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본드형 Aug 25. 2021

밤이 아니었다

치명적 호기심을 가진 아내와 사는 법

이게 뭘까?


필라테스를 다녀온 아내가 가방에서 뭘 꺼내 든다.

그녀 특유의 호기심이 가득한 눈빛이다.


"딱 봐도 밤이네 (시큰둥하게 보는 나)"

"밤 아니야"

"에이~ 밤인데"

"아니래두..."


먹어보잔다.

망치를 찾아와 힘껏 내리쳤는데 안 깨진다.

몇 번을 시도하다가 결국 톱으로 바꿨다.

흥부가 박을 타듯 낑낑대며 간신히 반을 잘라 쪼갰다.


"봐봐, 밤이네"

"으~~ (퉤퉤) 써"

"어디 나도... (퉤퉤) 아닌가?"

"거 봐 아니래두!"



검색해보니, 정말 밤이 아니었다.

흔한 가로수 중 하나인 '마로니에' 열매였다.

그런데 독성이 있다.

먹으면 위경련, 현기증, 구토 현상이 일어나며

심한 경우 사망하는 사례도 있단다.

(열매 주워 먹고 응급실 간 사람들도 많다고... 헉!)


호기심도 겁도 많은 아내와 산다는 건 위험한 일이다.

그 실험의 대상이 항상 내가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편으론,

조금씩 무뎌져 가는 나의 지적 호기심을

꾸준히 자극시켜 준다는 점에서 행복한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뭔가 궁금한 게 생기면

아내의 눈은 아이처럼 늘 살아서 반짝거린다.


그 모습이 참 좋다.


그러고 보니 진짜 밤을 먹을 수 있는

추석이 얼마 안 남았다.


처서(處暑)지나고

더위도 그치고 슬슬 가을로 바뀌는 느낌이다.


알베르 까뮈가 이런 말을 했다지...


Autumn is a second spring
when every leaf is a flower


가을은 두 번째 봄이란다.

우울해만 보이던 실존주의 작가에게

이런 낭만이 남아 있었다니 의외다.


청춘은 이미 가버렸다고,

세상 새로울 게 없다고,

만사 시큰둥하게 살아가는 어른들이여!


당신 눈에 호기심 한번 담아 보시길 추천한다.


혹시 아나?

한번 더 만개할 꽃씨가 내 속에 아직 남아있을지도.






이전 06화 이 사람이라고 확신하는 순간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