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남편과 1년 만에 'IKEA 광명점'을 찾았다. 이사한 다용도실에 수납장을 놓아야 함은 물론, 새집 기분도 낼 겸 분위기에 어울리는 방석을 구매하기 위해서다. 이곳에 오면 두 눈을 어디에 둬야 할지 난감하다. 양옆으로 끝없이 펼쳐진 쇼룸에 시선을 빼앗기는 까닭이다. '내가 제일 잘나가'라고 외치는 듯한 각양각색의 소파, 러그, 거실장. 그들의 조화로움. 옷 하나 제대로 코디할 줄 모르는 내가 이런 데 오면 엄청난 '센스'에 무릎이 굽혀진다. 부엌은 또 어떠랴. 똥손인 내가 요리하고 싶을 정도의 탐나는 분위기. 라면 한 봉지를 끓여도 국물에서 세련된 향이 날 것만 같아 냄비마저 씹어 먹을 기세다.
옷을 사러 갈 때마다 동행하는 게 있다. 코디가 어려운 나는 마네킹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두른 것을 통째로 구매해버리고 싶은 '상상'이 그것이다. IKEA도 예외가 아니다. 실내 장식에 관심은 있지만 감각이 워낙 없어 무관심한 척 놓았는데, 쇼룸을 볼 때마다 도화지 한쪽 면에 그림을 그려 반을 접으면 다른 면에 찍히는 데칼코마니처럼 우리 집에 그대로 옮겨 놓고 싶다.
"닮고픈 필력, 나의 글쓰기 롤모델"
독서할 때도 마찬가지다. 대다수 작가의 글은 한 주제 안에 적으면 한두 문장, 많으면 대여섯 문장 정도가 맘에 든다. 그 기준은 책을 읽는 눈과 입을 넘어, 손으로 글귀를 적어내는 정도에 이르렀을 때다. 마치 내가 원작자인 것처럼 활자 하나하나에 정성을 담아 그린다. 한 문장의 마침표를 찍기 전, 몸속으로 스며든 감동이 때론 눈물샘을 건드린다.
그의 글을 읽노라면 단 몇 문장으로는 성이 차지 않는다. 전체를 모시고 싶다. 책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 <끌림>, <내 옆에 있는 사람> 등을 쓴 이병률 작가의 글이 그렇다.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일해서인지 아니면 시인인 까닭인지 봄처녀의 치맛자락처럼 살랑살랑한 느낌이 들면서도, 반석 위에 지은 집처럼 단단한. 결코 가볍지 않은 그의 글이 나는 좋다. 본디 감성의 농도가 짙을수록 손발이 오글거리기 마련인데, 그랬다면 이만큼 좋아하진 않았을 텐데, 다행스럽게도 이성(理性)과 잘 버무려진 글이다.
닮고 싶은 글. 하지만 절대로 흉내 낼 수 없는 글. 타고난 재능이란 이런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인가 보다,라고 못을 박으려 할 때쯤 작가 이병률은 말한다. 중학교 때부터 글을 쓰고 싶다고 다짐한 그는 "많이 쓰는 사람을 절대 이길 수 없다."라고. 지금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양의 글을 원고지에 심었을까. 감히 상상이 안 된다. 소설 <노르웨이의 숲>, <1Q84> 등의 책을 쓴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 역시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5~6시간 동안 글을 쓴다고 한다.
내게 '매일 글쓰기'란 하루에 2리터 이상의 물을 마셔야 하는 것만큼 어렵다. 뚜렷한 목적과 웬만한 '독함'을 탑재해야 한다. 한두 줄이야 메모장에 끄적이면 그만이라 해도, A4 한 장 이상의 '제대로 된 글'을 매일 써내는 건 마음의 고삐를 단단히 채워야 가능하다. 그럼에도 해내고 싶다. 훗날, 정말 정말 훗날에 그 대상이 독자든 작가 지망생이든 어느 무명작가든 '이지니 작가의 글귀를 훔치고 싶다.'라는 마음이 들 만큼 잘 쓰고 싶다. 아무리 재능이 있어도 노력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라는데, 하물며 재능이 없으니 노력을 붓는 게 마땅하지 않은가. 욕심인 줄 알지만 꿈은 크게 가지라 했으니 그날이 내게도 오길 소망한다. 영영 안 올지도 모른다고? 뭐, 괜찮다. 적어도 심어놓은 글의 양만큼은 날 배신하지 않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