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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본드형 Jan 06. 2022

밥 없는 김밥을 먹다

눈물이 났다

오늘 점심은 오마카세야


너무 열심히 재택근무를 했는지...

배가 출출한데 부엌에서 아내가 부른다.

 

방에서 나가 보니

식탁 위에 각종 김밥 재료들이 널려 있고

그녀는 마치 일식 주방장처럼 앞치마를 두르고 서 있다.


휴가 중인 아들을 위해

선택한 오늘 점심 메뉴는 엄마표 김밥이다.

마침 늦잠을 자고 일어난 녀석이 방문을 열고 나타난다.

아들과 나는 손님처럼 식탁 건너편에 앉는다.


재료들을 자세히 보니 별거 없다.


김과 밥.

계란 부쳐 칼국수처럼 썬 것.

크고 납작한 오뎅 썬 것.

와사비 마요네즈.

단무지. 오이, 김치...


아빠 : 오마카세라며?
엄마 : 주방장 맘대로라고
아들 : '맡긴다'는 뜻이야 (일어 좀 아는 척)
아빠 : 밥 보니까 몇 줄 안될 거 같은데?
엄마 : 평소 먹는 양보다 많은 거야 (호랑이 눈을 뜨며)
아들 : 맛있겠다


즉석에서 싸 준 김밥 하나를 입에 넣으니

생각보다 맛있다.

아들과 경쟁하듯 먹다 보니 3~4줄이 금방 사라진다.


아쉽다는 표정을 읽었는지

아내가 냉장고에 숨겨둔 밥 한 공기를 데워

1줄을 더 싸 준다. 만족스럽다.

 

그런데 계란이나 오뎅 같은

재료들이 남아 반찬처럼 더 집어 먹으려니

아내가 말린다.


이건 내 김밥용이야


밥 없이 남은 재료들로만 김밥을 싸기 시작한다.

탄수화물을 줄이는 다이어트 음식인

'키토 김밥'이란다.

2줄을 싸서 한번 먹어보란 소리도 없이 맛있게 먹는다.


붕어빵에 붕어가 안 들어간 건 이해하지만

김밥에 밥이 안 들어갈 줄이야...


그럼 그렇지,

음식 남는 거 끔찍이 싫어하는 그녀 아닌가!

 계획이 있던 거다.


밥 없는 김밥을 보니

'자두'의 명곡이 생각나... 눈물이 났다.


역시 영원한 건 없어.




김밥


몇십 년 동안 서로 달리 살아온 우리

달라도 한참 달라 너무 피곤해

(중략)

그래도 우린 하나 통한 게 있어

김밥, 김밥을 좋아하잖아

언제나 김과 밥은 붙어 산다고

너무나 부러워했지...


잘 말아줘, 잘 눌러줘

밥알이 김에 달라붙는 것처럼

너에게 붙어 있을래

날 안아줘, 날 안아줘

옆구리 터져 버린 저 김밥처럼

내 가슴 터질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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