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
'전신 거울을 코앞에 두고 사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것은 의도치 않은 또 다른 변화 시작이었다.'
나무 소파 앞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2m 정도 되는 거리에 전신 거울이 비스듬히 서 있다. 밭일하고 나면 근육이 뭉친다. 오른손잡이가 대부분 그렇듯 나도 오른쪽 근육을 많이 쓴다. 몸의 균형이 맞지 않아 이곳저곳 결린다. 이땐 맨몸 운동을 해주는 게 좋다. 틈틈이 실내 운동을 할 때 자세를 바로 하려는 목적으로 몇 달 전 구매했다. 거울이 자리한 후로, 소파에 앉아 커피를 마시거나 책을 읽거나 글을 쓸 때도 거울 속에 있는 나와 마주했다. 심지어 밭일하다 잠시 쉬려고 들어오면 여지없이 거울 속의 내가 나를 바라보고 있다.
이쯤 되면 슬슬 신경 쓰이게 마련이다. 자고 일어나 소파에 앉자마자 손이 헝클어진 머리를 매만지려고 저절로 올라간다. 나르시시즘의 유래가 된 나르키소스는 수면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반해 죽자 사자 쳐다봤다는 신화. 난 그가 아님에도 지나치게 거울을 보는 중년의 남자가 됐다.
거울을 보기 시작하면서, 미소년 나르키소스는 제 모습 보고 반했지만, 난 거울에 비친 내 모습에 엄청 실망했다. 어릴 적부터 있던 새치는 세월 따라 반백이 되고 이마에 주름살이 생기는 것은 무척 자연스러운 것이다. 이럴 때, 세월의 야속함을 탓하고 과거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은 미련한 것이다.
내가 못 마땅한 것은 그것이 아니다. ‘철부지 소년’이다. 남녀의 구분이 확실했던 시절, 소년의 첫사랑은 실습 나온 예쁜 교생도, 같은 반 여자 아이도 아니었다. 언젠가 동화책에서 본 아톰 머리를 한 요정이었다. 소년은 실체가 없는 상상 속의 그 아이와 놀았다. 때론 재미나고 조금은 야한 상상도 했다. 대부분 아이들은 초등학교 고학년만 돼도 그런 유치한 생각에서 벋어 난다. 그러나 나는 많이 달랐다. 지금은 179cm이지만 중학교 졸업할 때까지 3번이었다. 키도 작고 숫기는 전혀 없었다. 친구도 없이 지내다 고등학교 들어가서야 사귀었다.
그 집에 살면서, 저 사람들이 내 부모고 형제인지 경계가 모호했다. 그들에게 잘 보이려고 눈치 살피며 조심스럽게 살아야 했던 이불속에서나, 혼자 밖으로 싸 돌아다니며 할 수 있는 일은 상상뿐이다. 너무 오래도록 그 아이가 소년 옆에 있어서 일까. 마음은 그대로인데, 그 철부지 장난기 가득한 소년의 느낌이 거울 속 얼굴에서 사라져 버린 것이다. 나이가 들면서도 그때 소년의 감성을 평생 간직하려 했다. 아마도 그놈의 정 때문이었던 것 같다.
대신 그 자리를 젊었을 때 나라라도 구한 것처럼 행세하고 이해도가 낮은 척하는 고집불통, 그저 그런 아저씨가 차지했다. 숨겨둔 소년의 마음은 변함없는데 얼굴이 영 받쳐주지 않았다. 그럼 연륜이라도 팍팍 풍기든가. 연륜은커녕 상당히 거칠어 보였다.
하기야 ‘관습? 웃기지 마, 그냥 사회적 패턴일 뿐이야’라고 하며 살았으니 그건 그렇다 치자. 표정은 왜 그렇게 딱딱하고 근엄하다 못해 비장하기까지 해 보이는지, 적군을 마주한 장수처럼 기회만 생기면 젊은 사람들 붙잡아 놓고 이래라저래라 일장 연설이라도 할 성싶다. 그래도 궁상맞아 보이지 않는 건 불행 중 다행이다. 이래선 안 되겠다 싶었다. 거울을 보며 배우가 대본 연습하듯 다양한 표정 지어보곤 했다. 웃어 볼까? 이건 아니야 조금 어색해 보여, 말할 때 조금 찡그리는 것 같아. 맞아, 이렇게 하니까 훨씬 부드러워 보여. 이렇게 작은 변화를 시도했다. 자신의 얼굴에도 분명히 책임이 따르기 때문이다.
나이 들면 미남 미녀의 기준이 바뀐다. 젊어서 아무리 얼짱이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과거의 얼굴일 뿐이다. 음탕함, 얍삽함, 욕심, 고독 등이 얼굴 표정에서 확연히 나타난다. 그런 사람들 보고 우리는 '잘 생겼다, 예쁘다'라고 하지 않는다. 단지, 추 할 뿐이다.
그러던 중, 하루하루 지나면서 거울에 비친 내가 점점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자신의 과거를 잘 알고 있는 사람과 대면한다는 것은 무척 불편한 일이다. 이건 잘 알고 있는 정도가 아니라 속속들이 꼭꼭 숨겨둔 부끄러운 모습들까지 죄다 알고 있다. 일일이 열거하기조차도 힘들 만큼, 지난날의 부끄러운 모습들이 잊히지도 않고 새록새록 떠올랐다. 소위 말하는 철저한 사회적 인간, 무자비하고 영악한 판단력을 전면에 내세워 돈의 가치로 살았던 시절도 있었다.
오히려 그 시절이, 우습게도 주변으로부터 똑똑한 사람이고 잘난 사람으로 인정받았다. 돌이켜보면 얼굴이 다 화끈거릴 지경이다.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남들은 몰라도 나는 안다. 당시에는 ‘힘들어서’ ‘살려고’ ‘세상 다 그렇지 뭐’ 하며 비겁하게도 쉬운 핑계를 만들어 댔다.
이만큼 시간이 흘렀음에도 부끄러움은 온전히 남아 거울 속에서 나를 바라본다. 한 가지 변화하려고 하지 않은 게 있다면 괴팍함이다. 순간순간, 사람을 수평이 아닌 수직으로 대하는 천박한 부류를 만나는 경우에 나오는 괴팍함. 나는 그것을 사랑한다. 하긴 뭐, 나이 든 괴팍한 소년이 되는 것도 나쁘지 않다.
이렇게 코앞에 있는 38,000원짜리 전신 거울의 영향력은 상당했다. 부끄러움도 나의 삶의 일부로 인정하기로 했다. 그러자 거울 속의 내가 점점 더 좋아졌다. 수시로 사랑스럽게 바라보게 된다. 다시 나르키소스의 비극이 떠올랐다. 그는 요정 에코의 사랑을 거절했다. 그녀는 견딜 수 없는 상실감에 몸부림쳤다. 결국, 몸은 사라지고 목소리만 메아리로 남았다. 상황이 그런데도 나르키소스는 샘물만 들여다보고 있었다. 미련하기는, 가서 좀 달래 주던가 하지. 끝내, 그 자신도 신들의 분노를 사 짧은 생을 비극으로 마쳤다. 이러다 ‘나도?’ 하는 걱정은 접어둬도 된다. 난 미소년 하고는 거리가 멀다. 생김새와 다르게 미련하지도 않다. 거칠고 순박하게 생겼다. 달려 나가면 나갔지 아름다운 요정의 사랑을 거절할 만한 위치에 있지도 않다. 작은 농막 안팎으로 노란색 조명을 달았다. 노란 불빛은 따뜻한 기다림의 상징이다. 이렇게 난 이 나이가 되도록 쓸모없고 밑도 끝도 없는 그림움을 간직한 채 거울은 좀 보고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