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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본드형 Sep 21. 2021

골프가 치고 싶어졌다

8년째 골린이의 변심

옛날 자치기를 아는가


마당에 구멍을 파고, 짧은 막대를 얹거나 비스듬히 세워

긴 막대를 이용해 튕겨서 쳐내민속놀이.


날아간 지점에서 구멍까지 거리를 긴 막대로 자처럼 재어 점수를 내는 방식인데, 어릴 적 시골 할머니 댁에 갔을 때

동네 아이들에게 처음 배워 하루 종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았던 기억이 어렴풋이 남아있.


제대로 맞기만 하면 건너편 지붕으로 올라가는 홈런성 타구가 나오기도 했고, 내가 친 막대를 상대가 잡아내지 못하도록 원하는 방향으로 보내는 중요한 기술이었다.


골프를 처음 배울 때

문득 자치기 떠올랐다.



골프는 재미없고 비싸다?


골프 시작한 지 8년 되었는데 난 여전히 골린이다.

지식도 실력도 딱 어린이 수준이다.


"나이 들어 함께 놀려면 꼭 배워야 한다"

30년 지기 절친들의 협박 시작했지만 일 년에 한두 번, 많아야 세 번 치는 게 고작이다.

고정 멤버와 연례행사처럼 치다 보니 100타 이내 점수는 내 본 적도 없고, 어쩌다 '보기'라도 나오면 그날은 완전 운 좋은 날이다.

참고로 골프는 홀마다 기준 타수(평균 4타)가 존재하는데
이를 기준으로 점수를 매긴다.

-2타 = 이글
-1타 = 버디
0 = 파
+1타 = 보기
+2타 = 더블 보기

18개 홀에서
평균 파를 하면 18 × 4 = 72타
평균 보기를 하면 18 × 5 = 90타
평균 더블보기를 하면 18 × 6 = 108타...

이런 식이다.


공부 못하는 핑계가 그렇듯, 하면 잘할 텐데 노력을 안 한다.

 이유가 있다.


처음 골프를 배울 땐, 차지기와 비슷한 놀이로 생각했다.

그냥 막대기로 멀리, 정확히 치면 되는 거 아닌가?

하지만 아니었다.


골프채 잡기부터 서는 위치, 스윙 각도, 시선 방향  등등 공 한번 치기도 전부터 배울 게 너무 많았다.

자세가 좀 잡히니 이번엔 '똑딱이'(작은 스윙)만 반복해서 연습해야 했는데 정말 지루했다.

아무리 기본기가 중요하다지만 이건 아니다 싶어 몇 번 레슨을 받다 그만두었다.


인생 게임은 악몽이었다.


앞으로 공을 치기보다는

좌우로 날아가 사라진 공을 찾는 숨바꼭질에 가까웠다.

(뒤에서 기다리는 다른 팀 눈치가 보여 찾지도 못했다)

골프 용어와 룰은 어찌나 복잡한지... 이리저리 헤매다 완전 바보가 된 기분이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사람들은 왜 이런데 돈과 시간을 쓸까?

레슨 받고, 장비 사고, 필드 한번 나가면 몇 십만 원 깨지고...

왔다 갔다 왕복 2~3시간에 라운딩 4~5시간.

주말에 늦잠도 못 자고 새벽같이 일어나 거의 하루를 다 쓰는  그들이 솔직히 이해가 안 갔다.


이후 내게 골프는 그냥 "재미는 없고 비싸기만 한 놀이"에 불과했다.



가심비가 좋다면 충분하다


최근 그 절친 중 한 명이 자기 아버지와 단 둘이 골프 친 사진을 SNS에 올렸다.

연세가 여든을 훌쩍 넘기신 걸로 아는데...

몇 해 전 돌아가신 같은 연배의 아버지 생각이 나기도 나고, 건강해 보이는 부자 골퍼가 멋지고 부러웠다.


"나이 들어 함께 놀려면 꼭 배워야 한다"는 말이 떠올랐다.

그땐 자기 취미를 강요하는 것으로만 들렸는데

결국 건강하게 함께 늙어가자는 우정 어린 협박이었음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그래  맞다.

오래된 좋은 친구들과 아름다운 자연에서 오롯이 함께 건강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것만으로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비록 내게는 돈과 시간 대비

가성비(性比) 나쁜 놀이에 불과하지만


공과 숨바꼭질을 해

복잡한 용어와 룰은 잘 몰라도

어릴 적 자치기처럼 친구들과 하루를 즐겼다면 충분한

가심비(價心比) 좋은 놀이일 수 있다는 생각에


갑자기 골프가 치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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