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쓸 때와 아닐 때의 나

by 이지니

글 쓸 때와 아닐 때의 나






누구에게나 양면성이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말괄량이 삐삐'와 같은 발랄함을 소유한 것도, 트리플 A형(안 좋은 의미 아님)의 예민함과 내성적인 면을 소유한 것도 나다. 어느 쪽이 맞고 틀리지 않는다는 말이다.



2018년 2월 2일, 나의 두 번째 저서인 에세이 <아무도 널 탓하지 않아> 북 토크가 있었다. 생애 첫 북 토크라 더욱 긴장한 탓에 온몸이 굳었지만, 오신 분들의 따듯한 호응으로 감사히 마칠 수 있었다. 모든 순서가 끝나고 원하는 사람들과 늦은 식사를 했다. 그 자리에는 광주광역시에서 온 독자 A 님이 있었다. 편안한 자리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갑자기 그녀가 한마디 던졌다.



"글에서의 작가님과 매우 다르네요!"



그 뭐랄까. 마치 시골 뒷산에서 도깨비라도 본 듯 놀란 표정이었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난감했다. 칭찬인지 욕인지 분간이 잘 안 되었지만, 미간이 접혀 주름진 걸 보니 긍정의 의미는 아니리라.








가수 유이가 MBC <전지적 참견 시점>에 출연했다. 그의 매니저 말을 빌리면, 곱게 생긴 외모와는 달리 그야말로 동네 형 같단다. 평상시엔 운동복 차림을 즐겨 입고, 성격도 자신의 형보다 더 털털하단다. 심지어 여배우 입에서 나오는 단어와는 다소 거리가 먼 'ㄸ' 언급도 자연스레 하면서. 나는 괜한 기쁨과 동지애를 느꼈다. (그래, 유이와 나는 외모부터 크게 다름을 알고 있다)나 역시 수수한 이미지와는 달리 입만 열면 달라지는, 소위 '깬다'는 말을 자주 듣기에 그렇다.



이게 뭐 어떴단 말인가. 예쁜 척하는 것보다 인간미가 철철 넘치니 좋먼. 누구나 동전의 앞면, 뒷면과 같은 다름을 안고 살지 않나. 어찌 한 가지 모습으로 나를 만들 수 있으랴.












그런데 말이다. 글을 쓸 때만큼은 얘기가 달라진다. 양면성커녕 단면도 이런 단면이 없다. 나무의 단면은 여러 개의 나이테라도 있지, 내 것은 점 하나 찾기 어렵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발랄하고 활동적인 평상시의 나를 글에 집어넣기로 마음먹었다. 일부러 좀 웃기게 쓰고, 진지함보다는 아무렇지 않은 척 털털하게 적으려 애썼다. 결과는 어땠을까. 희한하게도 글에 힘을 빼려 할수록 컴퓨터 키보드가 눌릴 만큼 손가락에 힘이 들어갔다. 그때 알았다. 글쓰기로써는 한 가지 모습이 가장 나답고 편하다는 것을.



누가 그리 하라고 시키지도 않았는데, 글 쓸 때만큼은 진지함을 데려오고 싶다. 아니, 나도 모르게 그 모드로 이미 바뀌어 있다. 밤하늘의 별만이 소곤대는 어둠 속에서 쓴다 할지라도 말이다. (오해하지 마시라. 퇴고는 낮에 한다) 글 안의 나도, 글 밖의 나도 나다. 술을 마시지 않은 맨정신에도 흥건히 취한 자보다 더 잘 노는 나를 사랑하고, 두 눈 가득 진심을 넣어 글을 쓰는 나 또한 사랑한다. 앞으로도 편애하지 않고 이 둘을 사랑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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