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살 수 있다면 가장 좋겠지만 그럴 수 없다면 우리는 빌려서 내 집을 마련해야 한다. 이때 가장 먼저 맞닥뜨릴 고민은 바로 월세냐, 전세냐다. 전세는 임차인(집을 빌려 쓰는 사람)이 집값보다 낮은 목돈을 임대인(집을 빌려준 사람)에게 맡기고 집을 빌린 후 집에서 퇴거할 때 그 돈을 돌려받는 방식의 계약이다. 월세는 임차인이 임대인에게 매달 임대료를 내고 집을 빌리는 방식의 계약이다. 월세 임차인은 집에서 퇴거할 때 돌려받는 약간의 목돈을 임대인에게 보증금으로 맡기기도 한다. 보통 집을 구하는 이들의 인식 속엔 자신이 매달 내는 월세와 대출 이자가 금리에 따라 얼마나 차이 나느냐, 혹은 굳는 돈이냐 없어지는 돈이냐의 차이로 인식되곤 한다. 다만 이것의 전제는 전세금이 안전할 때다.
2022년 말, 많은 임차인의 가슴을 덜컥 내려앉게 하는 사건이 세상에 알려졌다. 1000채가 넘는 집을 임대하고 있던 임대인이 사망하면서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한 피해자가 400여 명에 이른다는 게 보도됐다.(미주77) 뉴스에서나 볼 수 있는 남의 일이라 여겼던 문제가 ‘혹시 내가 당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 되는 데는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첫 보도를 시작으로 또 다른 전세 사기 피해도 연쇄적으로 드러났다. 전세 사기 문제는 단숨에 사회 문제로 떠올랐다.
전세 사기는 빌려준 집의 명의를 임차인 몰래 경제력이 없는 바지 임대인(명의 대여 임대인)으로 바꾸거나 임차인의 대항력이 생기기 전에 빌려준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는 등 임대인이 임차인을 다양한 방식으로 속여 발생한다. 대항력은 주택임대차보호법 제3조에 따라 임대인에게 전세금을 돌려달라고 요구할 수 있는 임차인의 권리다. KBS 탐사보도부가 연세대학교 염유식 교수 연구팀과 협력해 추적한 바에 따르면 전세 사기에 가담한 임대인은 전국적으로 176명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이들이 2021년 매입해 전세로 빌려준 집은 무려 8929채였다.(미주78) 2023년 10월 보도에 따르면 주택도시보증공사에서 운용하는 임대 보증금 반환 보증(보증금 보험) 가입자만 대상으로 해도 보증금 미반환 피해 금액이 2023년 한 해 동안 3조 7861억 원에 이를 걸로 알려져 많은 이에게 충격을 안겼다.(미주79)
이 밖에도 2022년 이후 집값과 전세가가 내려가면서 충분한 자기 자본 없이 집을 빌려준 사람 중 2023년 계약 종료로 이사하는 임차인에게 전세금이나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흔히 말하는 ‘깡통 전세’ 혹은 ‘역전세’가 심각해진 것이다. 이를 반영하듯 임차권 등기 명령 건수는 2023년 1월 2081건에서 2023년 6월 4192건으로 증가했다.(미주80) 임차권 등기 명령은 전세금이나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채 이사해야 하는 임차인이 그 집에서 돌려받을 돈이 있다고 등기부 등본에 표시하기 위해 법원에 신청하는 제도다. 내 집 마련으로 주택 구매를 생각할 때 그 중간 다리로 생각했던 전세가 온 국민의 환상을 부숴 버렸다. 한두 푼도 아닌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하면 한 사람의 삶은 휘청거릴 수밖에 없다.
그러나 당장 내 집을 살 수 있을 정도의 경제적 여력은 없어 전세를 고려했던 사람들은 전세 이외에 뾰족한 수를 찾는 게 쉽지 않다. 전세 사기가 횡행함에도 전세가 무작정 임차인에게 불리한 계약 방식이라고만 이야기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 든다.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주거실태조사에서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주거 지원 프로그램 1순위를 꼽아달라고 물었을 때 2016년 이후 2021년까지 매년 첫 번째로 많이 꼽힌 정책은 주택 구입 자금 대출 지원이고, 두 번째로 많이 꼽힌 정책은 전세 자금 대출 지원이었다.(미주81)
물론 이런 선호는 전세가 임차인에게 유리한 임대차 계약 형태이기 때문만은 아닐 수 있다. 금리가 낮아 전세 자금 대출 이자가 매달 내는 월세보다 저렴해서일 수도 있다. 혹은 2020~2021년까지 전세가가 많이 올라 전세로 집을 빌려 쓰기 위한 대출을 지원받는 게 더 절실했을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주거실태조사의 수치는 전세 시장 상황이 바뀌면 얼마든지 집을 빌려 쓰는 사람의 선호도 바뀔 가능성이 있다는 걸 시사한다고도 하겠다.
전세는 정말 안전한 제도일까, 부동산 시장을 망치는 주범일까? 전세 사기 등으로 사회적 불안이 높은 지금, 우리는 전세 제도에 대해 다시 고찰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전세는 현재의 부동산 시장에서 좋든 싫든 고려해볼 수밖에 없는 선택지다. 결국 문제는 과연 전세로 주거 불안과 경제적 불안을 얼마나 덜 수 있느냐다.
깊이 있는 고민을 위해서는 전세를 둘러싼 이해관계를 살펴봐야 한다. 임차인은 왜 전세로 집을 빌려 쓰고 임대인은 왜 전세로 집을 빌려주는지 한 발짝 더 깊이 들어가 보자. 임차인에게는 전세로 집을 빌리면 월세로 집을 빌릴 때보다 적은 비용을 부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물론 목돈을 은행에 예금이나 적금으로 넣었을 때 얻을 수 있는 이자를 포기해야 하지만, 집을 빌려 쓰는 기간 동안 부담했을지도 모를 월세를 지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임차인에게 주어진 이와 같은 전략과 보상 조건 상황에 더해 우리 사회는 저렴한 이자로 전세금을 마련할 수 있는 전세 자금 대출을 확대해 왔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은행으로부터 대출을 받기 위해서는 신용이나 담보를 잡게 된다.(미주82) 이때 구체적인 담보물이 있는 게 은행의 위험을 더 많이 낮춰줄 수 있어 담보 대출의 이자가 신용 대출의 이자보다 낮다. 예를 들어 2023년 5월 예금 은행의 신규 취급액 기준 대출 금리를 보면 주택 담보 대출은 4.21퍼센트, 예·적금 담보 대출은 4.85퍼센트였지만 일반 신용 대출은 6.44퍼센트의 이자를 보였다.
그런데 전세는 집의 소유권을 갖는 게 아니라 담보를 잡을 게 없다. 그렇다고 개인 신용으로 대출을 받으면 이자 부담이 높아져 월세보다 저렴하게 집을 빌려 쓰기 위한 전세 임차의 목적을 달성하기 어려워진다. 그렇다면 전세 자금 대출은 어떤 구조로 이자를 결정하고 있을까? 일련의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우리 사회는 주택도시보증공사, 한국주택금융공사, SGI서울보증의 보증에 기초해 대출이 실행되는 전세 자금 대출을 발전시켜 왔다. 즉, 제3의 보증 기관이 개인의 신용이나 담보물을 대체하는 보증을 제공해 전세 자금 대출 이자를 낮춘 것이다. 실제로 2023년 5월 예금 은행의 신규 취급액 기준 전세 자금 대출 이자는 4.09퍼센트로 담보 대출 이자보다 낮은 수준이었다.
게다가 보증 기관이 대출을 위해 보증하는 금액이 커지면서 은행이 빌려주는 전세 대출금도 늘어 왔다. 한국주택금융공사는 2005년 전세 자금 대출을 위한 보증 한도를 6000만 원에서 8000만 원으로 늘렸고 2008년에는 1억 원에서 2억 원으로 두 배를 늘렸다. 2023년을 기준으로 주택도시보증공사와 한국주택금융공사는 최대 4억 원까지 전세 자금 대출을 보증해 주고, SGI서울보증은 최대 5억 원까지 보증해 준다고 한다. 상대적으로 유리한 금리 조건을 가진 전세 자금 대출 보증 한도가 꾸준히 확대되면서 사람들이 전세 자금 대출을 이용하는 규모도 늘었다. 그 결과 2012년 23조 원 정도였던 전세 자금 대출 잔액은 2021년 말 180조 원까지 증가했다.(미주83)
우리나라의 전세 자금 대출이 보이는 이러한 특징은 전세로 집을 빌릴 때 주어지는 전략 및 보상 조건과 상호 작용하며 임차인이 비용을 적게 부담하기 위해 월세보다는 전세를 선택하게 했다고 보인다. 다만 어디까지나 전세 임차인이 누리는 이와 같은 혜택은 상술했듯 빌린 집에서 이사할 때 임대인으로부터 전세금을 안전하게 돌려받을 수 있다는 걸 전제로 작동할 수밖에 없다. 2023년 사회 문제로 떠오른 전세 사기와 깡통 전세 문제는 집을 빌려 쓰는 사람에게 유리한 것만 같았던 기존의 구조를 흔들고 있다.
그렇다고 이런 문제가 횡행하기 이전에 전세로 주택 임대차 계약을 맺는 게 임차인에게만 유리할까 하면 그렇지도 않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전세로 집을 빌려 쓰고 빌려주는 계약이 성립하는 건 그 계약의 목적물인 전셋집에 한해서라도 임차인과 임대인의 이해관계가 일치했기 때문이다. 오늘날 임대인 입장에서 전세로 집을 빌려주는 건 적은 자기 자본으로 집에 투자할 수 있는 유용한 수단이다. 흔히 이야기하는 ‘갭투자’에 전세금을 활용할 수 있는 거다.
예를 들어 3억 원짜리 집이 있고 그 주변의 전세 시세가 2억 7000만 원이라고 하자. 이때 전세 임차인을 끼고 그 집을 사면 집에 투자하는 사람은 자기 자본금으로 3000만 원만 있으면 된다. 이후 이 집의 매매가가 올라 3억 3000만 원이 되었다고 가정하면 집에 투자한 사람은 임차인이 이사할 때 전세금을 전부 돌려줄 수 있는 건 물론이고 심지어 3000만 원을 추가로 벌어 투자 수익률 100퍼센트를 누릴 수 있다.(미주84) 이처럼 전세금이 자산 투자를 위한 무이자 차입 자본으로 활용되고 갭투자가 높은 투자 수익률을 만드는 것에 주목해 일부 연구자는 전세금이 레버리지 효과(미주85)를 가진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한편, 전세는 부동산에 투자하는 사람이 집에 투자할지 말지를 결정하는 지표로 활용되고 있기도 하다.(미주86) 이런 투자 전략은 흔히 아파트 투자에서 이용되고 있다. 아파트값이 일정 기간 떨어지고 나면 사람들은 지금 아파트를 샀다가는 손해를 볼 수 있다고 생각해 아파트를 매매하기보다는 전세로 빌려 쓰려고 한다. 이렇게 전세 수요가 늘어남에 따라 전세가도 오르게 되는데 이때부터 공인 중개사 사무소 현장에서는 특이한 현상이 나타난다고 한다.
보통 전세가는 매매가를 넘을 수 없어 매매가 대비 전세가 비율이 90퍼센트에 달할 정도로 전세가가 오르면 전세가 상승이 멈추리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이런 생각과 달리 공인 중개사 사무소 현장에서는 오히려 전세가가 매매가가 떨어지는 걸 떠받쳐 주면서 매매가가 되살아나는 걸 쉽게 찾아볼 수 있다는 것이다. 자산으로서 집에 투자하는 사람은 아파트 전세가와 아파트 매매가가 가진 이런 관계에 주목해 전세가와 비교해 매매가가 낮게 평가된 집을 찾아 투자하는 전략을 취한다. 그 집은 곧 매매가가 상승할 것이라 예상되기 때문이다. 다만 이러한 전략을 활용할 때도 주변 신도시에서 비슷한 시기에 아파트를 대량 분양하여 역전세가 나타날 때는 부동산 경기에 따라 전세가가 매매가를 떨어뜨리는 쪽으로 기능할 수도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이처럼 전세를 둘러싼 임차인과 임대인의 이해관계를 보면 전세가 비용 부담 측면에서 임차인에게 도움이 될 수는 있지만, 자기 자본이 거의 없는 임대인에게 전세금이라는 목돈을 맡기는 건 꽤나 위험천만한 일이라는 걸 알 수 있다. 게다가 전세로 집을 빌려 쓰는 게 집값이 내려가는 걸 떠받친다는 점에선 전세 임차인이 많은 게 결과적으로 더 많은 사람들을 내 집 소유를 위한 스프링복의 달리기에 밀어 넣는 일이 된다. 달리는 저 너머로 끝없는 집값 상승이 있을지도 의문이고 그렇게 소유하게 된 내 집이 나의 주거 불안과 경제적 불안을 덜어줄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전세가 낳는 이와 같은 다양한 쟁점은 2022년 전세 사기 문제를 맞닥뜨리며 전세 제도를 없애거나 개선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논의로 이어졌다. 일각에서는 우리 사회에서 전세의 수명이 다한 것은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온다. 반면 또 다른 사람들은 현실적으로 전세가 사라지면 그만큼 월 임대료가 올라 집을 빌려 쓰는 사람의 부담이 높아질 것이라 우려한다. 게다가 만약 전세가 시장에서 매력이 없으면 자연히 사라질 것이기에 정부가 인위적으로 없앨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미주87) 우리 정부는 2024년까지 진행될 국토연구원의 관련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공론화 과정을 거쳐 전세 제도 개편을 모색할 계획이다.(미주88)
전세는 낮은 비용 부담으로 고위험을 감수해야만 하는 계륵인 걸까? 관련해서 전세에 대한 한 가지 오해를 짚고자 한다. 흔히 전세는 전 세계적으로 보기 드문 우리나라만의 제도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의 전세처럼 임차인의 목돈을 임대인에게 맡기는 계약 방식이 보편적인 경우가 드물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이를 진실이라고 하긴 어렵다. 미국의 루이지애나주, 스페인, 프랑스, 아르헨티나 등에서는 전세와 유사한 방식의 주택 임대차 제도를 법으로 인정하고 있다. 게다가 인도의 일부 지역과 볼리비아에서는 전세와 같은 방식으로 집을 빌려 쓰고 빌려주는 사례가 확인되기도 한다.(미주89)
또, 관점을 바꿔 전세의 구조를 다시 바라보면 유사한 형태의 내 집 마련은 더 늘어난다. 전세는 부동산 임대 사업을 위한 돈을 융통하는 수단으로서 임차인에게 목돈을 받는 구조다. 우리나라의 공공 임대 주택에 해당하는 오스트리아의 이익 제한 주택을 공급하는 사업자는 사업 운영을 위해 총사업비의 5퍼센트에서 10퍼센트 정도를 ‘입주자 지분tenant equity contribution’이라는 목돈으로 받는 경우가 있다.(미주90) 집을 빌려주는 사업자에게 입주자 지분을 많이 맡긴 사람은 그만큼 월 임대료를 낮출 수 있다고 한다. 매달 임대료를 조금 내기는 하지만 상대적으로 큰 목돈을 임대인에게 보증금으로 맡기는 우리나라의 반전세와 유사하다. 다만 계약 종료 시점에서 차이가 있다. 빌려 쓰던 집을 돌려주고 이사할 때 임차인은 집의 감가상각을 반영해 매년 1퍼센트를 공제한 금액으로 돌려받는다.
또한, 주택 협동조합의 조합원이 돼 마련하는 집에서도 전세금과 비슷한 성격의 목돈을 입주자가 부담하고 있다. 협동조합은 조합원의 사회·경제적 소요를 충족시키고자 조합원들이 자발적으로 만들어 공동으로 소유하고 민주적으로 운영하는 ‘사업체’다.(미주91) 협동조합은 사업 운영을 위해 조합원으로부터 출자금을 받아 자기 자본을 만든다. 출자금을 낸 조합원은 협동조합의 의사를 결정하는 데 참여하는 의결권을 가진 지분을 얻을 수 있는데 주식회사와 달리 조합원의 의결권 크기는 지분에 따른 차이가 없다.
이러한 협동조합의 운영 원리는 조합원의 집을 마련하는 걸 목적으로 하는 주택 협동조합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조합원은 집을 빌리거나 공동으로 소유하기 위해 주택 협동조합에 상당한 목돈을 출자하게 된다. 조합은 출자금을 모아 만든 자기 자본으로 조합원에게 임차하거나 조합원이 공동으로 소유하는 집을 마련한다. 때문에 주택 협동조합에서 조합원의 출자금은 꽤 큰 액수의 보증금이나 집에 대한 공동소유권을 얻기 위한 청약금으로 기능한다.(미주92) 오스트리아, 독일, 프랑스, 스웨덴, 캐나다, 영국, 미국 등은 이와 같은 주택 협동조합 모델을 활용해 집을 공급하고, 공공 임대 주택을 짓는 데 활용하기도 한다.(미주93)
이 같은 제도들은 우리나라의 전세와 디테일의 차이는 있지만, 전세가 우리나라만의 제도이거나 아이디어는 아니란 걸 보여 준다. 그렇다면 이런 나라에서도 우리나라에서 전세로 집을 마련하거나 집에 투자할 때 생기는 여러 논란이 존재할까? 비교적 그렇지 않다. 일반적인 주택 협동조합 모델과 오스트리아의 이익 제한 주택으로부터 이들 사례가 우리나라 전세가 가진 논란을 피할 수 있었던 비결을 살펴보자.
이 두 사례에서 전세금에 해당하는 목돈은 어떤 형태로든 구조적으로 감시받고 관리되고 있다. 주택 협동조합에서 조합원은 출자금이라는 이름의 전세금을 협동조합의 운영에 참여할 수 있는 의결권을 통해 스스로 감시하고 보호할 수 있다. 오스트리아 이익 제한 주택의 경우 집을 빌려주는 사업자가 임대 사업으로 얻는 수익에서 법정 이율인 3.5~5퍼센트를 넘는 이윤은 배당할 수 없도록 규제된다. 이는 입주자 지분이라는 이름의 전세금이 임대 사업자의 무리한 투자로 위협받을 가능성을 낮추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집을 빌려 쓰는 사람의 전세금은 안전하게 보호받고, 집을 빌려주는 사람은 안정적으로 돈을 빌릴 수 있는 시장을 형성해 임차인과 임대인이 상생하는 ‘내 집 마련’ 기제가 작동하는 것이다. 다른 나라와는 다른 제도적 접근이지만 우리나라에서도 임대 사업자 등록 제도를 활용해 임대 사업자에 한해서라도 보증금 보험(임대 보증금 반환 보증)에 가입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전세 사기 피해가 심각해지면서 보증 기관이 보증금 보험을 느슨하게 운영하는 바람에 오히려 문제가 커졌다는 비판이 일기도 했다.(미주94) 2023년 정부는 임대 사업자가 보증금 보험에 가입할 수 있는 문턱을 높이고 관련된 관리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미주95)
우리나라에서 주택 협동조합 등과 같은 방식으로 전세금이 안전한 시장을 만들 수 있을지는 두고 봐야 할 듯하다. 그러한 시장이 형성되려면 무엇보다도 전세금은 안전하게 보호받아야 한다는 사람들의 요구가 분명해야 할 것이다. 다만 이는 결과적으로 자기 자본이 부족한 사람이 경제적 불안에서 벗어나기 위해 집에 투자하는 수단 중 하나를 관리하고 규제하는 걸 포함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는 과연 전세금을 활용한 갭투자가 어려워지는 걸 감수하고 빌려서 내 집을 마련하려고 할까?
(미주77) 정순우, 〈1000채 ‘빌라왕’ 급사… 전세보험 든 세입자도 발동동〉, 《조선일보》, 2022.12.12.
https://v.daum.net/v/20221212030301459
(미주78) 김연주, 〈[탐사K]③ 176명의 전세 ‘시한폭탁’… 올해만 1조 8천억?〉, 《KBS뉴스》, 2023.3.11.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7624152&ref=A
(미주79) 이동우, 〈올해 전세금 보증사고 3.8조 추정… “3년간 10조 육박”〉, 《YTN》, 2023.10.4.
https://www.ytn.co.kr/_ln/0102_202310041456224820
(미주80) 이종배, 〈전세금 미반환 현실로... 임차권등기명령 신청 급증〉, 《파이낸셜뉴스》, 2023.7.5.
https://www.fnnews.com/news/202307051812260337
(미주81) 정용찬, 〈전세제도의 구조적 허점, 이러면 우리도 당할 수 있다-가격하락과 전세사기에 취약한 전세자금 대출, 이대로 괜찮을까〉, 《오마이뉴스》, 2023.1.16.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894608
(미주82) 정용찬, 〈전세제도의 구조적 허점, 이러면 우리도 당할 수 있다-가격하락과 전세사기에 취약한 전세자금 대출, 이대로 괜찮을까〉, 《오마이뉴스》, 2023.1.16.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894608
(미주83) 강민석·정종훈, 《전세자금대출 증가에 따른 시장 변화 점검》, KB 금융지주 경영연구소, 2022., 3쪽.
(미주84) 이현철, 《전세가를 알면 부동산 투자가 보인다》, 매경출판(주), 2018., 226-234쪽.
(미주85) 이창무·정의철·이현석, 〈보증부월세시장의 구조적 해석〉, 《국토계획》, 37(6), 2002., 87-97쪽.
(미주86) 이현철, 《전세가를 알면 부동산 투자가 보인다》, 매경출판(주), 2018., 103-106쪽, 139-146쪽, 226-234쪽., 김기원, 《빅데이터 부동산 투자》, 다산북스, 2018., 12-13쪽, 169-173쪽.
(미주87) 정영희, 〈“전세 사라져야” vs “월세 부담돼” 전세 폐지론 불붙은 논쟁〉, 《머니S》, 2023.5.23.
https://www.moneys.co.kr/news/mwView.php?no=2023052217272185260
(미주88) 신현우, 〈원희룡 “전세제도 개편 방안, 공론화 거쳐 결정,,, ‘에스크로’ 검토한 적 없다”〉, 《뉴스1》, 2023.5.24. https://www.news1.kr/articles/5056485
(미주89) 김진유, 〈전세의 역사와 한국과 볼리비아의 전세제도 비교분석〉, 《국토연구》, 85, 2015., 41-53쪽.
(미주90) Pittini, A., Turnbull, D. and Yordanova, D., 《Cost-Based Social Rental Housing in Europe: The cases of Austria, Denmark, and Finland》, Housing Europe, 2021., pp.11-12.
(미주91) 강세진, 《새사연 이슈진단: 국외 주택협동조합의 운영형태》,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2014., 2쪽.
(미주92) 강세진, 《새사연 이슈진단: 국외 주택협동조합의 운영형태》,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2014., 5쪽.
(미주93) 강세진, 《새사연 이슈진단: 국외 주택협동조합의 운영형태》,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2014., 7쪽.
(미주94) 김민정, 〈전세 사기 피해 부추기는 ‘보증보험’… 기획 파산에 국가재정도 ‘빨간불’〉, 《조선비즈》, 2022.10.30. https://biz.chosun.com/policy/policy_sub/2022/10/30/SO6I7C4VZJHSLEVZMGY3MSVBAE/
(미주95) 관계부처 합동, 《전세사기 예방 및 피해 지원방안》, 2023.2.2., 7쪽.
※ 이 글은 (사)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의 지원으로 작성한 글이라는 것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