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차
아이가 어젯밤부터 열이 나기 시작했다. 아침에도 열이 지속되어서 병원에 갔더니 독감이었다. 수액 치료받는 아이를 보며 '독감 주사를 맞아도 독감에 걸리네.'라는 생각이 들었다. 독감 백신을 맞아도 독감에 걸리는 이유는 백신이 모든 바이러스 변종을 막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 개인의 면역 능력에 따라 백신에 대한 반응이 달라지기도 한다. 100% 막지는 못하지만 접종이 중증 위험을 낮춰주기는 하니 백신은 필요하다. 하지만 그보다 평소에 면역력을 키우는 일이 더 중요하다.
어쩌면 우리가 살면서 겪는 힘든 일도 감기나 독감, 코로나 같은 것이 아닐까? 면역력이 떨어지면 그 틈을 타서 오는 감기처럼 마음이 약해져 있으면 생기는 일들도 있으니 말이다. 인생에서 일어나는 안 좋은 일들을 예측하기는 어렵다. 대신 어떤 일을 겪을 때마다 조금씩 그 비슷한 일들에 대한 면역력이 생긴다. 예를 들면, 사람을 무조건 믿어서 배신당한 경험, 누군가에게 가스라이팅 당했던 경험이 여러 번 있는 사람이라면 이제 한 번쯤은 의심하고 사람을 대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내가 이 정도의 사람과 상황은 알아차리고 대응할 수 있겠다 싶으면 더 강한 상대와 상황을 만나게 된다. 변종 바이러스처럼 말이다. 그땐 또 내가 '독감'에 걸리게 되는 것이다. 알고 보면 인생은 끊임없이 겪어내며 살아야 하는 일이다. 그러니 우리는 몸과 마음의 면역력을 키워야 한다. 병으로부터 나를 지키는 힘이 면역력이라면 인생의 고난 속에서 나를 지키는 힘은 인생면역력이다.
어떤 사람은 백신을 맞지 않아도 독감이나 코로나에 걸리지 않는다. 또 어떤 사람은 맞았는데도 걸린다. 개인 면역력의 차이다. 인생면역력도 마찬가지다. 예기치 못한 일이 생겼을 때 어떤 사람은 멘탈이 바로 무너지고, 어떤 사람은 이미 일어난 일이라고 빠르게 인정하고 대책을 마련한다. 나이 들수록 우리는 후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생에서 일어나는 모든 (변종 바이러스 같은) 변수에 대처할 수 없다고 해도 인생면역력을 키우며 사는 사람이라면 인생면역력이 약한 사람보다는 그 시간을 덜 힘들게 보낼 것이다.
아프고 나면 아이들은 훌쩍 큰다. 어른도 그렇다. 돌이켜보면 성인이 된 후에 겪었던 힘들고 아픈 일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그 일들 덕분에 생긴 면역력이 분명히 있다. 내 마음을 잘 돌보는 것이 나의 인생면역력을 높이는 일이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 되도록이면 좋은 생각을 하고, 좋아하는 일을 찾아 하고, 좋은 사람을 골라 만나면서 나를 자꾸 '좋은 곳'으로 데려가면 내 면역력은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인생독감에 걸려도 빨리 나을 수 있는 인생면역력을 키우는 일은 나 하기에 달렸다. 이렇게 떠오른 생각을 표현하며 매일 쓰는 일도 나에겐 인생면역력을 높이는 일이다. 내일도 인생면역력을 키우며 보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