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독립하여 살았던 방을 기억하는가. 아직 독립을 하지 않은 사람도 있겠지만, 보통은 부모님과 살던 곳에서 다른 지역으로 진학하거나 취업하며 첫 독립을 경험했을 것이다. 처음 맺는 주택 임대차 계약의 긴장감, 작지만 나만의 공간이 생긴다는 설렘, 힘든 이사 후 단칸방에 누워 낯선 천장을 보며 잠들 때의 생경함까지. 모든 독립은 풋풋하다.
2019년 《한국일보》의 이혜미 기자는 이런 단칸방과 관련해 흥미로운 보도를 했다. 서울 성동구의 한 대학 주변 원룸 건물 중 열 가구 이상이 사는 79채 건물의 건축물대장과 우편함·전기 및 가스계량기를 비교한 결과 65채(82.3퍼센트)가 불법으로 방을 쪼개어 임대 놓은 원룸이라는 것을 밝힌 것이다.(미주7) 기사는 조금이라도 월세를 더 걷기 위해 방을 다시 세 칸, 네 칸으로 쪼개어 임대하는 이런 현상을 들어 청년들의 곤궁한 처지를 이용한 ‘빈곤 비즈니스’라고 일갈한다.
대학가가 신쪽방촌으로 바뀌는 현상은 비단 서울 성동구의 한 동네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2020년 청년 주거 운동 단체인 민달팽이유니온과 더불어민주당 장경태 의원실 역시 서울 관악구의 원룸 건물 열 채를 표본 조사하여 열 채 모두 위반 건축물이라는 것을 확인했다. 이들에 따르면 그중 두 채는 그나마 건축물대장에 위반 건축물이라고 표시라도 되어있었다. 그러나 나머지 여덟 채 중 두 채는 위반 건축물 표시가 해제된 채였고, 나머지 여섯 채는 위반 건축물로 적발된 적도 없었다. 행정의 위반 건축물 단속을 피해 가며 불법으로 방을 쪼개는 등의 증·개축을 하거나 무단으로 용도를 변경해 주택으로 임대한 사례였던 것이다.
첫 독립의 추억 속 좁디좁은 방 한 칸이 탈법의 결과물이었을지 모른다는 점은 꽤 당황스러운 일이다. 오랜 과거의 이야기만도 아니다. 지금도 버젓이 매물로 올라와 누군가 살고 있을 방이다. 여기에 개인적인 기억을 하나 더 얹고자 한다. 위반 건축물 문제가 조금이나마 사회적으로 논의되었던 2019~2020년, 재직하던 직장에서 위반 건축물 실태에 관한 연구를 수행하게 돼 공인 중개사 한 분을 인터뷰한 적이 있다. 당시에는 인터뷰이의 요청으로 인해 공개된 글에 담지 못했지만, 위반 건축물이 공급되는 과정에 대해 알게 됐다. 이때 전해 들은 그들의 수법은 너무나 뻔뻔해 어이가 없었다.
어느 날 한 임대인이 인터뷰이를 찾아와 곧 원룸을 임대 놓으려 한다며 설계 도면을 보여 주었다고 한다. 원룸인데 커다란 방에 화장실이 두 개나 있어 왜 그런지 물었더니, 임대인이 말하길 그건 건축 허가를 받기 위한 도면이고 건물이 완성되면 방을 쪼개는 가벽을 설치할 예정이었다고 한다. 도면엔 방 하나지만 실제론 두 개의 원룸으로 임대를 놓으려는 것이다. 연구 보고서에 구체적인 기록을 남길 수 없던 비공식 인터뷰였고 전언이지만 위반 건축물을 세놓는 것이 하나의 비즈니스로 자리 잡았다는 것을 추정케 하는 이야기다.
불법으로 쪼개진 방 한 칸도 문제지만 주택 용도로 지은 공간이 아닌 데 집으로 임대하는 일도 부지기수다. 독립을 준비해 본 사람이라면 ‘근생’이라는 표현이 더 익숙할 근린 생활 시설을 공인 중개사에게 한 번쯤 소개받은 경험이 있을 듯하다. 이외에도 임차인에게는 주거 환경에 대한 여러 가지 기억이 있다. 반지하가 아닌데도 겨울이면 벽 한 편에서 스멀스멀 올라오는 곰팡이에 께름칙했던 기억, 이 집은 어떻게 지었길래 여름에는 에어컨을 틀어도 덥고 겨울에는 보일러를 틀어도 추운지 의아했던 기억, 제대로 된 온수가 나오지 않아 겨울철 고생했던 기억 같은 것들은 대표적인 임차인의 설움이다.
임차인이 처한 주거 환경 문제는 물리적 어려움에 그치지 않는다. 다시 위반 건축물 문제로 돌아가 보자. 임대인이 법을 어기고 집을 빌려주더라도 값싸면 좋은 거 아니냐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쪼개진 방이나 주택 용도가 아닌 방에는 원칙적으로 휴대용 인덕션 외에 제대로 된 조리 시설을 설치할 수 없어 임차인의 식생활이 열악해지기 쉽다. 주택 용도가 아니었던 만큼 화재 예방 시설 등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곳도 많다.
나아가 내가 사는 집이 공적 장부에 존재하지 않는 위반 건축물이라면 나의 재산권이 침해되는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하나의 방으로 건축 허가를 받은 뒤 두 개의 원룸으로 세놓은 집은 부동산 공부公簿인 건축물대장이나 등기부 등본에도 ‘하나의 방’으로만 등록되어 있을 수 있다. 예를 들어 그러한 하나의 방을 201호라고 하고 이를 임대인이 두 개의 방으로 쪼갠 뒤 각각의 현관문 앞에 201호와 202호라는 번호판을 달아 각각 임대를 놓았다고 하자. 이 경우 202호에 대해 임대차 계약을 맺고 입주하면 차후 문제가 생길 수 있다. 202호는 부동산 공부에 존재하지 않는 집이기 때문이다. 임차인은 이 방을 대상으로는 주택임대차보호법에 따라 보증금을 보호받을 수 있는 법적 권리인 ‘대항력’을 갖출 수 없다. 만약 임대인이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는다면 202호의 임차인은 보증금을 돌려받기 위한 법적 대응을 하기 어렵다.
이러한 재산권 침해는 사실 위반 건축물 거주자에게 한정된 이야기가 아니다. 집을 빌려 쓰고 빌려주는 과정에서 누구나 겪을 수 있는 문제다. 이와 같은 사안에 대해 법원까지 찾아가지 않고 갈등을 조정하는 제도로 주택임대차분쟁조정위원회라는 곳이 있다. 2020년 11월부터 2021년 8월까지 이 위원회에 접수된 분쟁 사건 현황을 보면 보증금 또는 주택의 반환에 관한 사건이 725건(43.6퍼센트)으로 가장 많았고,(미주8) 2022년 1월부터 2022년 12월까지는 160건(26.2퍼센트)으로 두 번째로 많았다.(미주9)
두 시기에 접수된 사건 건수의 수치 차이가 커 다소 신뢰성이 떨어지는 한계는 있다.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임차인의 문제뿐만 아니라 반대로 빌려준 집을 돌려받지 못한 임대인의 문제가 섞여 있기도 하다. 하지만 임대차 시장에서 상대적으로 갑의 위치에 있는 임대인보다 임차인이 주택임대차분쟁조정위원회에 찾아가는 경우가 많다는 걸 고려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이는 간접적이나마 집을 빌려 쓰는 사람이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해 고통받기 쉽다는 걸 보여 준다고 하겠다.
위반 건축물로 대표되는 열악한 주거 환경, 보증금을 둘러싼 재산권 침해, 월세와 보증금 인상을 두고 일어나는 다툼, 집에 크고 작은 하자가 생겼을 때 겪게 되는 수리를 둘러싼 갈등 등. 이 같은 문제를 보다 보면 많은 이들이 집을 빌려 쓰는 것에 관해 부정적 인식을 가지는 게 이상하지 않다. 각자에게는 하나의 경험이지만 실제 통계는 어떨까? 숫자로 보면 주거비에 대한 부담이나 주거 환경에 대한 의견 등을 보다 객관적으로 비교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상식과 다른 부분도 일부 발견된다.
국토교통부가 매년 발표하고 있는 주거실태조사의 2021년 로우 데이터raw data를 분석해 봤다. 지금 사는 곳에서의 거주 기간을 보면 월세 임차인(미주10)은 평균 3.15년, 전세 임차인은 평균 2.88년, 자가 점유자는 평균 10.5년 거주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전세 임차인의 거주 기간이 월세 임차인보다 짧다는 게 의외지만, 전체적으로는 자기가 소유한 집에서 사는 사람이 집을 빌려 쓰는 사람보다 한 집에서 더 오래 거주한다는 걸 알 수 있다. 당연히 임차인은 거주·이사에 대한 불안이 클 것이다.
지금 사는 집의 주거 환경에 대해서도 비슷한 모습을 보였다. 가구원 1인당 사용하고 있는 집의 전용 면적의 경우 월세 임차인은 평균 27.8제곱미터, 전세 임차인은 평균 30.8제곱미터, 자가 점유자는 평균 37.0제곱미터였다. 집의 견고함, 습기, 난방, 환기, 채광 등 구체적인 물리적 환경에 대해 1점(불량)에서 4점(양호)으로 표시하게 했을 때 역시 전월세 임차인보다 자가 점유자의 평균 주거 환경이 양호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같은 주거 환경 차이는 짧은 거주 기간과 더불어 임차인의 주거 불안을 무겁게 하고 있을 것이다.
주거비에 대한 부담은 어떨까. 지금 사는 집의 임차료나 대출금을 갚는 데 느끼는 부담을 1점(전혀 부담되지 않는다)에서 4점(매우 부담된다)으로 물었을 때 월세 임차인은 평균 2.95점, 전세 임차인은 평균 2.88점, 자가 점유자는 평균 3.00점을 보였다. 거주 기간에서와 마찬가지로 전세 임차인이 월세 임차인보다 주거비 부담을 덜 느끼고 있다는 점과 근소한 차이이기는 하지만 전월세 임차인보다 자가 점유자가 더 큰 부담을 느끼고 있다는 점이 눈여겨볼 만하다.
통계 수치를 정리해 보면 전반적으로 집을 빌려 쓰는 사람은 거주 기간과 주거 환경 측면에서 불안에 시달리지만, 주거비 지출에 대해서는 자기가 소유한 집에서 사는 사람이 더 큰 부담을 느끼고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고 하겠다. 대부분의 문항이 주관적 인식에 의존한 것이기에 제한적인 의미로 받아들이는 게 바람직하지만 주거 인식에 대한 대략의 경향성을 알 수 있다.
위반 건축물과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할 위험에 관한 이야기, 그리고 거주 기간과 주거 환경, 주거비 부담에 대한 몇몇 통계들. 각각이 우리 삶의 일면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사회 문제이기도 하다. 자가 점유자 역시 심리적으로 주거비 부담이 있음을 확인했지만 집을 빌려 쓰는 사람이 경험하는 여러 권리 침해와 주거 불안, 상대적으로 열악한 주거 환경을 보면 역시나 답은 하나다. 집은 사는live 곳이다. 빌려 쓰는 집은 우리 자신에게 아픔을 남기기에 우리는 집을 사려고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전혀 다른 층위의 고민으로 집을 사려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 역시 우리 자신들의 자화상이다. 지금부터 할 이야기는 집은 사는buy 것이라고 말하는 이들의 관점이 담긴 내러티브다.
(미주7) 이혜미·이정원·권현지, 〈[대학가 新쪽방촌] ‘숨이 턱턱’...4가구 건물 쪼개 40가구가 산다〉, 《한국일보》, 2019.10.31.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201910221295328427
(미주8) 국토교통부·법무부, 《주택임대차분쟁 조정사례집 2021.12》, 2021., 21쪽.
(미주9) 국토교통부, 《주택임대차분쟁 조정사례집 2022.12》, 2022., 17쪽.
(미주10) 보증금 있는 월세, 보증금 없는 월세, 사글세, 연세, 일세를 포함한다.
※ 이 글은 (사)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의 지원으로 작성된 글이라는 것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