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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집덕후의 연구원룸 Jun 21. 2024

집을 빌리는 세계 속 사람들

    조금 이상하게 느껴질지도 모를 질문을 해 보려 한다. 내 집 마련과 내 집 소유는 같은 걸까? 눈치챘겠지만 이 책에선 내 집을 마련하는 것과 내 집을 소유하는 것을 구분하여 서술해 왔다. 마련이라는 단어가 반드시 소유권을 가진다를 의미한다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다르게 이야기하면 주거 불안이나 어느 정도의 경제적 불안에서 벗어나는 내 집 마련은 꼭 집에 대한 소유권을 갖는 방식으로 이뤄지는 건 아닐 수도 있다.     


    우리나라에서 집을 빌려 쓰는 사람(임차인)은 한 번 계약할 때 2년 동안 거주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받고 추가로 집을 빌려준 사람(임대인)에게 한 번 더 계약을 갱신할 것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받아 최소한 4년 동안 한 집에서 거주할 수 있다. 이 동안 임대인은 임차인에게 5퍼센트가 넘는 임대료 증액을 요구할 수 없다. 누군가는 우리나라의 주택 임대차 제도가 집을 빌려주는 사람이 가진 재산권에 대한 과도한 침해라고 생각할 수 있고, 또 누군가는 이 정도로는 불안해서 어떻게든 집을 사려고 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이처럼 한 제도에 대한 각자의 생각이 다르다면 다른 나라의 제도와 비교해 볼 필요가 있다. 다른 나라에서 나타나는 주택 임대차 제도는 어떨까? 2020년 독일의 베를린시 의회가 2014년 이전에 지은 집의 임대료를 5년 동안 동결하는 법안을 통과시킨 적이 있다.(미주122) 독일 헌법재판소는 독일 연방 정부가 2015년부터 임대료 인상률을 규제하는 임대료 멈춤 정책을 시행한다는 것을 이유로 2021년 4월, 베를린시 의회의 임대료 동결법에 제동을 걸었다.(미주123) 하지만 이런 방식으로 주택 임대차 제도를 운용할 수 있다는 게 우리나라에도 알려지며 많은 이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줬다. 독일은 어떤 나라기에 우리나라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제도를 시행하는 걸까?     


    독일에서 집을 빌려 쓸 때는 기본적으로 기간을 정하지 않고 계약을 맺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미주124) 다만, 임대인이나 그 가족이 빌려준 집에 거주하려고 하거나 임차인이 계약상 의무를 심각하게 위반하는 경우 등 법에서 정하고 있는 이유가 있을 때 이를 해지할 수 있다. 이때 임대인과 임차인 간에 임대료를 얼마나 올릴지 합의되지 않았다는 건 법에서 정하는 계약 해지 사유에 포함되지 않는다. 즉, 임대인이 올리고 싶은 만큼 임대료를 못 올렸다고 계약을 해지할 수는 없는데 이게 독일 제도의 핵심 중 하나다. 임대료를 인상하더라도 3년 동안 20퍼센트를 초과해서 올릴 수 없고, 최초 임대차 개시 시에도 지역에 따라서는 ‘지역 상례적 비교 차임’(미주125)의 10%를 넘지 않는 범위에서만 임대료를 정할 수 있다.(미주126) 그러다 보니 집을 빌려 쓰는 사람은 집을 빌려준 사람과 비교적 동등한 관계를 맺은 상태로 협상을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제도가 바탕이 되어 독일에서 집을 빌려 쓰는 가구는 2019년을 기준으로 53.9퍼센트에 달하고(미주127) 집을 빌려 쓰는 기간은 2017년을 기준으로 평균 8년에 달한다.(미주128) 2020년 인구 총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집을 빌려 쓰는 가구는 39.0퍼센트 정도이고(미주129), 2021년 주거실태조사의 로우 데이터를 활용해 분석해 보면 월세 임차인은 평균 3.15년, 전세 임차인은 평균 2.88년 동안 한 집에서 거주했다. 독일과 우리나라의 집을 빌려 쓰는 사람 규모와 빌려 쓰는 기간 차이는 주택 임대차 제도의 구체적인 내용에 따라서 집에서 거주하는 방식이 달라질 수 있다는 걸 보여 준다.     


    우리나라와 사뭇 다른 임대차 제도는 독일에서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또 다른 사례로 프랑스를 들 수 있다. 프랑스는 독일과 달리 임차인에게 3년 동안 거주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한다.(미주130) 참고로 법인인 임차인은 6년 동안 거주할 수 있다. 이는 기본적으로 2년의 계약 기간을 보장하는 우리나라의 제도와 비슷하다. 하지만 임대인이나 그 가족이 빌려준 집에서 거주하려고 하거나 임차인이 임대료를 내지 않는 등 법에서 정한 이유가 있는 게 아니면 집을 빌려 쓰기로 한 계약은 3년이 지난 뒤 갱신되는 게 기본이다. 우리나라의 제도와 비교하면 횟수 제한 없이 계약을 갱신할 수 있는 권리가 있어 사실상 독일의 제도와 비슷하게 작동하는 것이다. 또, 독일 사례와 비슷하게 집을 빌려 쓰는 임대료를 얼마나 올릴지 합의되지 않은 걸 이유로 계약을 해지할 수 없다.     




    집을 빌려 쓰기에 너무 유리한 사례만 본 게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 수 있다. 신자유주의적 특성이 강한 나라 중 하나인 영국의 사례도 보자. 2018년 영국 잉글랜드 지역의 80퍼센트를 차지하는 주택 임대차 계약 형태는 6개월 또는 12개월 동안만 거주를 보장하는 방식이다.(미주131) 이를 ‘보장단기임대차’라고 하는데 이 계약에서 집을 빌려준 사람은 집을 빌려 쓰는 사람에게 2개월 전에만 미리 통보하면 자유롭게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     


    2023년 우리나라에서 임차인이 한 번 계약에 2년 동안 거주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받고 또 한 차례 더 2년 거주할 수 있는 갱신 요구권을 가지고 있는 것과 비교하면 영국의 제도는 너무 가혹하다고까지 느껴지기도 한다. 다만, 영국에서 집을 빌려 쓰는 방식이 늘 이러했던 것은 아니다. 1997년 보장단기임대차가 도입되기 전에는 임대인이 빌려준 집에서 거주하려고 하거나 임차인이 임대료를 연체하는 경우와 같이 법에서 정한 이유가 있을 때만 계약을 해지할 수 있었다.(미주132) 심지어 임대인이 빌려준 집에서 다시 거주하려는 경우라도 임대차 개시 전에 그러할 예정이라는 걸 임차인에게 통지하도록 하기도 했다. 또한, 2016년 이후 스코틀랜드 지역에서는 보장단기임대차를 보완하여 집을 빌려준 사람이 그 집을 팔려고 하거나 개량하려고 하는 등 법에서 정한 이유가 아니면 주택 임대차 계약을 해지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미주133)     


    보장단기임대차 도입 이전의 제도나 스코틀랜드 제도에도 불구하고 영국 인구 다수가 거주하는 잉글랜드 지역에서 집을 빌려 쓰는 사람은 집을 빌려준 사람과 동등한 관계에서 협상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와 같은 환경은 영국에서 집을 마련하는 방식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OECD에 따르면 2020년 영국에서 집에 대한 소유권을 가진 가구는 67.3퍼센트에 달하며, 2016년에서 2017년 동안 일반적인 민간 임대 시장에서 집을 빌려 쓰는 영국 임차인의 거주 기간은 3.9년이었다. 다만, 같은 기간 동안 우리나라의 공공 임대 주택에 해당하는 영국의 사회주택 임차 가구의 거주 기간은 11.3년이었다.(미주134) 앞서 살펴봤듯이 2021년 우리나라에서 집을 빌려 쓰는 가구는 평균 2년에서 3년 동안 집을 빌려 쓰고, 2020년 자기 집을 가지고 거기서 사는 가구는 57.3퍼센트였다.(미주135) 독일 사례와 비교해 보면 영국과 우리나라 사람들은 집을 빌려 쓰는 사람에게 다소 불리한 주택 임대차 제도로 인해 내 집 마련을 소유의 방식으로 선택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주택 임대차 계약 기간이나 갱신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에 관한 제도는 집을 빌려주는 사람이 임대료를 마음대로 올리고 싶다고 집을 빌려 쓰는 사람을 내보낼 수 있는지와 관련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임대료 인상을 이유로 계약을 해지할 수 없도록 제도를 갖춘다면 우리는 집을 빌려 쓰는 방식으로 내 집을 마련하는 선택을 진지하게 고려할 수 있다. 독일 임차인이 누리는 8년의 거주 기간은 이에 대한 간접적 근거다. 재산권 침해라는 의견도, 그 반대의 의견도 존재할 수 있다. 정해진 답은 없다. 다만 다른 나라의 사례로부터 우리는 집을 빌려 쓰고 빌려주는 방식이 한 가지가 아니며 그 방식이 어쩌면 내 집을 마련하는 방식을 좌우할지도 모른다는 걸 알 수 있다.     




    집을 빌려 쓰고 빌려주는 제도에 관해 한 가지 더 함께 생각해 보자. 책 서두에서 왜 집을 사려고 하는지 고민하며 위반 건축물, 임차인이 거주하는 1인당 주거 면적 등으로부터 알 수 있는 주거 불안 문제에 관해 이야기했다. 우리나라에서는 2004년부터 정부 차원에서 최저 주거 기준을 설정해 시민들이 일정 수준의 품질을 갖춘 집에서 거주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1인 가구를 기준으로 14제곱미터(4.2평) 너비에 침실 1개와 부엌 1개를 갖춘 공간이 충분한지는 의문이다.     


    이조차도 법적 구속력이 없어 여전히 최저 주거 기준보다 열악한 환경의 집을 임대하는 게 가능하다. 그나마 다행인 건 2006년 16.6퍼센트에 달하던 최저 주거 기준 미달 가구가 2021년에는 4.5퍼센트로 줄어들었다는 점이다.(미주136) 그림자는 있다. 우리 사회 구성원들의 삶 전체로 보면 최저 주거 기준 미달 가구가 줄어드는 과정에서 더 열악한 집으로 내몰린 사람들이 생겨나기도 했다. 최저 주거 기준을 갖추지 못한 집이 재개발이나 재건축을 통해 개선될 때마다 그 임대료를 부담할 수 없는 사람들은 반지하, 옥탑방, 고시원, 쪽방, 비닐하우스와 같은 공간을 선택했다.(미주137) 이들의 주거 선택권은 좁아졌을 수 있는 것이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지워지는 주거 환경에 대한 논의다. 쪽방, 비닐하우스 등은 삶의 조건이 열악한 이들만 겪는 문제가 아니다. 집을 빌려 쓰기 위해 공인 중개사 사무소를 찾아갔더니 그곳에서 이 방은 원래는 집이 아닌데 부엌이랑 욕실이 다 갖춰져서 집이나 다름없다며 소개하는 방을 본 적이 있는가? 그렇게 빌려 쓰게 된 근린 생활 시설도 최저 주거 기준에 미달하는 경우가 많다. 조금이라도 넓고 값싼 집을 빌려 쓰고자 부동산 플랫폼을 뒤적이다가 겨우 찾은 1층의 집이 사실은 반지하 방이었던 경험도 다수일 것이다. 형편에 맞춰 지상층을 선택하자니 면적이 너무 좁아 하는 수 없이 반지하 방을 선택했다면, 이것이 시장에서 이뤄진 공정한 거래이자 계약이고 개인의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처럼 좋지 않은 환경의 집을 빌려 쓰다가 곰팡이나 벌레로 고통받거나 건강이 나빠졌을 때, 나아가 예상치 못했던 재산상 손해를 입었을 때 그 책임을 누군가에게 묻기도 쉽지 않다. 집을 빌려 쓸지 말지를 선택할 자유가 임차인에게 있었기에 이를 임대인 잘못이라 주장하는 건 어렵다는 통념도 있는 듯하다. 이처럼 우리 사회에서는 집을 빌려 쓰는 사람과 빌려주는 사람 모두 주택 임대차 계약에서 그 집이 좋은 주거 환경인지를 문제 삼지 않고 있는 걸로 보인다.(미주138) 2023년 6월 기준으로 대한민국 법원 종합법률정보 사이트에서 주거 적합성이나 최저 주거 기준과 관련된 법원의 판결이 있는지 검색해 보면 단 두 건뿐이다. 그 두 판례 역시 양도 소득세와 국민 주택 특별 공급과 관련된 사건이지 집의 환경 그 자체를 문제 삼은 건 아니었다. 법원의 이와 같은 판결 사례는 집의 환경이 낳는 문제에 대한 우리 사회의 낮은 관심을 보여 준다.     




    여기서 다시 다른 나라 사례와 비교해 보자. 미국의 주택 임대차 계약에서는 임대인이 임차인에게 빌려주는 집의 환경이 주거에 적합하다고 묵시적으로 보증한다고 본다.(미주139) 이러한 논리에서 미국의 법원은 빌려 쓰는 집이 주거에 적합하지 않다는 걸 임차인이 임대인에게 알리고 이를 보완할 기회를 적절히 제공했다면, 집의 좋지 않은 환경이 임차인의 건강과 안전을 해치는 정도에 이르렀을 때 임차인이 손해 배상 청구, 임대료 지급 거절, 계약 해지 등을 할 수 있도록 보장한다.  

   

    미국 법원 역시 임차인이 입는 거주 환경에서의 피해에 관한 임대인의 책임을 처음부터 인정한 건 아니라고 한다. 1901년 이미 뉴욕주에서 관련 법을 제정해 일정 기준을 갖추지 못한 집을 임대인이 임차인에게 빌려주지 못하도록 했고 이러한 규범은 미국 전역으로 퍼져 나갔지만, 미국 법원이 실제로 이를 인정해 주기 시작한 건 1970년대에 이르러서였다. 물리적으로 좋지 않은 집의 환경이 낳는 문제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에 대해 미국 사회가 보여 준 인식 변화는 앞서 임대차 기간의 논의와 비슷한 시사점을 준다. 집을 빌려 쓰는 방식에 있어 정답은 없으며 이는 얼마든지 사회적으로 변화시켜 나갈 수 있다는 점이다.    

 

    물론 해외의 다른 나라 사례를 우리나라에 곧바로 적용하는 건 만능 해법이 아니다. 2022년 8월 폭우로 인해 반지하 거주자들이 사망한 참사에 대해 서울시가 기존 반지하 주택을 향후 20년 동안 없애 가겠다고 발표하자, 당시 국토교통부 장관은 반지하도 사람이 사는 곳이라며 이분들이 현재 생활을 유지하며 이만큼 저렴한 집을 구하는 건 쉽지 않다고 지적한 바 있다.(미주140)     


    빌려주는 집의 환경을 일정 수준으로 높이도록 제도를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이러한 문제가 최대한 일어나지 않도록 고민하고 해결 방안을 모색하는 건 분명 필요하다. 예를 들어 장기 계획을 세워 좋지 않은 환경의 집을 줄이는 동시에 그러한 집을 빌려 쓰는 사람이 좋은 환경의 집으로 이사하도록 지원하는 것을 고려해 볼 수 있다. 미국 사례처럼 빌려준 집의 환경으로 인한 문제가 생겼을 때 집을 빌려준 사람에게 책임을 지워 차츰 임대하는 집의 환경을 개선하도록 유도하는 방법도 있다. 다만, 집을 빌려 쓰는 사람이 더 열악한 환경의 집으로 내몰리지 않도록 하는 건 해결해야 하는 과제지, 주택 임대차에 대한 지금의 제도를 유지할 이유는 아니라는 걸 잊으면 안 된다.     




    임대차 기간을 규정한 제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논란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집을 빌려 쓰는 사람이 보장받을 수 있는 거주 기간은 1981년 주택임대차보호법이 제정된 후 두 차례 변화됐다. 1989년에는 한 번 집을 빌려 쓰는 계약에 거주할 수 있는 기간이 1년에서 2년으로 늘어났고, 2020년에는 집을 빌려 쓰는 사람이 그런 2년짜리 계약을 집을 빌려준 사람에게 한 차례 더 요구할 수 있는 권리가 보장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우리 사회는 두 차례의 제도 변화를 전후해서 전세가가 오르는 걸 경험했다. 많은 이들에게 집을 오래 빌려 쓸 수 있도록 사회가 보장하는 게 오히려 내 집을 마련하는 걸 더 어렵게 한다는 인식이 뿌리 깊게 자리 잡을 수밖에 없었다.     


    다만, 이런 지적에 대해 몇 가지 다른 관점도 고려할 수 있다. 우선, 1989년 12월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 후에 전세가가 올랐다는 건 사실 관계를 왜곡한 측면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법이 개정되기 이전인 1987년 이미 전국의 전세가는 19.4퍼센트, 1988년에는 13.2퍼센트, 1989년에는 17.5퍼센트로 오르고 있었다는 게 핵심 반박 논리다.(미주141) 1990년에도 전세가가 16.8퍼센트의 상승률을 보였지만 1991년에 이르면 1.9퍼센트로 전세가가 안정되기 시작했다. 2020년 주택임대차보호법이 개정되는 시기에 나타난 전세가 상승과 관련해서도, 집을 빌려 쓰는 사람이 2년 더 거주할 수 있게 된 계약 갱신 요구권의 도입과 함께 그 이전부터 나타난 집값 상승, 공공 부문의 전세 자금 대출 보증 증가, 금리 인하 흐름을 고려해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또한, 2020년 이후 적어도 4년 동안은 큰 걱정 없이 집을 빌려 쓸 수 있게 되면서 그 권리를 유용하게 사용할 걸로 기대되거나 이미 사용한 임차인도 적지 않다는 걸 잊으면 안 된다. 분석을 쉽게 할 수 있도록 모든 임차인이 2022년까지 이사 가지 않고 한집에서 산다고 가정하고, 2020년 주거실태조사 로우 데이터를 활용해 2022년 시점에 계약 갱신 요구권을 가진 가구의 규모를 추정하면 대략 26.7퍼센트에 이르렀다.(미주142) 이는 당시 기준으로 1380만 명이 넘는 인원이다. 게다가 한국개발연구원KDI이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 시스템의 데이터를 활용해 분석한 바에 따르면 2022년 1분기에 서울에서 전세로 집을 빌려 쓰다가 계약을 갱신해야 하는 사람의 66.3퍼센트, 월세로 빌려 쓰다가 갱신해야 하는 사람의 44.5퍼센트가 계약 갱신 요구권을 사용해 주택 임대차 계약을 맺었다고 한다.(미주143)    

 

    이와 같은 논의는 집을 빌려 쓰고 빌려주는 방식을 둘러싼 쟁점이 그 자체로 현재의 주택 임대차 제도가 가진 정당성이나 앞으로의 개선 필요성을 뒷받침하는 건 아니란 걸 드러낸다. 오히려 현행 제도는 내 집을 마련하는 방식을 내 집을 소유하는 방식으로만 좁히는 문제를 일으키고 있을지도 모른다. 동시에 다른 나라 사례를 우리나라에 적용하기엔 걱정되는 몇 가지 지점에 대한 관점 차이는 그것을 논의하는 과정 자체가 하나의 과제라는 걸 보여 준다.     


    확실한 건 임대차 제도가 변화한다면 우리가 내 집을 마련하는 방식을 새롭게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엔 사회적 공감과 합의가 선행해야 한다. 2장의 말미에서 던진 질문을 조금 더 구체화해 보겠다. 과연 우리 개개인은 점유 중립적 수단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집에 대한 소유권을 가진 건 아니기 때문에 자산 증식은 보장받을 수 없지만, 주거 불안과 일정 정도의 경제적 불안에서는 벗어나게 해줄 수 있는 방식 말이다. 내 집을 소유했느냐 마느냐 같은 게 만들어내는 지위 경쟁에서 벗어나는 선택을 하려면 어떤 것이 보완돼야 할까?





(미주122) 강진구, 〈베를린 집주인들, 임대료 5년간 못 올린다... 월세 더 비싼 서울은?〉, 《한국일보》, 2020.2.11.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202001311631783679 

(미주123) 남은주, 〈독일도 높은 임대료 골머리... “임대료 상한제 강화” 목소리〉, 《한겨레》, 2021.8.31.  https://www.hani.co.kr/arti/economy/property/1009796.html 

(미주124) 김제완·김남근·이강훈·김대진·이보드레, 《주택임대차 계약갱신제도에 관한 입법사례 분석 및 제도 도입 필요성에 관한 연구》, 2018., 77-84쪽.

(미주125) 시정부가 임대인과 임차인의 이익을 대변하는 대표와 관련 연구 기관을 참여시켜 집의 환경, 집이 지어진 시기 등을 기준으로 2년마다 작성하는 표준 임대료표다.

(미주126) 법무부 법무심의관실, 《독일 국외출장 결과 보고》, 2020., 18-19쪽.

(미주127) OECD Affordable Housing Database,  https://www.oecd.org/housing/data/affordable-housing-database/ 

(미주128) 법무부 법무심의관실, 《독일 국외출장 결과 보고》, 2020., 10쪽.

(미주129) 통계청, 《[보도자료] 2020 인구주택총조사 표본 집계 결과: 가구·주택 특성 항목–1인 가구, 주거실태, 빈집-》, 2021.12.24.

(미주130) 김제완·김남근·이강훈·김대진·이보드레, 《주택임대차 계약갱신제도에 관한 입법사례 분석 및 제도 도입 필요성에 관한 연구》, 2018., 96-103쪽.

(미주131) 김제완·김남근·이강훈·김대진·이보드레, 《주택임대차 계약갱신제도에 관한 입법사례 분석 및 제도 도입 필요성에 관한 연구》, 2018., 158-160쪽.

(미주132) 김제완·김남근·이강훈·김대진·이보드레, 《주택임대차 계약갱신제도에 관한 입법사례 분석 및 제도 도입 필요성에 관한 연구》, 2018., 148-155쪽.

(미주133) 김제완·김남근·이강훈·김대진·이보드레, 《주택임대차 계약갱신제도에 관한 입법사례 분석 및 제도 도입 필요성에 관한 연구》, 2018., 160-169쪽.

(미주134) 김제완·김남근·이강훈·김대진·이보드레, 《주택임대차 계약갱신제도에 관한 입법사례 분석 및 제도 도입 필요성에 관한 연구》, 2018., 181쪽.

(미주135) 통계청, 《[보도자료] 2020 인구주택총조사 표본 집계 결과: 가구·주택 특성 항목–1인 가구, 주거실태, 빈집-》, 2021.12.24.

(미주136) 강미나·박미선·이재춘·이길제·윤성진·조윤지·우지윤·이건우·허소영·전혜란·문소희, 《2021년도 주거실태조사-(일반가구) 연구보고서-》, 국토교통부, 2022., 82쪽.

(미주137) 김영희, 〈주택임대차에서 목적물의 품질과 주거적합성과 최저주거기준〉, 《민사법학》, 88, 2019., 125-205쪽.

(미주138) 김영희, 〈주택임대차에서 목적물의 품질과 주거적합성과 최저주거기준〉, 《민사법학》, 88, 2019., 125-205쪽.

(미주139) 김영희, 〈미국법상 임대차주택의 주거적합성에 관한 연구〉, 《법사학연구》, 57, 2018., 339-386쪽.

(미주140) 정은주, 〈원희룡 “반지하 없애면 그분들 어디로 가나”... 오세훈과 엇박자〉, 《한겨레》, 2022.8.12. https://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1054600.html 

(미주141) 법무부, 〈현재 주택 임대차 시장 상황 1989년과 전혀 달라〉, 《대한민국 정책브리핑》, 2019.9.19. https://www.korea.kr/news/policyNewsView.do?newsId=148864837 

(미주142) 정용찬, 〈이대로 두면 큰일... 전세나 월세 사는 분 꼭 보십시오-주택임대차보호법 논란... 기둥 뒤에도 ‘국민’이 있습니다〉, 《오마이뉴스》, 2022.5.5.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831968&CMPT_ CD=P0010&utm_source=naver&utm_medium=newsearch&utm_campaign=naver_news 

(미주143) KDI, 《서울 임대시장의 갱신·신규 계약자료에 대한 분석》, https://public.tableau.com/app/profile/kdi.dna/viz/_16430853635030/1 


※ 이 글은 (사)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의 지원으로 작성한 글이라는 것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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