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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본드형 May 01. 2021

부장의 꿈

진짜 Director 되기

나는 부장이다


지금은 어쩌다 꼰대 직장상사의 대명사처럼 돼버렸지만

회사 내 임원이 아닌 직원 중에선 최고의 직급인 부장. 영어로는 과/차장급 관리자를 뜻하는 'Manager'가 아닌 리더를 뜻하는 'Director'라로 불린다. 대기업 공채로 시작했다면 빨라도 최소 15년 이상 '짠밥'을 먹어야 오를 수 있는 위치다.


부장의 꿈은 보통 임원이 되는 것이다.

군대로 치면 별을 다는 것처럼 그냥 직원일 때와는 많은 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오르는 연봉 외에도 개인 사무실 방이 생기고 비서가 붙고 회사 차가 나온다. 무엇보다도 '성공한 직장인'으로 주변의 인정과 부러움의 대상이 된다.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서 온갖 고난과 역경을 헤치고 결국 임원을 단 이선균을 보라.


연공서열 문화가 강했던 예전 직장과 달리, 40대 임원 아래에 50대 부장이 공존하는 요즘이다. 관리자로서 능력만 인정받으면 초고속 승진이 가능해졌고, 반대로 워라밸을 추구하며 임원을 목표로 하지 않고 전문성 가진 부장으로 남는 케이스도 많아졌다.


나 역시 8년 차 부장으로 온라인 영업 관리자에 이어 마케팅 전략 기획을 담당하고 있다. 솔직히 3년 전만 해도 남들처럼 임원을 꿈 꾸기도 했지만 이젠 아니다. 능력주의의 늪, 회사 내 경쟁과 평가의 트랙에서 벗어나 보니 동료나 선후배와의 관계가 훨씬 편해진 것도 좋지만 무엇보다 나의 진짜 꿈을 찾아가는 과정이 날마다 즐겁다.


내 꿈도 Director다


정확히 말해 영화감독(Film Director)이 되고 싶다.

봉준호 감독처럼 엄청난 성공을 목표로 하진 않는다. 그리고 평생 직업으로 영화만 찍겠다는 것도 아니다.


80살이 되었을 때,

지나온 삶을 한 편의 영화로 만들어

평생을 함께한 지인들 모두를 시사회에 초대해

인생이란 여행을 잘 마무리했다는 축배를 들고 싶을 뿐이다.


문제는 영화란 게 감독 혼자서 만드는 게 아니라는 거다.

그래서  프로세스(역할)를 한번 찾아봤다.


제작(프로듀서)

각본(작가)

연출(감독, 스탭, 배우)

배급(투자사)

상영(극장, 방송사)


첫 번째 단계인 제작은 각본 선정, 인사(스탭과 배우 고용), 재무(투자자 모으고 예산 관리), 배급사 선정,  마케팅 등 영화 프로젝트 운영을 말하며 프로듀서(PD)가 맡는다. 회사로 치면 기획 업무로 내가 가장 자신 있는 역할이다. 참고로 드라마 연출 PD는 Producer가 아닌 'Program Director'약자란 걸 처음 알았다.


그리고 마지막 단계인 배급과 상영은 문제가 아니다.

일반 대중이 아닌 나의 지인들만 보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상영 장소는 멀리 '아프리카'로 오래전 이미 정했다. 가장 오염되지 않은 대륙의 드넓은 초원 위에 100미터 멀리서도 잘 보이는 커다란 은막을 칠 생각이다. 그리고 상영은 딱 1회, 시사회 겸 축제로 진행된다. 물론 지인들 모두에게 항공과 숙식은 제공 예정이다.


이제 남은 건 각본과 연출이다.

일단, 시나리오 역시 내가 써볼까 한다. 내 이야기고 브런치 작가를 계속하다 보면 언젠가 글솜씨도 늘지 않을까 싶다. 나의 롤 모델인 리처드 커티스 감독도 <러브 액츄얼리>나 <어바웃 타임> 같은 명작들의 작가를 겸하지 않았던가? 스탭 역시 촬영, 조명, 음향, 미술, CG 등 모두 스마트폰 기능으로 상당 부분 커버 가능하고 배우는 지인 찬스를 최대한 쓰려고 한다.


가장 중요한 건 역시 예산이다.

지금 회사의 연봉이나 개인 재테크로는 아프리카 시사회에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지인들 초대는 어림도 없다. 최소 전세기 10대는 띄워야 하는데 말이다. 아, 이대로 꿈을 포기하고 그냥 부장(Director)으로 만족하며 살아야 하나...


방법은 하나 있다.

아직 30년 정도 남았으니 내가 브런치 작가로 먼저 성공해 큰돈을 벌면 된다. 어차피 제대로 된 시나리오도 써야 하지 않나. 결국 진짜 Director가 되려는 나의 꿈은 일단 마음에 심어 두고, 글쓰기라는 물을 열심히 주겠다는 또 하나의 명분을 갖게 된 셈이다.


그런데 이 영화, 장르가 뭐가 될지 궁금하다.

내가 좋아하는 로맨틱 코미디 일지, 공포나 스릴러 일지, 아니면 SF 판다지 일지...


다 필요 없고 무조건 해피 앤딩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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