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일 아닌 일을 ‘별일’처럼 써라

이지니 자기계발서 <꽂히는 글쓰기의 잔기술>

by 이지니

별일 아닌 일을 ‘별일’처럼 써라

어린 시절의 내 삶의 전부는 '일기 쓰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루에 두 번을 쓴 적이 있을 정도로 일기 쓰기를 좋아했다. 뭔가 특별하게 일어나는 일 때문에 좋아한 게 아니었다. 여느 학생과 마찬가지로 학교에 가고, 집에 돌아와 숙제를 해야 하는 일상이 전부였다. 학창 시절에는 방학을 제외하고는 누구나 비슷한 상황일 테니 말이다. 호기심이 유난히 많은 나는 같은 하루하루도 새롭게 보기를 좋아했다. 당시 썼던 일기장은 아직도 내 책장에 꽂혀 있다. 눈에 잘 보이는 곳에 두어 종종 꺼내 읽는데 읽을 때마다 유치해서 웃음이 나기도 하고, ‘어린 나이에 어쩜 이렇게 썼을까?’라는 생각에 대견한 마음도 든다.



1994년 10월 11일 화요일, 제목 : 길 고양이를 위한 마음

우리 집 주변에는 길 고양이가 많이 산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고양이보다 강아지를 더 좋아한다. 고양이는 왠지 내가 만지려고 하면 물 것 같고, 강아지처럼 주인 말을 잘 듣지 않을 것 같아서다. 오늘도 어김없이 저녁 식사를 하고 언니와 함께 산책을 하려는데 4~5마리의 고양이가 길가에 서 있었다. 배가 등에 붙은 것처럼 모두 마른 상태였다. 한 고양이와 눈이 마주쳤는데 마치 내게 ‘지니야, 혹시 집에 먹을 음식이 좀 남았니? 남았다면 가져와 줄래?’라고 말을 거는 것 같았다. 나는 얼른 “언니, 집에서 음식 좀 가져오자! 길 고양이한테 줘야겠어.”라고 말했고 언니도 흔쾌히 찬성했다.


남은 밥과 생선을 가지고 나와 고양이들이 있는 곳으로 갔다. 예상한 대로 우리가 가자마자 모습을 숨기려 막 뛰었다. “얘들아, 가지 마! 우리는 나쁜 사람이 아니야. 너희가 배고플까 봐 먹을 것을 가져왔다고!”라고 소리쳐도 소용이 없었다.


언니는 “얼른 음식만 두고 가자. 우리가 가면 알아서 먹으러 나올 거야.”라며 내 팔을 잡아끌었다. 나무 뒤에 숨은 우리는 고양이들이 오기를 기다렸다. 이때, 한두 마리씩 음식을 놓아둔 쪽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맛있게 먹는 것이었다. “그렇지! 맛있게 먹을 줄 알았어!” 나도 모르게 기쁨의 소리를 질렀다. “야! 그러다가 고양이들 또 도망간다고!” 언니는 내 입을 틀어막으며 말했다. 고양이들이 먹는 모습을 보니 나도 배가 불렀다. 나는 따뜻한 집도 있고 먹을 음식도 있는데 이 녀석들은 얼마나 춥고 배고플까…? 오늘 밤은 길 고양이들을 생각하며 잠들어야겠다.


선생님 말씀 : 일기를 참 잘 썼구나. 칭찬합니다.



이 날의 주제는 ‘길 고양이’이다. 일상생활에서 충분히 접할 수 있는 일, 누가 봐도 평범한 주제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나는 마치 자신만이 겪을 수 있는 일인 것처럼 ‘별일’로 만들어 버렸다. 먼저 글 사이사이에 대화체를 넣어 생동감을 더했다. 대화체가 없다면 읽는 사람의 체감은 현저히 떨어질 것이다. 당시 상황을 최대한 살리는 방법에는 대화체만 한 것도 없다. 그리고 나의 속마음을 드러냈다. 대화체와 속마음만 잘 드러내도 그 글은 이미 ‘별일’인 글이 된다. 또 하나는 마무리다. 길 고양이에게 단지 음식을 가져다준 것으로 끝났다면 정말 그 일을 자체로 마무리됐을 텐데, 나의 상황과 비교를 하며 손발이 오그라드는 멘트를 날렸다.


초등학교 시절, 한 번이라도 일기를 안 쓴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혹시 방 안에 당신의 옛 일기장이 있다면 지금 바로 꺼내보는 건 어떨까? 그리고 당시 어떤 주제로 무슨 이야기들을 담았는지 보라. 아마도 유치해서 한두 페이지 넘기고 중도에 덮어버릴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아주 잘 쓴 일기다. 초등학교 일기만 이렇게 쓰라는 법은 없다. 지금 당신이 쓰려고 하는 글도 같은 방식으로 해보자. 중학교에서 배우는 영어 정도만 제대로 해도 능숙한 생활 영어를 구사할 수 있듯이 글쓰기 역시 같은 맥락이다.




따스한 햇살이 내리쬐는 어느 오후, 카페에서 친구 두 명을 만났다. P양과 K양은 한 달 전에 함께 일본 오사카와 교토로 여행을 다녀왔다. 나 역시 2008년에 다녀왔던 지역이기에 그들의 느낌이 더욱 궁금했다. “여행은 어땠어? 좋았지?” 내 질문이 떨어지자마자 P양은 커피숍 바닥이 꺼지듯 한숨을 내쉬며 “그냥 한국이랑 비슷하던데? 거리는 깨끗한 줄 알았더니 곳곳에 쓰레기도 보이고, 사람은 또 왜 그렇게 많니? 제대로 구경을 못하겠더라. 돈가스 덮밥도 느끼해서 죽는 줄 알았어.”


그 말을 들은 K양은 오히려 환히 웃으며 “힘들기도 했지. 교토로 가는 날에 비가 너무 많이 내리는 거야. 우산을 써도 옷이 다 젖을 정도였어. 게다가 버스까지 늦게 와서 이미 기분이 상한 상태였지. 근데 제복을 입은 기사님이 밝게 인사해 주시고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친절히 안내해 주셔서 마음까지 녹더라고. 우리 둘 다 일본어를 못해서 길을 몇 번 헤매기도 했지만, 손짓 발짓해 가며 알려주는 사람들 덕분에 잘 찾아갈 수 있었어. 신기하게도 지하철 플랫폼에 세면대가 있더라. 언제 지하철에서 손을 씻을까 싶어 세면대로 갔다가 지하철 놓쳤잖아. 하하. 내가 사진 보여줄 테니까 네가 갔을 때와 비교해서 봐.”


두 사람의 차이가 느껴지는가? 아마 같은 날, 같은 장소로 여행을 갔다고 밝히지 않았다면 함께 여행을 갔으리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P양은 부정의 시각으로 무미건조함을 보여 별일 아닌 이야기를 전했고, K양은 부정의 요소를 넣었지만 결국 긍정의 이야기로 마무리를 지으며 자신만의 ‘별일’을 만들었다. 생각의 차이는 확연히 다른 결과를 보인다.


글도 마찬가지다. 부정으로 나열된 글은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부정의 기운만을 전한다. 그렇다고 특별한 구석도 반전도 없다. 물론 영화 <식스 센스>(The Sixth Sense)에 나오는 것처럼 소름이 돋을만한 반전을 보여 준다면 좋겠지만, 내가 겪은 ‘무언가’에 애정을 담는다면 그 이야기는 특별하게 들릴 수밖에 없다.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별일이 아닌 일을 ‘별일’처럼 쓰는 글은 일기 쓰기 외에도 기행문, 감상문, 편지, 자기소개서 등의 에세이 형식이 해당된다. 심지어 노래 가사도 예외는 아니다. 며칠 전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가수 ‘장기하와 얼굴들’의 노래 한곡을 알게 됐다. 제목은 <별일 없이 산다>이다. 다음과 같이 가사 일부를 함께 음미해 보자.



네가 들으면 십중팔구 / 불쾌해질 얘기를 들려주마

오늘 밤 절대로 두 다리 / 쭉 뻗고 잠들진 못할 거다

그게 뭐냐면 / 나는 별일 없이 산다

뭐 별다른 걱정 없다 / 나는 별일 없이 산다 / 이렇다 할 고민 없다

이번 건 네가 절대로 / 믿고 싶지가 않을 거다

그것만은 사실이 아니길 / 엄청 바랄 거다



가사를 처음 봤을 때는 제목처럼 정말 별것 없는 내용이라고 생각했다. 한마디로 ‘뭐 이런 게 다 있어?’였다. 연이어 들여다보니 속내가 비추었다. 헤어진 지 얼마 되지 않은 여자는 남자가 자신과의 이별을 슬퍼하며 질질 짜길 바랐지만, 오히려 남자는 말 그대로 별일 없이 지낸다고 말한다. 별것 아닌 글자를 노래 가사로 만들어 놓으니 ‘별것’처럼 보인다.


글을 쓰기 전에 당신의 눈앞에 놓인 주제를 특별하게 대해 보라. 생각의 한 끗 차이가 엄청난 결과를 만드는 것처럼 남들 눈에는 평범해 보이는 주제가 '별일'처럼 새롭게 탄생할 것이리라.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다. 혹자는 말한다. ‘인생이 뭐 별거냐’고, 하지만 당신의 인생을 별일도 아닌 그저 그런 삶으로 만드느냐, 아니면 남들이 닮고 싶은 ‘별일’의 인생을 사느냐는 전적으로 당신에게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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