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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니 May 26. 2020

나를 울린 중년 남성

이지니 산문집 <삶을 돌아보는 산문집>


평일 오후 4시 40분, 병원 진료 때문에 평소보다 일찍 지하철을 탔다. 자리에 앉은 나는 여느 때와 같이 사람들의 대화를 들으며 세상을 만나려 했다. 이때, 부드럽고 자상한 목소리가 귓가에 닿았다. 그 소리는 마치 습기로 가득 찬 방 안에 제습기를 틀어놓은 듯한 뽀송뽀송함이었다.     



“허허허, 난 지금 들어가고 있지. 자네를 많이 축복하네. 허허허. 그래, 고생 많았고 어디에서도 잘할 거라 믿어.”      



자세히는 모르지만 중년 남성은 회사를 운영하고, 수화기 너머의 청년은 전 직원인 듯했다. 나는 휴대전화를 무릎에 올리고 눈을 감은 채, 중년 남성의 소리에 좀 더 기대기로 했다.     



“우리의 인연이 길진 않았지만, 혹시라도 내가 도울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언제든지 연락하게.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그래, 늘 미소 잃지 말고, 허허허!”      



순간 나도 모르게 코끝이 찡해지면서, 감고 있던 눈마저 촉촉해졌다. 그의 따스한 격려가 내 마음에도 닿았나 보다. 나는 그가 서 있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미 통화 내용을 들어서인지 인자함이 그의 몸을 감싸고 있는 듯했다.     



‘수화기 너머의 그는 알까? 이렇게 진심 어린 눈빛으로 맞닿으려 한 것을?’     



‘말 한마디에 천 냥 빚을 갚는다’라는 말이 떠오른다. 그만큼 ‘말’이 중요하다. 누군가를 죽음으로 몰기도 하고, 살리기도 하는 말. 잘은 몰라도 수화기 너머 청년의 마음에도 꽃이 피었을 거다. 혹시 아는가? 청년에게 힘든 일이 생길 때마다, 3분도 채 되지 않는 오늘의 통화를 기억할지. 혹은 이 말 하나로 ‘버텨야 하는 시간’을 잘 참아낼지도 모른다. 어쩌면 어느 날, 다른 누군가에게 자신이 받은 온기를 전할 수도 있다. 온화한 말은 전염성이 높아 한 사람이 아닌 다른 이에게, 또 다른 이에게 전파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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