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 아니라 절박함을 본다

가르친 데로 살아온 사람들

by han


‘아, 포항으로 산책 가고 싶다’


그날은 일요일 아침이었다. 마음속에서 그 못된 허영심이 슬며시 고개 들었다. 고추 심을 윗마을 몇 집 밭은 아직 퇴비를 치지 않아 며칠 후 갈아주어야 하고 내 밭은 5월에나 시작해야 한다. 남들 모두 바쁜데 한가한 배짱이 농부가 돼버렸다. 괜히, 자리를 지키지 않는 것이 그 대상도 불분명하게 미안했다.

그러나 나는 유혹에 무척 약한 사람이다. 크게 망설일 것도 없이 달콤한 유혹, 그 허영심에 바로 굴복했다. 산책하러 포항까지 가는 이유는 별거 없다. 도시인들은 한적한 공원 같은 곳에서 산책하고 영양 산골 한적한 곳에서 지내는 난 그와는 반대로 복잡한 곳을 찾아 산책을 즐기는 것뿐이다. 게다가 영양에는 서점이 없다. 인터넷으로 살 수도 있지만 주로 속 내용을 확인하고 사는 편이다. 남들이 좋다고 해서 나도 좋을 수는 없으니까. 이렇게 사람은 각자의 취향과 상황에 맞춰서 살아간다고 이해해 주었으면 한다.


“딩동, 요금 2,100원이 과금되었습니다.”


영덕 톨게이트를 통과했다. 조금 있으면 해안도로를 타고 가며 바다 냄새를 맡고 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순식간에 기분이 설레고 좋아진다. 64년생, 이 나이가 되도록 가슴엔 유치한 그리움이 물들어 있다. 이런 걸 보면 난 상당히 감성적인 사람인 것은 분명하다.


네비가 안내하는 목적지는 지난번에 한번 가 본 적 있는 포항 홈플러스 이동점이다. 네비는 언제나 나를 편안하게 인도해준다. 10년 남짓, 신호등 없는 영양을 벗어난 적은 거의 없다. 길눈이 상당히 어두워졌다. 중간중간 몇 km로 가야 하는지도 모르고 신호등은 익숙하지 않고 교통 표지판도 잘 보지 못 한다. 네비는 그때마다 신 내린 무당처럼 나에게 규정 속도를 알려주고 방향을 점지해 준다. 그날도 내가 가는 것이 아니라 네비가 나를 목적지까지 인도해 주었다.


지하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2층부터 차근차근 둘러보면서 올라갔다. 책 이외에 다른 것을 사려고 하는 것은 아니었다. 윈도쇼핑에 가까웠다. 사람들 사는 모습도 보고 식료품 매장에서는 소스 재료도 유심히 봤다. 지난번에 갔을 때는 평일이라서 여자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날은 일요일이라서 그런지 부부로 보이는 사람들이 많이 왔다. 부부가 아닐 수도 있으니까 보이는 사람들이라고 하는 게 맞다. 전통적인 모습, 남자는 카트를 끌고 여자는 담는다. 은연중 남자들이 입고 있는 옷에 눈길이 갔다. 정말이지 듣던 대로 나이를 불문하고 하나같이 아웃도어라 불리는 등산복 패션이다.


‘어쩌면 저렇게 다들 비슷할까. 생각들도 비슷비슷하겠지... 나하고는 좀...’


그들이 입은 옷을 보자 나와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화려한 옷에 남보란 듯 치장하고 다니는 사람은 아니다. 그날은 엷은 색 청바지, 진한 카키색 브이넥 셔츠 위에 하늘색 면 남방을 입었다. 물론 남방은 겉으로 내놓지 않고 바지 안으로 넣었다. 나는 청바지, 티셔츠, 카디건 등 심플하고 무난한 옷을 좋아한다, 전 국민 외출복의 상징인 아웃도어 등산복은 흙먼지 풀풀 날리는 밭일 할 때 이외에는 절대 입지 않는다. 개인보다 집단에 섞여버린 듯, 흡사 군대처럼 누군가 ‘모여라’ 하고 외치는 것 같다. 일사불란하고 집단적이고 위계를 중요시하는 문화는 왠지 불편했다. 나와 그들, 두 부류가 각자의 취향대로 무난한 옷을 입었지만, 그것이 표상으로 나타났을 때는 달랐다. 결과적으로, 본의 아니게 내가 그들보다 튀게 입은 것이다.



20190417_070356 (2).jpg


6층에는 영풍문고가 있다. 전면 유리 안쪽, 문고에서 책을 읽으라고 마련해준 긴 테이블에 시선이 쏠렸다. 그곳에는 나보다 서너 살 많거나 아니면 적거나 해 보이는 오십대로 보이는 사람들이 쪼르륵 않아 책을 보고 뭔가 열심히 적고 있다. 순간 책을 고르러 온 나와 나이가 비슷한 그들은 무엇을 읽고 있는지 호기심이 발동했다. 그들이 앉아있는 뒤로 지나가면서 흘낏 봤다. 펼쳐져 있기에 책 표지는 볼 수 없었지만 크게 쓰여 있는 소제목만 봐도 그것이 무슨 책인지 알 수 있었다. 소규모 프랜차이즈점을 운영하기 위한 경영서적에 관한 책들이었다. ‘자영업 이렇게 하면 성공한다’ ‘창업과 도전’ ‘돈 되는 창업’ 등 작명가도 아님에도 내 머릿속에는 책들의 제목들이 절로 무수히 떠올랐다. 그들 대부분은 실직, 권고사직, 퇴직, 사업실패 등과 깊숙이 관련된 사람들이라 생각했다.


‘저들이 보는 것은 책이 아니라 절박함을 보는 것이 아닐까?’


그들은 사회라는 거대한 사이비 교주에게 속았던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사회는 애국 팔이 마케팅을 했다. 새벽종이 울렸네로 시작하는 새마을 노래가 등굣길에 어김없이 울렸다. 지금은 역사의 추잡한 추억이 돼버린 국민교육 헌장까지 만들어 외우게 했다. 나라와 집단 그리고 회사에 ‘군말 않고 충성하면 다 알아서 미래를 보장해 준다.’ 대학을 나오고 시키는 대로 ‘간 쓸게는 필수고 자존심까지 내려놓고 열심히 일하면 성공할 수 있다.’ 그렇게 사회로부터 근거 없는 주입식 교육을 받았다. 그것이 진리라 여기고 살아왔던 세대의 사람들이다.


그러다 IMF가 터졌다. 그때 그들은 나와 같은 30대 초반과 중반이었다. 떠나간 사람은 막막했고 많은 가정이 경제적 문제로 해체됐다. 남아 있는 사람이라고 마냥 편한 것은 아니었다. 다음번 구조조정을 기다리며 평생 불안한 마음으로 감히 찍소리도 못하고 고개 숙여 살아야 했다. 그날 이후, 사회의 가르침은 간신배처럼 언제 그랬냐는 듯이 하루아침에 돌변했다. 전에는 뭐라도 해 준 것처럼, 이제는 집단과 회사가 개인의 미래를 책임져주지 못한다고 했다.


지금이나 그때나, 초지일관 무책임했던 대다수의 언론은 역시나 실망시키지 않았다. 유난 방정 떨며 남들과 다른, 자신만의 톡톡 튀는 길을 가서 성공한 사람들의 표본을, 국내는 물론 해외 유명 인사들의 사례까지 줄줄이 내보내며 거들었다. 어제까지 애국심과 집단을 외치던 언론이다. 세상이 아무리 변한다 해도 절대 변하지 않을 것 같은 굳은 신념 같아 보이던 그 정체성은 온다 간다 말도 없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각자도생 하기 위해 자기 계발을 해야 한다고 떠들었다. 말이 좋아 고상한 한자어로 각자도생(各自圖生)이지 ‘네 살길 네가 알아서 찾아 살아라 ‘는 말이다.


그 후로 자기 계발서가 홍수처럼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럴듯하게 말 잘하는 강사의 책은 베스트셀러가 됐고 몸값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들은 어려서부터 주입식 교육을 받았고 개인보다 집단 문화에 익숙해 있었다. 각자도생 할 수 있는 방법을 몰랐다. 설사 알았다 해도, 지금처럼 맞벌이가 대세가 되던 시대가 아니었다. 저녁 준비하며 자신이 퇴근하기만을 기다리던 아내와 올망졸망한 아이들의 눈동자가 뿌옇게 어른거렸다. 그리고 주변의 만류 때문이라도 실천할 용기가 없었다. 그렇게 세월은 빠르게 흘렀다.


프랜차이즈, 싫든 좋든 집단 속에서 살아야 했던 그들은 자신들에게 익숙한 것을 하고자 하는 것이다. 자신들의 눈물 어린 노력을 프랜차이즈 본사와 반반 나눠 먹기 한다는 것쯤은 그들도 알고 있다. 그래도 프랜차이즈는 그들에게는 매력적이다. 집단에서 벗어나는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한 번도 집단에서 뛰쳐나가 보지 못했던 이들에게는 새롭고 낯선 것은 모험이 아니라 두려움 자체다. 심리적으로 집단이 보다 안전하다는 생각에 기대고 싶다. 치킨, 제과점, 커피점 등 대충 무난한 것에 본능적으로 마음이 갔다. 그런 심리적 약점을 프랜차이즈 본사는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은 미래의 점주들의 성공과 실패를 중요시하지 않는다. 유일한 관심은 퇴직금의 규모와 이리저리 주택 담보 설정해서 만들어 줄 은행 대출금이다.


입고 있는 비슷비슷한 옷도 그렇다. 절대로 남들보다 튀게 입을 수 없다. 비슷해야 한다. 튄다는 것, 그 나이에 주책이니 뭐니 하며 쓸데없는 짓을 한다고 손가락질받을 것부터 염려한다. 그들과 같은 세대인 나는 응원하고 싶어 졌다.


‘시간이 없다, 단 한 번만이라도 좋으니 튀어라!’


여기까지 이야기하면 너는 여유가 있으니까 그런 헛소리 하는 것이고 우리는 삶에 찌들어 산다고 반박할 수도 있다. 살면서 자신들과 다르다고 무수히 많은 돌을 맞고 욕지거리를 얻어먹어야 했다. 남이야 그러든 말든 되지도 않는 관습과 바보들이 떠드는 소리는 무시했다. 이건 뭐, 사회가 장기 매매 단도 아니고 간 쓸개가 빼놓고 살라니, 그걸 빼놓는 순간 사람은 죽는다는 것은 초등학생도 안다. 그럴수록 강장제도 먹고 자존심을 자존감으로 만들어 철철 넘치도록 가지고 살아야 한다. 돈이란 유형이든 무형이든 거래의 결과물이다, 굽신거린다고 들어오는 것이 아니다. 상호 간 이해타산이 맞아야 한다. 맛없는 식당 주인이 친절하다고 해서 손님 오지 않는다. 나도 수도 없이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기를 반복했다.


“왜, 너만 그러는데?”


이런 소리는 수도 없이 들었고 아직도 듣고 있다. 홀로 견디며, 사선을 걸어가는 것과 같은 아슬아슬한 심정으로 살았다. 그래도 그 길을 너끈히 걸어왔고 지금도 나는 튄다. 가판대의 진열된 책을 고르는 척하고 그들의 뒷모습을 다시 보았다. 나의 마음과는 다르게 현실에서 그들을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한 번도 튀어보지 못한 그들, 다시 시작하기에는 이미 나이가 들었고 어깨에 짊어진 무거운 짐도 내려놓을 수가 없다. 꼭 그렇게 사회가 시키는 대로 살아야 했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야 할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자 한가정의 가장들이었다.


그들을 뒤로하고 무라카미 하루키와 이토이 시케사토가 지은 ‘꿈에서 만나요’라는 책을 펼쳐보지도 않고 무작정 집어 들었다. 갑자기 ‘꿈’이라는 말이 와 닿았기 때문이다. 홈플러스를 나와, 그날의 사치스러운 여정의 끝은 파도가 언덕 아래 철석이는 장사 해수욕장 모래톱으로 결정했다. 소나무 아래 차를 세우고 잠시 내려서 바다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내 차로 돌아와 옆자리에 던져 놓은 하루끼의 책을 펼쳤다. 웬걸 그 꿈은 내가 생각한 그 꿈이 아니었다. 그 책은 사람의 미래에 대한 꿈이 아니라 꿈꾸는 듯한 이상한 이야기 모음집이었다. 그러고 보면 책도 사람처럼 겉만 봐서는 전혀 알 수 없다.


keyword
팔로워 1,224
이전 06화웃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