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는 평생 가야 할 길이라 말하지만, 나와 비교되는 타인에게 눈길이 갈 때마다 마음이 조급해진다. '나와 비슷하게 시작했는데 벌써 저 자리에 가 있네...' 비교가 최대의 적이라는 말이 맞아떨어지는 순간이다.
특히 플랫폼이 다양해지면서 글 쓰는 무대가 넓어졌다. 스마트폰이 생기면서 전문가가 아니어도 손쉽게 사진을 찍을 수 있게 된 것처럼 말이다. 눈에 보이는 수많은 글, 특히 트롯가수 임영웅처럼 심금을 울리는 글귀를 만나면 심장이 빨라진다. 누가 악마를 데려와 이런 소리를 집어넣는다. '넌 작가잖아. 적어도 저들보다는 나아야 하는 거 아니야?!' 악마의 속삭임으로 SNS 바닷속을 들여다보지 않았다. 얼마의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시선을 돌릴 수 있었다. 저자 강주원의 말처럼 조급함이 우주의 먼지처럼 사소하다는 것을 나 역시 알아버린 까닭이다. 이제는 SNS 바닷속이 겁나지 않는다. 타인의 글을 읽어도 중심은 나를 보고 있으니까.
글쓰기와 관련된 일을 한 지는 10년이 넘었고, 종이책을 출간하며 제대로 작가의 길을 걷기 시작한 건 3년이 좀 지났다. 시작할 때만 해도 책이 나오면 잘 될 줄 알았다. 겉으로 티는 안 냈지만, 속에서는 맘의 풍선이 공중 위를 떠다니고 있었다. 다행히 어리석은 환상은 오래가지 않았다. 내게 신인의 기적은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긴, 나 같은 성향의 아이가 처음부터 일이 잘 풀리면, 거만이 하늘을 찌를 게 뻔하다. 그 여파로 차기작은 한 줄도 쓰기 어려울 테다.
실제로 첫 작품(책, 앨범, 드라마, 영화 등)이 잘 됐을 때 대중은 엄청난 기대를 안고 차기작을 기다린다. 으, 생각만 해도 부담이 짓누른다. 그러니 4년 동안 잠잠한 내 상황에 감사를 해야 마땅한지는 모르겠지만... 실력이 기회와 타이밍에 닿으면 내게도 좋은 날이 올 거다. 어차피 장기전이니 괜찮다. 조급할 이유는 없다. 억지로 하면 하늘의 계획에 방해만 될 뿐, 순리대로 그렇게.
가장 하고 싶은 일이 '내 길'이 아님을 느꼈을 때의 기분을 아는가? 십수 년을 오롯이 한 길만 보고 달렸는데 무너졌을 때의 그심정을.
그 뒤로 나는 진짜 내 길을 찾으려 고군분투했다. 가만히 앉아 시간만 세고 있으면 답이 나오나? 책을 읽거나 TV 프로그램 시청 중에 키워드가 떠올랐을 때, 혹은 머릿속에 번개가 스치듯 '잘해 보고 싶은 일'이 꽂힐 때마다 그것이 진정 내 소명 반려자인지를 확인했다. 그리고 아니다 싶으면 미련 없이 뒤돌았다. 잦은 일까지 합쳐 서른다섯 번이다.
돈에 꽂혀 시작한 것도 있고, 그저 나와 잘 맞을 것 같아서 한 일도 있지만 결국엔 오래가지 못했다. 그러다 서른넷에 진짜 내 길을 만났다. 물론 100세 시대에 이후의 삶이 어디로 흐를지 장담할 수는 없다. 다만, 이렇다 할 수입도 없이 4년을 걷고 있다는 건, 짧으면 6개월 길면 2년만에 중단하는 내겐 엄청난 발전이다. 단언컨대 소명 반려자를 만나게 된 건, 서른다섯 번의 그만둠 덕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