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은 ‘빚투’, ‘동학 개미’, ‘영끌’이라는 신조어가 사회를 뜨겁게 달군 해였다.(미주11) 빚을 내서 주식이나 부동산에 투자하던 당시 세태는 빚투라는 자조적 표현으로, 기관과 외국인 투자자에 맞서 국내 주식을 대거 사들이는 국내 개인 투자자는 동학 개미로, 영혼까지 끌어모은 대출로 부동산에 투자하는 청년의 행위는 영끌로 불렸다. 그런데 이 흐름은 반짝 등장했다가 사라지지 않고 2023년 지금까지도 소소하게 이어지고 있다. 보통의 직장인들에게 이제 이 단어들은 그다지 유별난 것도 아닐 터다.
투자에 대한 많은 관심은 언론 보도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2020년 1월부터 2023년 2월까지의 11개 전국 일간지(미주12) 기사에서 주식, 부동산, 집, 주택, 코인이라는 단어 중 하나라도 포함하고 있으면서 투자라는 단어도 함께 언급하고 있는 기사를 정리했다. 2020년 7월(1829건)과 2021년 3월(2006건)을 전후한 시기에 주식과 부동산 등에 대한 투자에 사회적 관심이 쏟아졌다는 걸 알 수 있다. 2022년과 2023년에 이르면 차츰 관련된 보도 수가 줄어드는데, 이는 금리 인상과 수출 감소 같은 경제 상황 변화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2020년과 2021년 사이에 거래된 부동산 규모에서는 확실히 열기가 느껴진다. 월별 주택 거래 통계의 변화를 살펴보면 관련 언론 보도의 수가 두 번째로 많았던 2020년 7월(22만 3118동·호)과 2020년 12월(21만 8696동·호)에 눈에 띄게 많은 거래가 이뤄졌단 걸 알 수 있다. 그리고 2020년과 2021년 사이의 불길이 지난 후, 관련 보도의 감소와 함께 주택 거래 역시 줄어들었다.
서울연구원에서 수행한 ‘2021년 서울청년패널조사’는 투자에 관한 일련의 관심이 서울에 거주하는 청년(만 18세에서 만 34세 내국인)에게서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 그 구체적인 모습을 보여 준다.(미주13) 이 보고서에 따르면 조사에 응답한 서울 거주 청년의 47.4퍼센트는 자산 형성을 위한 재테크를 하고 있으며, 이들은 주로 예금 및 적금(39.1퍼센트)과 주식 및 펀드(38.4퍼센트)에 투자한다. 부동산에 투자한다는 응답은 3.4퍼센트였다. 조사는 여기서 나아가 왜 재테크를 하는지도 묻는다. 응답자들은 재테크 목적의 1순위로 경제적 자유를 얻기 위함(28.7퍼센트), 주택 마련(24.3퍼센트), 생활비 마련(18.7퍼센트)을 꼽았다.
여기서 빚투, 동학 개미, 영끌 같은 투자 열풍의 중요한 단서가 발견된다. 적지 않은 청년들이 내 집 마련을 위해 투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조사에서 말하는 ‘내 집 소유’는 열악한 주거 환경, 보증금을 떼먹힐 위험, 잦은 이사 등, 집을 빌려 쓰며 겪는 어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꿈꾸는 내 집 소유와 다른 뉘앙스가 느껴진다. 주택 마련과 함께 재테크 목적의 1순위로 꼽힌 응답이 ‘경제적 자유와 생활비 마련’이란 걸 생각하면 투자의 목적으로서 내 집 소유는 주거의 안정보다는 풍족하고 윤택한 삶을 향한 소망과 더 밀접해 보인다.
이는 내 집 소유를 위한 투자가 풍족한 삶 또는 경제적 불안과 관련이 있다는 걸 의미한다. 물론 해석의 근거 자료가 서울에 거주하는 청년에 대한 조사라는 점에서 내 집 소유 목적의 투자 전부가 경제적 여유와 관련이 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보다 보편적 명제인지 확인하기 위해 간단한 국제 통계를 비교해 보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통계 자료를 활용해 국가별 지니 계수, 빈곤율, 국내 총생산GDP 대비 사회 복지 지출이 자가 점유율과 어떤 관계를 보이는지 산포도scatter plot를 그리고 그 위에 추세선을 표시해 봤다. 사회가 불평등할수록, 빈곤율이 높을수록, 복지 수준이 낮은 나라일수록 내 집 소유 욕구가 큰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비교 대상 국가는 복지 제도가 잘 자리 잡았다고 알려진 북유럽 및 서유럽 국가 다섯 곳(덴마크, 독일, 오스트리아, 스웨덴, 프랑스)과 이들보다는 좀 더 신자유주의 국가로서의 특성이 강하다고 알려진 영미권 국가 다섯 곳(뉴질랜드, 미국, 영국, 오스트레일리아, 캐나다), 그리고 우리나라로 선정했다. 이렇게 선정한 이유는 지니 계수 등과 자가 점유율의 관계가 복지 제도가 발전된 국가와 신자유주의 국가 사이에서 더 뚜렷한 차이를 보일 것이라 가정했기 때문이다.
결과를 보면 지니 계수가 매우 불평등하다는 걸 의미하는 1에 가까운 국가일수록 자가 점유율도 높다는 걸 알 수 있다. 빈곤율과 자가 점유율의 관계에서도 이와 비슷한 경향이 나타난다. 반면, 사회 복지 지출과 자가 점유율의 관계에선 국내 총생산과 비교해 사회 복지 지출을 조금 하는 국가일수록 자가 점유율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소득 불평등이 심하거나 빈곤한 사람이 많은, 그러나 사회 안전망은 취약한 국가에서 내 집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이 많다는 걸 보여 준다. 이런 통계들은 내 집 소유를 향한 강한 열망이 경제적 불안에서 비롯되고 있을 개연성을 드러낸다.
다만, 현상적 통계만으로 인과 관계를 단언할 순 없다. 제한적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우선, 한 국가가 보이는 경제적 불평등, 복지 제도, 내 집 소유 선호는 각 국가 안에서 오랜 시간에 걸쳐 만들어진 여러 가지 맥락이 첩첩이 쌓이고 연결돼 나타나기 마련이다. 심지어 이 글에서는 경제적 불안과 내 집 소유 선호의 관계가 더 잘 드러나도록 의도적으로 복지 제도가 발전된 국가와 신자유주의 국가를 비교했다. 단지 변수 사이에 어떤 일정한 관계가 나타난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함이다.
통계를 빌리지 않더라도 각자의 마음속에는 이미 답이 있다. 이 ‘헬조선’을 헤쳐나갈 최고의 무기 중 하나가 ‘내 집’이라는 점 말이다. 이 마음은 사회적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는 동기와 결합하기 쉽다. 몇 살이 될 때까지는 독립해야 하고, 또 몇 살에는 가정을 꾸려 자녀를 키워야 한다는 등 각자의 의지와 별개로 사회는 개인에게 어떤 역할을 기대한다. 사회가 요구하는 그때그때의 역할을 잘 수행하기 위한 탄환으로 우리는 경제적 여유를 원하고 그 동기의 끝에 집을 사기를 원하게 된다고도 볼 수 있다.
집을 사는 것은 어느덧 개인의 너무나 당연한 목적지가 됐다. 주거 불안이든 경제적 불안이든, 불안은 우리에게 본능적 거부감을 일으키는 감정이기 때문에, 여기서 벗어나고자 집을 사려는 심리는 자연스럽다. 그러나 한 가지 의문을 제기해 보고자 한다. 집을 사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모두가 귀 따갑게 들어왔을 터다. 그렇다면 경제적 불안에서 벗어나기 위해 집을 사려는 우리의 투자가 모두를 불안에서 벗어나게 해줄 수 있을까?
이 의문을 풀기 위해 소득별로 자산이 얼마나 형성되고 있는지 그 추이를 살펴보자. 내 집 마련이 모두에게 현실성 있는 목표인지를 반추하기 위해서다. 통계청, 금융감독원, 그리고 한국은행은 매년 우리나라 가구의 자산, 부채, 소득, 지출 등 경제적 삶을 조사한 ‘가계금융복지조사’를 발표한다. 이 조사의 로우 데이터를 활용해 가구원 수의 제곱근으로 나누어 균등화 처리를 한 경상 소득(미주15)을 5분위로 나누고 각 분위에 해당하는 집단이 보이는 순자산(미주16) 평균이 매년 어떻게 나타나는지 분석해 봤다. 그 결과를 보면 중간 소득 집단인 3분위와 가장 소득이 높은 집단인 5분위의 순자산 평균 차이가 2016년 2억 305만 원에서 2020년 2억 4535만 원으로 커졌음을 알 수 있다. 중간 소득 계층에 해당하는 사람은 무엇인가에는 투자를 해왔을 텐데,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최근 몇 년 동안 이들과 고소득 집단의 순자산 격차가 더 벌어진 것이다.
이런 자산 격차의 심화와 관련하여 한국도시연구소의 홍정훈 연구원은 흥미로운 지적을 한다. 영끌이라는 단어가 한창 지면을 메우며 부동산 투자에 관한 관심이 뜨거웠던 2020년, 그는 서울 아파트를 영끌로 살 수 있는 2030 세대가 누구일지 의문을 제기했다.(미주17) 홍정훈 연구원에 따르면, 2020년 상반기 서울 아파트의 평균 가격은 7억 6245만 원이고 정부가 발표한 2020년 기준 1인 가구의 중위 소득은 176만 원이다. 이 시기엔 집값의 최대 70퍼센트까지만 주택 담보 대출을 받을 수 있었다. 그는 이런 조건으로부터, 영끌할 수 있는 2030 세대는 정책 금리보다 높은 이자와 원금을 감당할 수 있거나, 자신 혹은 직계 존속의 자본으로 집을 살 수 있는 계층에 한정된다고 평가한다.
고소득 집단과 중간 소득 집단 사이에서 나타나는 순자산 격차의 확대, 그리고 2030 영끌 담론이 호명하는 청년 집단에 대한 문제 제기는 집을 사는 곳보다는, 사는 것으로 취급하는 접근을 되돌아보게 한다. 많은 이들은 경제적 불안에서 벗어나 어엿한 사회 구성원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집을 사려고 하지만, 통계가 말하는 사회 구성원의 문턱은 턱없이 높다. 만약 그 문턱을 넘어 가까스로 집을 소유하게 되면 집은 ‘사는 곳’으로서 주거 불안을 해결해 주고, ‘사는 것’이자 매력적인 투자처로서 경제적 안정을 제공해 줄 것이다. 내 집 마련의 동기인 주거 안정과 경제적 안정은 분리할 수 없는 하나의 목표처럼 보이기에 둘을 별개로 놓고 생각해 본 적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발상을 전환해 볼 필요가 있다. 이 두 가지 동기는 밀접하지만 엄밀히 말해 같은 것이라고는 할 수 없다. 주거 안정을 위한 내 집 마련은 집에 대한 소유권 확보로만 이룰 수 있는 게 아니다. 반면, 경제적 안정을 위한 내 집 마련은 집에 대한 소유권 확보를 전제하는 것이다. 집을 사는 곳이 아닌 사는 것으로 다루는 접근은 본질적으로 내 집을 소유해 자산화하는 전략이다. 집을 사서 경제적 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는 이유는 그 집이 사는 곳이기 이전에 자산으로 기능하기 때문이다.
집에 투자하여 이를 자산화하는 행위가 잘못됐다는 식의 가치 판단을 하려는 게 아니다. 내 집을 소유하기 위한 투자 행위의 결과가 정말로 우리에게 경제적으로 안정된 삶을 제공해 주고 있는지를 논하려는 게 목적이다. 앞서 살펴보았듯 관련 통계에 따르면 부동산 투자에 관한 관심이 높았던 지난 몇 년 동안 자산 불평등은 오히려 커졌다. 영끌하는 2030 세대가 누구인지에 대한 문제 제기에 힌트가 있다. 부동산 투자 열풍 속에서 실제로 집을 사서 자산을 불린 사람은 경제적 불안에서 벗어나려는 이가 아닐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2022년 이후 줄어든 주택 거래량 통계를 보건대, 주택 매매 가격이 오르던 2020년에서 2021년 사이에 자신의 소득에 비해 과도하게 많은 대출을 받아 집을 산 경우라면 2023년에는 내 집을 마련하고도 경제적 불안에 시달리고 있을지 모른다.
경제적 불안에서 벗어나기 위해 무언가에 투자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이 행위가 사회를 더 불평등하게 만들어 정작 모두의 불안을 키우는 악순환을 일으키고 있다면 어떤 결정을 내릴 것인가. 집을 사야만 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아, 빠듯한 벌이에 아껴가며 투자해온 결과가 더 팍팍한 사회라면 도대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 걸까? 어떻게 해야 주거 불안이든, 경제적 불안이든, 우리 가슴을 답답하게 하는 이 체증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미주11) 김혜지, 〈‘영끌·빚투’ 신조어로 한탄했다...경제학자 선정 올해 10대 경제뉴스〉, 《뉴스1》, 2020.12.26. https://www.news1.kr/articles/?4160761
(미주12) 경향신문, 국민일보, 내일신문, 동아일보, 문화일보, 서울신문, 세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겨레, 한국일보
(미주13) 김승연·변금선·김상일·오은주·김진하·김호기·박민진·박동화·임아름·박나리·이용호·이동준·조민서, 《2021 서울청년패널조사(1차)》, 서울연구원, 2022., 144-146쪽.
(미주14) 지니 계수는 Gini(disposable income, post taxes and transfers) 지표를, 빈곤율은 Poverty rate after taxes and transfers, Poverty line 50% 지표를, 사회 복지 지출은 Social expenditure-Aggregated data 지표를 활용해 구성했다. 지니 계수, 빈곤율, 사회 복지 지출, 자가 점유율은 가능한 한 2020년 자료를 수집했지만, 해당 연도의 자료가 없을 때는 해당 국가의 가장 최근 연도 자료를 수집했다(지니 계수: 독일 2019, 오스트리아 2019, 덴마크 2019, 프랑스 2019 / 빈곤율: 오스트리아 2019, 덴마크 2019, 프랑스 2019 / 사회 복지 지출: 오스트레일리아 2019, / 자가 점유율: 캐나다 2018, 독일 2019).
(미주15) 근로소득, 사업소득, 재산소득 등 정기적인 소득을 의미한다.
(미주16) 자산에서 부채를 뺀 값이다.
(미주17) 홍정훈, 〈“2030 영끌”에 대한 문제의식을 뒷받침하며〉, 《2020 서울청년학회 자료집》, 2020., 68-69쪽.
※ 이 글은 (사)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의 지원으로 작성한 글이라는 것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