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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집덕후의 연구원룸 Jun 28. 2024

임대 사업의 초상

    거주의 안정성과 환경이 만드는 임차인의 선택 변화 관점에서 눈을 돌려 임대인의 입장에 서보자. 아무런 혜택 없이 임대인이 집을 오래 빌려주고 집의 환경을 꼼꼼히 관리하도록 만들 수 있을까? 실제로 이런 문제 때문에 2022년 국토교통부 장관은 2020년 개정된 주택임대차보호법에 대해 손질이 필요하다며 한 임차인에게 10년 동안 집을 빌려주는 임대인에게 보유세를 면제하는 등의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방안을 주장했다.(미주144)

     

    일견 집을 빌려주는 사람과 집을 빌려 쓰는 사람 모두가 상생하는 좋은 방안으로 들린다. 이러한 방식으로 집을 빌려 쓰고 빌려주는 방식을 만들어 간 사례는 없을까? 미국의 뉴욕시는 보유세를 감면받거나 임대인이 대출에서 혜택을 받은 집 등을 지방 정부에 등록하도록 하고 있다. 이렇게 등록된 집을 빌려주는 사람은 앞서 살펴본 독일, 프랑스 사례와 비슷하게 자신이나 자기 가족이 그 집에서 살려고 하거나 임차인이 다른 임차인에게 피해를 주는 등 법에서 정한 이유가 아니면 집을 빌려 쓰는 사람을 내보낼 수 없다.(미주145) 이 중 일부 주택은 임대료 자체를 규제받거나 임대료를 올릴 수 있는 범위가 제한된다.(미주146) 뉴욕시에서 계약 해지와 임대료 인상률에 관한 규제를 받는 임대 주택은 2011년 기준으로 전체 임대 주택의 45.5퍼센트 정도라고 한다.(미주147)

     

    나아가 미국 연방 정부는 저소득층을 위한 임대 주택을 이러한 방식으로 제공하고 있기도 하다. 1986년에 도입된 ‘저소득층 주택 세액 공제(LIHTC·Low-Income Housing Tax Credit)’가 그 예다. LIHTC은 집을 빌려주는 사람이 15년 동안 의무적으로 집을 임대하고 그 집에 일정 규모의 저소득층이 살 수 있도록 하면 세금을 감면해 주는 정책이다.(미주148) 다만,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공공 임대 주택과 달리 LIHTC이 저소득층이 부담할 수 있을 정도로 저렴한지는 의문이 있다고 한다. LIHTC 주택을 빌려 쓰는 저소득층의 70퍼센트는 우리나라의 주거 급여와 비슷한 정책인 주택 바우처 등을 정부로부터 따로 지원받고 있기 때문이다.(미주149)     

    2020년 임대차 3법이라고 하며 계약 갱신 요구권 등을 도입한 것보다 이런 방식으로 주택 임대차 제도를 개선해 나가는 게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 수 있다. 사실 우리나라에도 집을 빌려 쓰고 빌려주는 데에 미국 사례와 같은 방식이 없는 건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 같은 제도를 임대 사업자 등록 제도라는 이름으로 운용하고 있다. 흔히 민간 임대 주택이라고 하면 임대 주택 중 정부나 지방 자치 단체, 한국토지주택공사와 같은 공공 부문이 빌려주는 집이 아닌 경우 전부를 떠올리기 쉽다. 그러나 엄밀히 이야기하면 민간 임대인에게 빌려 쓰는 집에는 공공 부문에 등록된 집과 그렇지 않은 집 두 가지가 있다.     


    임대 사업자 등록 제도는 집을 빌려주는 사람에게 재산세, 종합 부동산세, 양도 소득세 등 여러 세금을 줄여주는 대신 빌려주는 집을 지방 자치 단체에 등록하고 10년 동안 임대하며 임대료 인상을 제한받도록 하는 제도다. 집을 빌려주는 기간 동안 임대인은 임차인이 임대료를 3개월이 넘도록 내지 않거나 집을 고의로 부수는 등 법에서 정한 이유가 아니면 임차인을 내보낼 수 없다. 2021년 주택 소유 통계 자료와 2021년 주거실태조사 자료를 활용해 계산해 보면 우리나라에는 대략 734만 세대의 빌려 쓰는 집이 있다.(미주150)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임대 사업자 등록 주택은 약 104만 세대로 이는 빌려 쓰는 집의 14.2퍼센트다. 이러한 집과 공공 임대 주택을 제외한 나머지 임대 주택은 공공 부문에 등록되지 않은 채 빌려 쓰고 빌려주는 집으로 앞에서 논의한 주택임대차보호법이 적용된다.     


    우리 정부는 2017년, 임대 사업자를 등록할 때 받을 수 있는 세금 감면을 확대하여 이 정책을 적극적으로 장려했고(미주151), 그 결과 2019년에는 서울에서 집을 빌려 쓰는 사람의 17.3퍼센트 정도가 등록된 집에 살고 있을 정도로 그 수가 늘기도 했다.(미주152) 언뜻 보면 집을 빌려 쓰는 사람과 집을 빌려주는 사람 모두 윈윈하는 것 같지만 임대 사업자 등록 제도가 추진되던 당시에도 문제는 있었다.     


    무엇보다도 자기가 빌려 쓰는 집이 이 제도에 의해 등록된 집으로 10년 동안(미주153) 과도한 임대료 인상 없이 살 수 있는 집이란 걸 아는 임차인이 많지 않았다. 2019년에 진행된 한 표본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54.0퍼센트가 임대 사업자 등록 제도를 모르고 있었고, 해당 연구에서 아홉 명을 심층 인터뷰한 결과 등록된 집을 빌려 쓰는 사람(세 명)은 모두 자기 집이 그런 집이란 걸 모르고 있었다고 한다.(미주154) 이 같은 조사 결과는 정책의 실행뿐 아니라 그 홍보와 공시 역시 함께 고민돼야 한다는 걸 시사한다.     


    또한, 보유세를 활용해 올라가는 집값을 안정시키려고 할 때 임대 사업자 등록 제도가 여러 채의 집을 가진 사람이 세금을 피할 수 있는 제도적 공간을 마련해 집값 상승에 일조한다는 비판도 있다.(미주155) 팔려고 내놓아져야 할 집이 나오지 않는다고 해 이러한 현상을 흔히 ‘매물 잠김’이 나타났다고 한다. 일각에서는 2020년을 전후한 시기에 나타났던 집값 상승이 임대 사업자에게 과도한 세제 혜택을 주며 나타난 매물 잠김 때문이라 지적하기도 한다. 다만, 이 시기 집값이 오르는 데 영향을 줬을지도 모를 잠긴 매물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는 반론도 있다.(미주156)     


    잡음은 있지만 임대 사업자 등록 제도 역시 집을 빌려 쓰고 빌려주는 방식에 대해 우리가 생각지 못했던 지점을 드러낸다. 현재의 임대차 시장에서도 더 저렴하고 오래 거주할 수 있는 또 다른 시장을 형성하는 게 가능하다는 것이다. 미국 뉴욕시의 사례에서는 이러한 임대 주택 시장의 임대인에게 세제 감면과 더불어 빌려주는 집을 공급하는 데 드는 비용을 줄일 수 있도록 공공 부문이 대출을 지원하기도 한다.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집을 빌려주도록 유도하는 미국의 LIHTC 사례를 보면 이 시장은 우리에게 공공 임대 주택으로 익숙한 제도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임대 사업자 등록 제도와 미국 사례는 세부적인 쟁점은 차치하고라도 근본적인 의문을 낳는 부분이 있다. 집을 빌려 쓰는 기간을 늘리거나 임대료 인상을 낮추는 효과를 달성하기 위해 임대인에게 특별한 공공의 지원을 제공하는 게 정당한가 하는 의문이다. 앞서 살펴봤듯이 이러한 접근 대신 임대차 제도의 표준을 임대인과 임차인이 동등한 관계에서 협상할 수 있도록 제도화한 독일과 프랑스 같은 사례도 있다.     



    이러한 의문은 공공 부문이 집을 빌려주는 사람을 지원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사회적 가치를 생산하는 집을 대상으로 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문제 제기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세금을 통해 형성된 예산 등이 투여되는 공공 지원과 오랜 거주 기간 보장 및 임대료 인상률 제한을 맞바꾸기에는 저울의 균형이 맞지 않는 셈이다. 우리에게 공공 지원과 사회적 가치의 균형을 맞춘 집은 공공 임대 주택이라는 이름으로 좀 더 익숙하다.     

    주거 불안과 경제적 불안에서 벗어나고자 공공 임대 주택에 지원했다가 좌절한 이들이 많을 것이다. 저렴하게 오래 거주할 수 있는 묘안이지만 이 집이 나의 주거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느낄지도 모르겠다. 잠시 경험담을 접어 두고 집을 빌려 쓰고 빌려주는 임대차 제도 전체 틀 안에서 여러 나라의 공공 임대 주택에 대해 논의해 보자.     


    공공 임대 주택은 어떤 제도일까? 물론 깔끔히 하나의 문장으로 정리해 이야기하기는 어렵다. 여러 가지 주거 현상과 제도는 나라별로 다소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 차이에도 불구하고 주택 시장에서 좋은 품질의 집에 접근하기 어려운 사람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공공 부문이 지원하는 저렴한 집은 여러 나라에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다.(미주157) 우리나라의 경우 ‘공공 임대 주택’이지만 사실 이를 부르는 이름은 나라별로 다르다. 국제연합UN이나 OECD와 같은 국제 기구에서는 보통 이를 사회주택social housing이나 부담 가능 주택affordable housing 정도로 부르고 있다. 이 글에서는 이후 이러한 집을 ‘사회적 임대’라고 부르며 이야기해 나가도록 하려고 한다.     


    우리나라의 공공 임대 주택량이 국제 기준에 비해 적다니, 적절하다느니 하는 보도를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2020년 기준으로 전체 주택의 8퍼센트(170만 호·세대)가 공공 임대 주택인데(미주158) 이는 OECD에 가입한 나라의 평균을 상회하는 수준이다. 그러면 사회적 임대로 공급되는 집이 많은 나라에서 그 양은 어느 정도 될까? OECD에서 제공하는 자료에 따르면 2020년 사회적 임대가 가장 많은 나라는 네덜란드로 전체 주택의 34.1퍼센트를 차지한다고 한다. 이 밖에도 오스트리아, 덴마크, 영국, 프랑스 같은 서유럽과 북유럽 국가에 사회적 임대가 많았다.



    다른 나라의 사정과 비교해 보면 우리나라의 사회적 임대가 결코 적다고 이야기하기 어려워 보인다. 그런데도 내가 입주할 수 있는 공공 임대 주택을 찾기 어려운 이유는 뭘까? 우리나라보다 사회적 임대의 재고율이 두 배 넘게 많은 네덜란드, 오스트리아, 영국의 관련 제도를 살펴보자. 흔히 우리나라의 공공 임대 주택과 유사할 것이라 착각하기 쉽지만 이들 나라에서 운용하는 사회적 임대 제도는 전체 주택 임대차 제도의 관점에서 우리와 크게 다르다.    

 

    오스트리아와 영국의 사회적 임대는 대부분의 소득 계층이 입주를 지원할 수 있을 만큼 포괄하는 입주 대상의 범위가 넓은 것이다.(미주159) 네덜란드 역시 과거에는 입주 대상의 범위가 넓었으나 현재는 이를 다소 제한하고 있다. 네덜란드의 사회적 임대는 2013년을 기준으로 월 소득 432만 4000원 정도를 버는 사람까지 입주를 지원할 수 있었다.(미주160) 같은 해 우리나라 공공 임대 주택 중 하나인 국민 임대 주택에 입주할 수 있는 사람은 3인 이하 가구를 기준으로 월 소득 314만 4000원(전년도 도시 근로자 가구당 월평균 소득의 70퍼센트) 정도를 버는 사람(미주161)이었다. 네덜란드의 1인당 국민 총소득GNI(2013년 기준 5만 2980달러)이 우리나라(2013년 기준 2만 6980달러)보다 큰 걸 고려하면 현재 네덜란드의 사회적 임대가 포괄하는 입주 대상이 우리나라의 경우보다 넓다고 하긴 어렵겠다.     


    관련하여 2020년 작고한 스웨덴 웁살라대학교 짐 케메니Jim Kemeny 교수의 주택 임대차 시장 유형 연구를 살펴보면 좋을 듯하다. 짐 케메니 교수는 주택 임대차 시장에 크게 두 가지 유형이 있다고 봤다.(미주162) 사회적 임대와 민간 임대 주택 사이에 차이가 작아 두 집이 하나의 시장에서 같이 작동하는 단일 임대 시장과 사회적 임대와 민간 임대 주택 사이에 차이가 커 두 집이 서로 다른 시장으로 작동하는 이중 임대 시장이 있다는 거다.     


    단일 임대 시장을 보이는 나라에서는 사회적 임대가 민간 임대 주택과 비교해 충분한 경쟁력을 확보해 집을 빌려 쓰는 시장 전체에 저렴하고 좋은 품질의 집이 공급될 수 있다고 한다. 그 결과 집을 빌려 쓰는 것과 집을 소유하는 것 사이에 차이가 작아 자가 점유율이 낮은 모습이 나타난다. 반면, 이중 임대 시장을 보이는 나라에서는 사회적 임대가 저소득층만을 위한 집으로 공급되고 그 외 계층은 집을 소유하는 방식으로 내 집을 마련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오스트리아는 충분한 사회적 임대 양을 바탕으로 집을 빌려 쓰는 시장 안에 다양한 소득 계층을 포괄하는 단일 임대 시장을 보인다고 할 수 있다. 참고로 짐 케메니 교수는 영국을 비롯한 영미권 국가들은 이중 임대 시장을 보인다고 했다. 이는 1980년대 이후 영국 정부가 지방 정부 소유의 사회적 임대의 상당 물량을 입주자에게 매각하도록 하며 사회적 임대의 규모가 줄었고, 또 영국의 자가 점유율이 네덜란드, 오스트리아와 비교해서 높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할지라도 영국의 사회적 임대는 우리나라의 공공 임대 주택보다 그 양이 훨씬 풍부하며 더 다양한 계층을 포용하고 있다.     




    오스트리아와 영국, 그리고 과거 네덜란드의 사회적 임대 같이 넓은 범위의 소득 계층을 포괄하며 저렴하게 오래 거주할 수 있는 집이 많다면 어떨까? 주택 임대차 계약상 권리와 의무에 관한 제도 변화와는 별개로 집을 빌려 쓰는 사람의 내 집 마련 선택지가 다양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사회적 임대가 민간 임대 주택과 대등하게 경쟁할 수 있는 시장을 형성할 수 있었던 동력은 무엇일까? 그 동력으로는 당연히 사회적 임대를 공급해온 오랜 역사와 노력을 가장 먼저 언급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들의 사회적 임대에서 나타나는 조금 더 단편적인 특징 하나에 주목하면 어떨까 한다. 바로 누가 사회적 임대를 공급하고 있는가하는 문제다.     

    네덜란드, 오스트리아, 영국의 사회적 임대를 운영하는 주된 사업자는 집을 빌려줘서 얻는 수익을 배당하지 않고 사회적 임대 사업에 재투자하는 비영리 혹은 이익 제한 민간 사업자라는 공통점이 있다.(미주163) 우리 사회에서 집을 빌려주는 사람을 생각하면 주로 이윤을 목적으로 하는 민간 임대인이나 한국토지주택공사와 같은 공공 주택 사업자를 떠올리기 쉽다. 풍부한 사회적 임대를 가진 나라에서는 우리가 흔히 떠올릴 수 있는 두 가지 유형의 임대인 사이에 있는 또 다른 임대인을 활용해 사회적 임대를 공급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현상이 나타난 건 이들 나라에서 강력한 국가 관료제가 자리 잡기 이전인 19세기 말부터 협동조합 운동이나 사회 개혁 운동 차원으로 민간이 사회적 임대를 자발적으로 공급하기 시작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러면 비영리 민간 사업자에게 사회적 임대를 빌려 쓰는 것은 공공 주택 사업자나 이윤을 추구하는 민간 임대인에게 집을 빌려 쓰는 것과 비교해 어떤 장점이 있을까? 일단 우리나라의 공공 임대 주택 정책이 맞닥뜨리고 있는 여러 문제를 완화할 수 있다는 점이 하나의 강점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2020년을 기준으로 공공 임대 주택의 80.4퍼센트 정도를 한국토지주택공사 혼자 운영하고 있을 정도로(미주164) 사회적 임대 시장이 사실상 독점 시장에 가깝다. 물론 사회 구성원이 적정량의 사회적 임대를 이용할 수 있도록 보장해 줄 필요가 있다는 걸 고려하면 공기업이 독과점으로 이를 공급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이러한 논리에서 2021년 서울시장은 사회적 임대는 공기업이 직접 공급하면 되는 일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미주165)     


    그러나 이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전국의 공공 임대 주택을 사실상 하나의 공기업이 독점 방식으로 공급하다 보니 저렴하고 오래 거주할 수 있는 집이 필요한 지역보다는 단순히 공급이 쉬운 곳에 더 많은 임대 주택이 공급되는 문제가 발생했다. 고령 사회로 접어들며 인구 구조가 변화하고 개개인의 삶의 방식이 다양해지면서 사회적 임대에 대한 수요도 다양화되고 있는데 독점 공급으로는 이와 같은 사회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하기도 어려웠다. 실제로 수요자의 주거 소요와 공급 주택의 특성 간 불일치로 인해 청년, 신혼부부 공공 임대 주택인 행복주택의 평균 계약률이 2022년부터 2023년 8월까지 48퍼센트 밖에 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미주166) 이런 문제에 주목해 일부 연구자들은 사회적경제 주체가 우리나라의 사회적 임대 사업에 참여할 수 있도록 장려하고(미주167) 공공 임대 주택 정책의 추진을 지방 자치 단체 중심으로 전환하는 분권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하기도 한다.(미주168)   

  

    그렇다고 사회적 임대를 짓고 빌려주는 사람으로 이윤을 목적으로 하는 민간 임대인을 활용할 수 있을까? 이 지점에서 집을 빌려줘서 얻는 수익을 배당하지 않는 비영리 혹은 이익 제한 민간 사업자가 일반적인 민간 임대인과 비교해 가진 장점이 드러난다. 우리나라의 공공 지원 민간 임대 주택을 살펴보자. 공공 지원 민간 임대 주택은 임대 사업자 등록을 통해 공급되는 민간 임대 주택의 하나지만 공급되는 집의 20퍼센트에서 30퍼센트 정도는 주변 시세의 70퍼센트에서 75퍼센트 수준, 나머지 70퍼센트에서 80퍼센트 물량은 주변 시세의 95퍼센트 수준의 저렴한 임대료로 10년 동안 거주할 수 있는 집이다.(미주169)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2022년 기준으로 공공 지원 민간 임대 주택은 3만 994세대가 있다고 한다. 이 집은 임대 사업자 등록을 한 보통의 집에 비해 저렴하게 빌려 쓸 수 있다는 점에서 사회적 임대의 하나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주변 시세와 비교해 실질적으로 저렴한 물량은 최대 30퍼센트에 지나지 않는다는 한계가 있고(미주170) 물량 대부분은 주변 시세의 95퍼센트 수준 임대료다. 이 물량까지 사회적 임대로 보기는 사실상 어렵다.     


    사회적 임대가 적은 이유는 공공 임대 주택과 공공 지원 민간 임대 주택에 대한 공적 지원 차이 때문이다. 공공 임대 주택을 지어 빌려주는 공공 주택 사업자는 공공 지원 민간 임대 주택을 지어 빌려주는 민간 임대인보다 훨씬 더 저렴하게 땅을 사거나 빌릴 수 있고 대출도 더 오랜 기간 저리로 활용할 수 있다. 사실 공공 주택 사업자에게 민간 임대인보다 더 많은 지원을 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공공 주택 사업자가 빌려주는 사회적 임대가 훨씬 더 저렴하고 오랜 거주를 보장하기 때문이다. 또, 공공 임대 주택을 빌려준 대가로 수익이 생기더라도 공공 주택 사업자가 얻는 수익은 결과적으로 공공 부문으로 돌아가기에 공공 주택 사업자에게 지원된 정부 예산은 사익을 위해 전용될 가능성도 적다.      


    하지만 역시나 공공 주택 사업자만을 활용한 공공 임대 주택 짓기는 주거 소요와 공급 지역 및 공급 특성의 불일치 등 일정 부분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민간 임대인을 활용해 공공 임대 주택과 비슷한 임대료와 거주 기간의 사회적 임대를 공급한다고 해 보자. 이때 그 민간이 지원받는 정부 예산의 전용을 막기 위한 효과적인 장치가 이윤 배당 제한이다. 간단히 정리하면 사회적 임대를 위한 공공 지원은 그 집으로부터 얻는 수익을 나누지 않는 것과 교환 관계trade off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공공의 지원과 오래 거주 기간 및 임대료 인상률 제한을 교환하고 있는 임대 사업자 등록 제도와 비교하자면 임대인의 수익이 사회적 임대에 재투자되도록 유인해 추가적인 사회적 가치를 생산하는 것이다. 이 부분에서 비영리 혹은 이익 제한 민간 사업자는 일반적인 민간 임대인과 비교해 사회적 임대를 빌려주는 사업자로서 더 적합하다는 장점을 가진다.     

    공공 임대 주택 정도는 아니지만, 보통의 민간 임대 주택보다는 저렴하게 오래 거주할 수 있는 집을 짓기 위해 민간 임대인을 활용한 사례는 우리나라에도 이미 있다. 주변 시세와 비교해 70퍼센트에서 75퍼센트 수준으로 빌려 쓸 수 있는 공공 지원 민간 임대 주택 일부나 몇몇 지방 자치 단체에서 사회적경제 주체를 임대인으로 활용해 사회주택이라는 이름으로 공급하는 집이 그런 사례다. 이 사회주택은 UN이나 OECD 등에서 사회적 임대를 지칭할 때 사용하는 ‘social housing’ 개념과 비교해 다소 협소한 개념이라는 차이가 있긴 하다.      

    2022년 기준으로 공공 지원 민간 임대 주택은 약 3만 세대, 사회주택은 약 4000세대로, 2020년 170만 호·세대에 달한 공공 임대 주택량에 비하면 이 주택은 집을 빌려 쓰고 빌려주는 시장에서 매우 작은 영역이다. 더군다나 공공 지원 민간 임대 주택에서 그나마 사회적 임대로 분류할 수 있는 건 20퍼센트에서 30퍼센트 남짓이다. 사회주택을 공급하는 사회적경제 주체 중에는 보통의 민간 임대인과 달리 집을 빌려주고 얻는 수익을 배당하는 데에 일정 부분 제한을 받는 경우가 있다. 그 점에서 이들은 사회적 임대를 공급하는 사업자로 더 적합하지만 많은 집을 짓기 위한 자본이 부족하고 이윤을 목적으로 하는 보통의 민간 임대인에 비하면 경험도 부족하다. 그 결과 우리는 단일 임대 시장에 가까운 나라에서 살아가는 이들과 달리 사회적 임대를 이용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내 집을 소유하는 방식으로 내 집을 마련하는 선택을 하게 된다.    

 



    집을 빌려주는 사람과 관련해 임대 사업자 등록 제도부터 다른 나라의 사회적 임대에 이르기까지 여러 제도를 살펴봤다. 복잡한 정책적 논의지만 결국 임대차 시장에 좀 더 다양한 소득 계층을 포용하면서 저렴하게 오래 빌려 쓸 수 있는 집이 많아지면 내 집을 마련하는 우리의 방식도 변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상상이다.  

   

    누군가는 사회·경제적으로 더 어려운 사람들이 빌려 쓰기에도 공공 임대 주택이 부족한데 더 다양한 소득 계층이 빌려 쓸 수 있는 집을 이야기하는 게 맞는지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다. 보건복지부의 통계에 따르면 2021년 기초 생활 보장 수급자는 236만 명에 이른다고 하는데 2020년 우리나라 공공 임대 주택이 170만 호·세대 정도였단 걸 고려하면 타당한 지적이다. 심지어 이러한 공공 임대 주택에는 기초 생활 보장 수급자보다 소득이 높은 계층이 빌려 쓸 수 있는 집도 많다. 때문에 집을 빌려 쓰고 빌려주는 시장 안에 사회적 임대의 규모를 넓혀나가는 논의를 하는 데 있어서 이 집이 더 긴급히 필요한 사람에 대한 고민을 잊을 수는 없다.     


    그렇지만 사회적 임대가 얼마나 풍부한지 그리고 이 집이 포괄하는 소득 계층이 어느 정도인지는 우리 사회에서 내 집을 마련하는 방식과 밀접하다는 점에서도 여전히 중요하다. 내 집 마련이 내 집을 소유하는 방식으로 제한된 사회에서 사회적 임대는 더 작은 규모의 복지로 작동하기 쉬운 탓이다. 이때 저렴하게 오래 빌려 쓸 수 있는 집을 많이 짓기 위해서는 우리가 낸 세금을 활용한 공적 지원이 필요하다. 그렇기에 공적 자원을 납부하고 있는 사회 구성원 하나하나가 내 집을 마련하는 방식으로 사회적 임대를 빌려 쓰는 선택에 공감하지 않는다면, 이와 같은 논의는 말 그대로 다른 나라 이야기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국토연구원에서 2020년 주거실태조사를 활용해 추정한 바에 따르면 우리나라에는 394만 가구 정도가 공공 임대 주택을 빌려 쓰길 원한다고 한다.(미주171) 작다면 작고 크다면 큰 규모다. 또, 여기에는 이미 내가 공공 임대 주택에 입주하긴 어렵다고 좌절해 내 집을 소유하는 방식으로 내 집을 마련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빠져 있을 수 있다. 이들까지 포함하면 우리나라의 사회적 임대 시장이 변화하는 게 더 많은 사람의 내 집 마련 선택을 변하게 할지도 모른다.





(미주144) 최동수·정순구, 〈원희룡 국토 “임대차3법 중 갱신요구권-상한제 없애야”〉, 《동아일보》, 2022.6.30.  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20220630/114213209/1 

(미주145) 김제완·김남근·이강훈·김대진·이보드레, 《주택임대차 계약갱신제도에 관한 입법사례 분석 및 제도 도입 필요성에 관한 연구》, 2018., 18-33쪽.

(미주146) 김제완·김남근·이강훈·김대진·이보드레, 《주택임대차 계약갱신제도에 관한 입법사례 분석 및 제도 도입 필요성에 관한 연구》, 2018., 44-49쪽.

(미주147) 김제완·김남근·이강훈·김대진·이보드레, 《주택임대차 계약갱신제도에 관한 입법사례 분석 및 제도 도입 필요성에 관한 연구》, 2018., 33-34쪽.

(미주148) 진미윤·김수현, 《꿈의 주택정책을 찾아서: 글로벌 주택시장 트렌드와 한국의 미래》, 오월의 봄, 2017., 193-194쪽.

(미주149) 진미윤·김수현, 《꿈의 주택정책을 찾아서: 글로벌 주택시장 트렌드와 한국의 미래》, 오월의 봄, 2017., 196쪽.

(미주150) 통계청, 《행정자료를 활용한 「2021년 주택소유통계」 결과》, 2022.11.15., 강미나·박미선·이재춘·이길제·윤성진·조윤지·우지윤·이건우·허소영·전혜란·문소희, 《2021년도 주거실태조사-(일반가구) 연구보고서-》, 국토교통부, 2022., 60쪽.

(미주151) 관계부처 합동, 《집주인과 세입자가 상생하는 임대주택 등록 활성화 방안》, 2017.12.13.

(미주152) 윤성진·정용찬·김기태·정남진·조현준·권지웅, 〈민간등록임대주택의 현황과 문제점〉, 《서울도시연구》, 21(2), 2020., 1-22쪽. 

(미주153) 정부가 임대 사업자 등록 제도 활성화를 추진한 2017년에 임대인의 임대 의무 기간은 4년이나 8년이었다.

(미주154) 윤성진·정용찬·김기태·정남진·조현준·권지웅, 〈민간등록임대주택의 현황과 문제점〉, 《서울도시연구》, 21(2), 2020., 1-22쪽. 

(미주155) 박영환, 〈민경욱 “임대사업자 1년새 8만여명 증가… 매물잠김 집값 과열 우려”〉, 《뉴시스》, 2019.9.30. https://newsis.com/view/?id=NISX20190930_0000784545&cID=10401&pID=10400 

(미주156) 양영경, 〈임대시장 안정화 기여? 집값상승 주범?... 임대사업자, 퇴로 없는 토끼몰이에 ‘멘붕’〉, 《헤럴드경제》, 2020.7.9. http://news.heraldcorp.com/view.php?ud=20200709000467 

(미주157) Rosenfeld, O., 《Social Housing in the UNECE region: Models, Trends and Challenges》, United Nations, 2015, p.6. 

(미주158) 국토교통부, 《[보도자료] 공공임대주택 재고율 8% 수준(누적 170만호, OECD 평균) 달성, OECD 10위권, ‘2022년에는 200만호 재고 달성 전망》, 2021.9.1.

(미주159) 정용찬·진남영, 《주거·부동산 분야의 사회혁신 사례 및 사회적가치 창출 방안》, 경기연구원, 2021., 14-27쪽.

(미주160) 정용찬·진남영, 《주거·부동산 분야의 사회혁신 사례 및 사회적가치 창출 방안》, 경기연구원, 2021., 27-34쪽.

(미주161) 한국토지주택공사 서울지역본부장의 대리인 주택관리공단 서울등촌11관리소장, 《서울등촌11 국민임대주택 예비입주자 모집》, 2013.3.21.

(미주162) Kemeny, J., 《From Public Housing to the Social Market: Rental Policy Strategies in Comparative Perspective》, Routledge, 1995. (남원석, 〈2장_주택점유형태별 주거복지의 논리〉, 홍인옥·남기철·남원석·서종균·김혜승·김수현, 《주거복지의 새로운 패러다임》, ㈜사회평론, 2011., 46-72쪽에서 재인용)

(미주163) 정용찬·진남영, 《주거·부동산 분야의 사회혁신 사례 및 사회적가치 창출 방안》, 경기연구원, 2021., 14-34쪽.

(미주164) 국토교통부, 《2022 주택업무편람》, 2022., 375쪽.

(미주165) 방윤영, 〈오세훈 “사회주택에 사회적기업 필요 없어” 재구조화 시사〉, 《머니투데이》, 2021.9.13. https://news.mt.co.kr/mtview.php?no=2021091311194312652 

(미주166) 김동욱, 〈[단독]“청년은 방 한 칸에 살라”… LH행복주택, 절반은 계약 포기〉, 《한국일보》, 2023.10.11. https://v.daum.net/v/20231011043102979

(미주167) 김일현·진남영, 〈2장 공공임대주택, 누가 공급할 것인가〉, 봉인식·남원석, 《공공임대주택 이렇게 바꿔라》, 도서출판 학고재, 2021., 38-55쪽.

(미주168) 봉인식, 〈1장 공공임대주택 정책의 주체는 중앙정부인가 지방정부인가〉, 봉인식·남원석, 《공공임대주택 이렇게 바꿔라》, 도서출판 학고재, 2021., 17-37쪽.

(미주169) 《민간임대주택에 관한 특별법 시행규칙 [별표2] 〈개정 2022.12.30.〉 공공지원민간임대주택의 최초 임대료에 관한 기준(제17조의2 관련)》

(미주170) 그조차도 2022년 12월 민간임대주택에 관한 특별법 시행 규칙이 개정되기 전에는 주변 시세의 85퍼센트 수준의 임대료로 빌려 쓸 수 있는 집이었다.

(미주171) 이길제·우지윤, 〈소득수준과 생애단계별 공공임대주택 필요가구 현황 및 시사점: ‘2020년 주거실태조사’ 결과를 중심으로〉, 《국토이슈리포트》, 54, 2022., 1-28쪽.


※ 이 글은 (사)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의 지원으로 작성한 글이라는 것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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