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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본드형 Apr 12. 2022

아내의 청춘

그 찬란한 슬픔에 건배

일요일 아침 일찍부터 아내이상하다.


어제 차 타고 지나치면서 본 양재천 벚꽃이 눈에 아른거려 못 참겠다고, 눈 뜨자마자 외출 모드로 변신하더니 아직 눈곱도 떼지 못한 나와 짱이를 두고 나가버린다.


느지막이 일어나 커피 한잔을 하며 싱크대에 어젯밤 쌓인 설거지 거리를 보다가, 문득 오래간만에 착한 남편 한번  볼까 하는 맘이 생기는데... 톡으로 사진이 날라 온다.


여기 천상계야


곧이어 그녀의 전화가 울린다.


봤어? 봤어?

여기 완전 딴 세상이야.

이건 꼭 봐야 돼!


사춘기 소녀처럼 흥분한 그녀의 목소리에 정말 좋은 걸 혼자 보기 아깝다는 절실함이 느껴진다.


(어제도 벚꽃구경 갔는데 또?)

(오늘은 그냥 집에서 뒹굴면 안 될까?)

알았어, 금방 갈게...


신나서 펄쩍 뛰는 짱이를 데리고 차로 20분 거리인 양재 시민의 숲 주차장에 내리니, 이른 아침인데도 부지런한 상춘객들이 벌써 나와 절정인 벚꽃을 연신 사진에 담고 있다.

 

양재천을 따라 접선하기로 한 도곡동 쪽으로 걸어가니 저 멀리 손드는 그녀가 보인다. 마스크에 가려졌지만 환하게 웃는 그녀의 입도 보인다.


늘어진 수양버들과 어울려 더욱 화려한 벚꽃 눈이 날리는 진 길을 손잡고 걸으며 그녀가 이런 순간이 많았으면 좋겠다고 해맑게 웃는다. 그런데 어딘가 살짝 슬퍼 보인다. 왜일까?




저녁까지 아내가 이상하다.


벚꽃구경에서 돌아와 긴 낮잠을 자고 난 후 늦은 저녁을 먹고 <우리들의 블루스>란 드라마를 보는데, 스마트폰 하면서 보는 둥 마는 둥 하던 아내가 갑자기 노래방 장면이 나오자 관심을 보인다.


평소 노래방을 별로 안 좋아하는 그녀가 처음 듣는 곡인데도 궁금하다면서 가사 중 일부로 이리저리 검색해 결국 "위스키 온 더 락"이라는 원곡을 찾아낸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

나쁜 것만은 아니야

세월의 멋은 흉내 낼 수 없잖아

멋있게 늙는 건 더욱더 어려워

...

얼음에 채워진 꿈들이 서서히 녹아가고 있네

혀끝을 감도는 whisky on the rock


배우 이정은이 연기한 은희는 가난한 집 사남 일녀 중 장녀로 태어나 생선장수를 하며 자수성가한 중년의 싱글녀이다. 억척스럽지만 성실하고 센스 있고 흥도 많다.


자신의 가장 찬란했던 추억으로 남아있는 첫사랑 한수(차승원) 참석한 동창회 노래방에서 은희가 신나서 부르 애창곡이 아내는 슬퍼서 너무 좋다고 반복해서 돌려 듣는.


아름다운 것도

즐겁다는 것도

모두 다 욕심일 뿐

다만 혼자서 살아가는 게

두려워서 하는 얘기...




그래, 아내도 나처럼

청춘이란 욕심이 남아있는 거겠지.


그땐 치열하게 살기 바빠서

나중에 보려고 찍어둔 사진 같은 기억들.


가장 화려하게 피었다

너무 짧게 사라지는 벚꽃 같은 인생의 순간들.


그 찬란한 슬픔을 보내며

지금, 여기, 함께 잔을 들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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