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까지 회사로 출퇴근하고 올해 1월부터 집에서 일을 한다. 말이 일이지 2년 만에 다시 백수가 된 거다. 백수가 됐다고 해서 마냥 소파에 누워 TV 시청만 할 수도 없고, 세월아 네월아 시간을 세기만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런데 그 짓을 양심의 가책도 없이 즐기고 있던 나다. ‘이런, 오늘 하루도 무료하게 지나갔네’, ‘시간이 금이고 돈이라는데 하루를 다 날려버렸네’ 따위의 죄책감은 그림자조차 없다.
그러나 해야 할 일이 생기면 몸과 마음가짐 모두 180도 달라진다. 할 일이란 다음 책을 만드는 과정인 기획과 집필, 글쓰기 강의 , 원고 청탁, 강연 등의 준비를 말한다. 완벽주의자는 아니지만 나를 찾아온 일 외에 어느 것도 우선이 되지 않는, 그야말로 나밖에 모르는 이기주의자가 된다. 우선 약속을 잡지 않는다. 부득이하게 만나야 하는 일이 생기면 용건만 간단히 처리하고 온다. 휴대전화는 무음이다. 혹시라도 중요한 전화를 놓칠 수 있으니 컴퓨터 모니터 옆에 세워, 메시지는 거르고 받아야 하는 전화만 응한다. 식사하는 시간이 아까워 끼니를 거르거나 전자레인지 3분이면 해결되는 즉석요리를 택하기 일쑤다. 심지어 화장실 가는 시간이 아까워 미련하게 참은 적도 여러 번이다. (참으면 나만 손해인데 말이다)
살면서 집중력, 지구력이 강하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학창 시절에는 워낙 공부를 못했기에 아니, 공부에 지지리도 흥미가 없었기에 책상 앞에만 앉으면 정리 정돈을 하거나 친구에게 편지를 쓰거나, 카세트테이프를 꺼내 나만의 상상을 늘어놓기에 바빴다. 그러면서 무슨 공부를 더 하겠다고 돈을 주고 독서실을 끊었는지 모르겠다. (부모님, 죄송해요) 여하튼 뭐 하나 다부지게 한 적 없는 내가 십수 년이 지나 ‘선택과 집중’이라는 주제로 글을 쓰다니. 놀랄 ‘노’ 자다.
그래도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내 고집을 잘 아시는 부모님은 해야 하는 일 앞에서 만큼은 나를 방목하셨다. 어차피 권면해봤자 잔소리로 여길 막내딸이라는 것쯤은 두 분도 잘 알고 계셨기에. 그런데…. 문제(?)는 다른 데 있었다. 결혼하니 나를 참견하는 이가 엄마가 아닌 남편이 됐다. 내 건강 관리를 너무나 소중히 여기는 당신이라 매시간 노크해서 들어와 따듯한 차 한 잔을 건네주고, 의자에 오래 앉아있으면 지금은 몰라도 몸에 이상 증상이 온다며 스트레칭을 권한다. 남편의 등장과 함께 일의 흐름이 깨졌지만, 엄마의 잔소리와는 달리 입가에 미소를 담고 다가오는 그대를 어찌 외면할 수 있단 말인가.
“자기는 어느 때 보면 정말 무서워.” 착한 미소에 이게 웬 말. 선택과 집중할 때와 아닐 때의 차이가 한겨울의 추위와 한여름의 더위보다 심하단다. 쉴 때는 더는 복구할 수 없는 구멍 뚫린 풍선처럼 널브러져 있다가, 일 앞에 서면 둘이 먹다 하나가 죽어도 모르는 것처럼 옆에 사람에게 무슨 일이 생겨도 모를 거라며 혀를 찬다. 그래서 칭찬이야 욕이야?
돈벌이가 시원찮아도 내 일이 좋다. 아니 사랑한다. 길을 걷다, 다른 일을 하다, 잠을 청하다 일과 관련된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하늘 위 연기처럼 사라질세라 얼른 메모하지만, 전혀 귀찮지 않다. 하루 10시간 이상을 책상 의자에서 엉덩이 한 번 떼지 않아도 고단한 느낌이 없다, 라고 하면 거짓말이지. 물론 눈도 피로하고 목과 허리도 뻐근하지만 큰 과제를 하나 완성한 기분이 들어 설악산 정상에 서서 시원한 공기를 들이마시는 듯함은 사실이다.
혹자는 이런 나를 보고 ‘아직 이 바닥이 오래되지 않아서 그래’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음. 처지와 상황에 따라 다를 뿐 정답은 없지 싶다. 2015년 12월부터 지금까지 일곱 권의 책을 출간했고, 글과 연관된 일은 10년을 넘게 한 내가 단순히 꿈에 취해 뱉은 말은 아닐 터. 경력 20년 차 혹은 책 열 권 이상 낸 작가의 생각과 다를 수 있지만, 중요한 건 현재 내 마음이 그렇다는 얘기다. 지금 내 일에, 감정에 충실하고 싶으니까. 이렇게 말해봤자 또다시 선택과 집중을 멀리하는 때가 오면 지구력이고 뭐고 긴 겨울잠에 빠진 다람쥐처럼 이불 속에서 하염없이 시간을 곱씹고 있을 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