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차
배우는 과정에는
늘 부끄러움이 함께 한다.
그 부끄러움을 견뎌야 배울 수 있다.
오늘 아침에 인스타그램에서 나를 멈추게 했던 글귀가 있어서 손으로도 적어보았다. 왜 이 문장이 내 눈에 밟혔을까? 아무것도 모르는 게 부끄러워서 시작도 못했거나, 함께 하는 사람들보다 못한다는 것을 알고 부끄러워서 그만두었거나 한 적이 내게도 있었기 때문이다. 배운다는 것은 몰라서 알아가는 과정인데 모르는 것이 부끄러울 일은 아닌데 말이다. 그 부끄러움을 견디지 못해서 시작도 못했었구나, 끝까지 하지 못했구나, 알아차릴 수 있었다.
아이패드 드로잉 작가, 여유재순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유재순 할머니는 올해로 92세다. 인터넷 개인정보를 입력할 때 성명의 성에 '여'라고 성별을 쓰는 바람에 '여유재순'이라는 작가명을 갖게 된 에피소드를 갖고 있다. 세상은 바뀌는데 나만 계속 바보가 되는 것 같아서 주민센터에 인터넷을 배우러 갔던 분이다. 그곳에서 나이도 많고 잘 못하니까 '어르신, 안 배우시면 안 되겠냐'는 소리를 들었지만 '안 되겠다. 꼭 해야 한다'라고 하셨단다. 우여곡절 끝에 아이패드를 구입했지만 동영상 강의가 너무 빨라서 이미지 다운로드하여 독학으로 그림 그리신 분이다. 열정, 끈기와 꾸준함으로 빛나서 남들도 알아보는 작가가 되었다. 인터뷰 중에 '포기 안 하고 마음속에서 다시 출발'했다고 말하는 장면이 가슴에 남았다. 포기하고 싶을 때는 마음속에서 다시 출발하면 된다는 걸 배웠다.
일흔만 되었어도 더 잘 그릴텐데,라는 아쉬움이 있다는 구십 넘은 작가를 보며 일흔도 구십도 아직 멀면서 스스로 나이 많다고 자꾸 규정짓는 나를 반성했다. 늦은 만큼 더 열심히 하면 되는 거 아닌가.라는 말씀에 또 배운다. 늦었다고 생각하면 더 열심히 하면 되는 것이다. 간단하다. 명료하다. 그 무엇도 시작하기에 늦은 나이란 없다. 대신 꾸준히, 끝까지 하는 힘이 필요할 뿐이다.
여유재순 작가님의 기사를 보다가 그림책 <엠마>가 떠올랐다. 예전에 이 그림책을 보며 일흔두 살에 그림에 도전한 엠마 할머니가 참 멋지다고 생각했는데 여유재순 작가님은 92세이시라니. 정말 나이는 숫자에 불과한 것이 맞다. 신체 나이는 92세이시지만 무언가를 하고자 하는 열정은 20대 못지않으신 걸 보며 마음이 늙은 게 더 슬픈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당신이 하고 싶은 일도 하시면서 사람들에 동기부여를 해주시니 감사하다. 연세도 있으신데 어려운 것을 해내시다니 보다는 부끄러움을 견디며 늦은 만큼 더 열심히 하시는 그 모습이 감동적이다. 닮고 싶은 부분이다. 이제 나도 나의 부끄러움과 기꺼이 동행하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