 된 샘이었다.


  시험도 발표도 끝낸 후의 12월, 연말 기분에 들뜨기도 했지만 정말 신나는 것은 한 학기가 끝났고 나는 잘 버텨냈다는 것이었다. 제대로 누려보지도 못한 학교생활의 삼분의 일이 벌써 흘러가버린 아쉬움이 있을 만도 한데 그런 것은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힘든 첫 학기를 보낸 것이다.


  그 해의 크리스마스는 내 인생에서 정말 특별한 휴일이었다. 정말 오랜만에 몸도 마음도 편안하게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며 크리스마스 휴일을 즐겼다. 특별할 건 아무것도 없었지만 정말 힘들게 등산을 하다가 잠시 쉴 때의 그 꿀맛 같은 시간이었다. 크리스마스트리가 그렇게 이쁘고, 캐럴이 그렇게 감미로울 수가 없었다. 그리고 눈 덮인 주변 동네 집들의 크리스마스 장식들은 또 어찌나 아름답던지... 아직도 그 캐나다에서의 첫 크리스마스를 생각하면 가슴이 설렌다.


  꿈만 같던 크리스마스 휴일은 쏜살같이 지나가고, 두 번째 학기가 다가오고 있었다. 학교 학점이 펑크 나서 졸업을 못하는 악몽을 다시 꾸기 시작했다. 

하지만 한 학기를 잘 버텨낸 자신감이
내 안에서 조금씩 꿈틀거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간추린!

나에게 도움이 된 캐나다 대학원 과제 수행 팁


- 수업을 같이 듣는 학생 중 단짝 친구를 만들어 수업시간에 놓친 부분이나 과제들을 물어본다. 다른 학생에 비해 말투가 그리 빠르지 않고 또박또박 말해주는 친구가 자연스러운 커뮤니케이션을 이어나가는데 유리하다. 발이 넓어서 정보가 빠르고 다른 학생들에게 나를 소개해 줄 수 있는 학생이면 금상첨화.

- 여러 과목을 수강할 경우 스케줄 관리 앱을 이용하여 일정을 관리하고 과제 제출 기한을 놓치지 않도록 주의한다. 학생 전용 스케줄 관리 앱이나 학교에서 학생들을 위해 자체 제작한 다이어리가 도움이 된다.

- 과제의 마감 기한이 많이 남았더라도 주어진 날 전체적인 내용을 파악하고,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예상하여 구체적인 일정 계획을 세운다.

- 자주 교수님을 찾아가 소통한다. 과제나 시험에 대한 질문도 시기적절하게 하면서 얼굴도장을 찍는다. 부족한 면이 있더라도 성실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 중요하다.

- 이메일을 통한 질문 하여 답변을 받는 경우 구두설명을 듣는 것보다 내용을 좀 더 정확히 파악하기 유리하고 필요할 때 수시로 찾아볼 수 있어 좋다. 하지만 대부분의 교수님들은 바쁘셔서 그런지 이메일 질문에 상세한 답변을 보내주시지 않는다.

- 학부 수업을 수강하는 경우 TA(Teaching Assistant) 조교에게 질문을 하는 것도 좋다. 교수님에 비해 질문하기에 덜 부담스럽고 더 상세한 답변을 받을 수도 있다. 과제 평가를 조교가 하는 경우가 많으니 담당 조교에게도 성실한 이미지로 비치는 것이 좋다.

- 교수님이나 조교를 만날 때 오해를 살만한 물질 공세는 역효과가 될 수도 있다. 강의시간에 가지고 오시는 음료를 기억했다가 상담할 때 가지고 가면 훈훈한 분위기로 상담을 시작하는데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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