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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니 May 29. 2020

고맙고 미안한 밤

이지니 산문집 <삶을 돌아보는 산문집>

   

남편이 4개월 전에 예매한 공연을 드디어 어제저녁에 관람했다. 처음으로 양가 부모님을 모시고 와서인지 더없이 좋은 시간을 기대했다. 좀 더 솔직히 말하면, 이날의 공연 주인공이 소프라노 조수미였기 때문에 기대를 안 갖는 건 애초에 말이 안 됐다.      



기다리던 그녀가 나왔다. 수많은 관람객이 그녀에 시선이 빼앗겼다. 등장만으로도 공연장의 분위기를 바꿔버렸다. ‘괜히 세계 제일이 아니구나.’ 첫 소절이 귓가에 닿는 순간, 마치 도미노 퍼즐이 쓰러지는 것처럼 손끝에서 발끝까지의 전율이 이어졌다. 생애 처음 느낀 감정이었다. 앙코르 두 곡은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한국어로 불렀다. 앞자리에 앉았지만, 아마 맨 뒤에 앉았다고 해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노래와 함께 흐르던 그녀의 눈물을.      



그녀라고 어찌 고국이 그립지 않았을까, 그녀라고 어찌 가족이 그립지 않았을까. 타국에서 오랜 시간을 버티고 견디어줘서 우리가 이렇게 귀 호강하는 것 같아, 감동을 넘어 괜스레 미안한 마음이 든다. 커튼콜은 내려갔지만, 그녀가 남기고 간 여운은 아주 오랫동안 이곳에, 내 맘속에 머물 것 같다. 우리나라의 자랑이 되어 준 그녀가 정말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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