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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본드형 Mar 28. 2021

넘버 4의 반란은 다행히 무산되었다

애완견과 반려견의 차이를 알다

아이짱 대수술 받다


이름 : 아이짱(나는 짱이다)

성별 : 여자

나이 : 11살

종류 : 블랙 푸들(토이형)


태어나자마자 데려와 11년 넘게 키우고 있는 반려견 '아이짱'이 어제 자궁 축농증으로 수술을 받았.  전신마취가 필요한 스케일링을 위해 초음파 검사를 받다 발견해 바로 수술하고 지금은 회복 중이다. 의사 선생님 말로는 그대로 두었으면 반년 내 사망할 확률이 높았다 하니, 너무 미안하면서도 한편으론 넌 참 오래 살 팔자인가 보다는 생각도 든다. 

이번에 정확히 알게 된 사실인데 강아지 수명은 보통 18개월 정도 되면 사람 나이로 스무 살 성인이 되고, 이후 매년 평균 5살 정도 먹는 셈이라 하니 아이짱 나이가 벌써 칠순이다. 

생각해보니 그녀에게 인생, 아니 견생의 고비가 3번 정도 있었는데, 재미있게도 모두 이사 간 집들과 맞물려 있었다.


첫 고비는 인생 최초 내 집 마련 후, 공원에서 잃어버렸다 며칠 만에 같은 동 아파트 꼭대기층 발견한 사건이었고 두 번째 고비는 이사 간 아파트 아래층 큰 개에 물려 간신히 목숨을 구하고 대견 기피증이 생긴 사건이었다. 그리고 이번에 이사 온 집에서 대수술을 받는 세 번째 고비까지 맞았으니 더 이상 이사 안 가면 그녀 인생에 또 다른 고비 없이 백세까지 살 지 않을까 싶다.



인생의 반려자 되다

아이짱을 처음 데려올 땐 별로 정이 안 갔다.
맞벌이를 하다 보니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외로울까 봐 키우기 시작했는데 냄새나고 시끄럽고 결정적으로 배변까지 못 가려 베란다에 자리를 잡았다. 그때 나는 한창 일 욕심이 커서 집에서도 밤샘 보고서 작업을 많이 했는데 어쩌다 곁에 오려는 그녀를 쫒으며 짜증을 내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들이 집 앞 공원으로 산책을 나갔다 그녀를 잃어버렸다. 온 가족이 한참을 찾았지만 결국 포기했고 혹시나 하는 생각에 엘리베이터에 실종 전단지를 붙였다. 며칠 후 동네 주민의 연락으로 그녀를 찾았을  때 기쁨은 이산가족 상봉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 사건 후 이사를 했고 방에서 키우기 시작했다.
아들이 고등학생이 되면서 집안의 서열도 바뀌기 시작했다. 원래 나는 아내에게, 아내는 아들에게, 아들은 내게 꼼짝 못 하는 물고 물리는 관계였는데 아들이 수험생이 되며 나는 파워게임에 밀려 아들 -> 아내 -> 나 순서로 넘버 3이 됐다. 그래도 내 밑에 아이짱이 있다는 것이 큰 위안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를 데리고 아내와 산책을 나갔다 1층 로비에서 갑자기 달려든 개 ××에게 물리고 말았다. 모퉁이를 돌다 마주친 바람에 미쳐 피하지 못했고  다행히 물린 직후 아이짱을 감싸 안아 올려 목숨을 건졌다. 이때부터 산책을 나갈 때마다 조금이라도 덩치가 있는 개들을 보면 안아 올리는 습관이 생겼고, 범인 개 ××가 아래층에 살다 보니 언제 마주칠지 몰라 불안한 적도 많았다. 반면, 아이짱 입장에서 좋아진 것도 있는데 진정한 가족 구성원으로 인정받아 드디어 침대까지 진출했다는 것, 그리고 내가 배변, 산책, 목욕 담당이 되었다는 것이다. 

지금 집으로 다시 이사 후 짱이는 아내와 꼭 붙어 다녔다. 아들은 대학생이 되어 막강한 권력을 이양했고 그녀는
아내의 총애를 등에 업고 실질적인 넘버 1의 자리에 올랐다. 이제는 외출은 물론, 멀리 지방으로 여행까지 따라가는데 겸상도 멀지 않은 듯싶다.


당연하지만 이제 넘버 4 신세다.
그러나 이번 수술로 행여나 넘버 3가 되지 않을까 걱정을 했었다. 다행히 그런 반란은 일어나지 않아 너무 감사하다.

꼭 진선미에 들지 않으면 어떠랴

금은동 메달이 없어도 내가 행복하면 그만 아닌가

애완견이 아닌 반려견이라는 말처럼,

남은 인생에 함께 나이 들어가는 친구 혹은 딸로

그녀와 오래 지내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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