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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착한별 Nov 09. 2024

엄마, 낙엽이 나도 좀 안아줘 하면서 달려오는 것 같아

아이 말 문장 수집


엄마, 낙엽이 나도 좀 안아줘 하면서
달려오는 것 같아.



며칠 전 하교 길에 바람이 불던 날에 아이가 한 말이다. 가끔씩 아이가 하는 예쁜 말을 들으면 '어디서 이렇게 예쁜 아이가 왔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나의 말을 듣고 자랐다지만 아이가 하는 말들이 오히려 나를 웃고 울고 자라게 한다.



하늘의 별처럼 반짝이는 말들을 쏟아내던 시절이 있었다. 4살에서 6살 사이에 특히 그랬다. 그래서 그때는 수시로 적었다. 오랜만에 세줄일기앱에 다시 들어가서 읽다가 혼자 또 울고 웃었다.


내가 엄마 아빠 결혼식에 못 가서
축하를 못해줬잖아.
그래서 지금 편지를 써주는 거야.


5살 즈음, 윤지회 작가의 <엄마 아빠 결혼 이야기> 그림책만 몇 날며칠을 읽어달라던 때가 있었다. 아이는 결혼식이라는 것도 신기하고 엄마 아빠의 결혼식도 궁금했던 거다. 그래서 결혼식 영상도 보여주고 앨범도 보여주었더니 자기는 왜 사진에 없냐며 한참을 속상해했다. 그러곤 아직 서툰 한글로 축하 편지를 써서 내게 주었다. 못 가서 축하를 못해줬으니 지금이라도 축하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어있었다. 엄마 아빠랑 함께 하지 못한 순간이 서운하면서도 진심으로 축하해 주는 마음이 예뻐서 꼭 안아주었다.



엄마, 하루가 지나가질 않아.


늘 놀면서 다음 놀거리를 궁리하는 아이다. 놀아도 놀아도 부족하다고 말하는 아이인데 집에만 있었더니 지루하고 심심하다는 표현을 하루가 지나가질 않는다고 해서 웃었던 기억이 난다. 시계를 볼 줄 모르던 때이니 시간을 알고서 하는 말이라기보다는 집에서는 더 이상 놀거리가 없으니 밖으로 나가자는 말이었을 것이다. 이렇게 하루가 지나가질 않아라고 말하던 아이는 어느새 초등학생이 되요즘 하루가 너무 빠르게 지나간다고 말한다. 학교 갔다가 학원 한 군데 다녀와도 아직 하루는 많이 남아 있는데 이젠 하고 싶은 게 많아서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것이다. "엄마, 내가 자면서 생각한 거야."라고 일어나자마자 뚝딱 무언가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이제 하루가 지나가질 않아라고 말할 일은 당분간 없을 것 같다.


엄마, 나 움직일 수가 없어.


아름다운 것에 취해 던 길을 멈추고 바라보게 되는 순간아이는 이렇게 표현했다. 주저앉아서 꽃의 눈높이로 가만히 들여다보는 모습을 보며 "엄마가 너를 처음 만났을 때도 그랬어"라고 말해주었다. 너를 만난 이후로 엄마는 매일 감탄하보고 있다고 요즘도 이야기해주고 있다. 아이 살면서 그런 순간들을 가끔 만났으면 좋겠다. 그 자연일 수도, 사람일 수도 그리고 하고 싶은 일일 수도 있을 것이다.


엄마, 오늘 기분이 안 좋아?
내일도 안 좋을 예정이야?


엄마가 몸이 아프면 기분이 안 좋고 기분이 안 좋으면 자기에게 덜 친절하다는 걸 아는 아이는 내일도 기분이 안 좋을 예정이냐고 물은 거였다. 그 말이 너무 웃겨서 한참을 웃었다. 아무리 기분이 안 좋아도 내일까지는 가져가지 말아야지,라는 생각 들었던 날이었다. 육아는 내가 아이를 키우는 것 같지만 사실은 아이가 나를 키우는 시간이기도 하다. 육아는 엄마와 아이가 함께 성장하는 시간이다.


나무야 괜찮니? 나무야 잘 가.


새로 지은 아파트 어린 나무들도 많고 큰 나무들 중에서도 제대로 뿌리를 못 내리는 나무들이 종종 있다. 등원 길에 베이고 잘린 나무를 본 아이는 나무 걱정이 되었나 보다. 아이가 괜찮냐고 잘 가라고  말나무는 들었을 것이다. 아이는 종종 내게도 "엄마, 괜찮아?"라고 물어본다. 그럴 때마다 안 괜찮았던 마음도 조금 괜찮아진다. 자연과 사람 사이 그리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괜찮냐고 물어봐주는 마음이 필요하다.


왜 이렇게 힘없이 뚝뚝 흘려내려?
그냥 물이 되네. 마음 아프네.


거품은 당연히 꺼지고 흘러내리고 물이 되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이의 말에 다시 들여다보게 되었던 날이다. 예쁘고 멋지고 사람들이 좋아해 주는 건 '순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힘 없이 뚝뚝 흘러내리고 물이 되는 걸 아무렇지 않게 보거나 당연한 줄 아는 사람들이 대부분인데 그걸 지켜보며 마음 아프다고 하는 섬세한 아이였다. 작은 것도 놓치지 않고 관찰하고 감정이입 하는 아이다. 그 고운 마음으로 세상의 '작고 아프고 잘 보이지 않는 것들'도 잘 알아보고 그곳에도 마음 쓰는 사람으로 자랐으면 좋겠다.


아이 눈부셔 참외줄이 너무 눈이 부셔.


아삭하고 시원한 참외를 좋아하는 아이는 과일 가게 앞에서 참외 사달라는 말을 이리도 예쁘게 했었다. 과일가게 아저씨마저 말을 어쩜 그렇게 예쁘게 하냐고 칭찬하셨던 날이다. 참외줄이 흰색인 건 알았지만 그걸 눈부시다고 표현하다니 그날 이후로 나는 참외를 볼 때마다 '눈부시게 빛나는 참외'라 생하게 되었다. 들아, 너도 눈부시게 빛나는 아이야.



안 울게 하는 게 이렇게 어려운 건지 몰랐어.


우는 너를 안아주고 달래주는 건 늘 엄마인 나의 몫이었는데 여섯 살인 네가 나를 안아주고 달래주려고 했을 때 큰 위로가 되었고 감동이었다. 안 울게 하기는 힘들지만 안아주고 위로해 주려는 마음은 꼭 전달된다는 것을 넌 그날 알았을 것이다.



이 꽃은 색이 왜 그래? 누가 좀 안아줘야겠다.


공원을 산책하다 보면 잘 자란 꽃들 사이에 잘 자라지 못한 꽃이나 식물들이 보인다. 검은색으로 변한 꽃을 보며 누가 좀 안아줘야겠다고 말하는 아이의 말을 들으면서 울컥했다. 식물뿐일까, 살다 보면 사도 잘 피지 못할 때도 어두운 색일 때도 있다. 그럴 땐 아이의 말처럼 누가 좀 안아줘야 하는 거다.  내가 검은색 꽃이라면 나 좀 안아달라고 하고 다른 사람이 검은색 꽃 같다면 내가 안아주고 그리 살면 좋겠다.


오늘은 용기를 낸 거지


단지 내에 까치가 제법 눈에 보인다. 어른인 나는 사람들과 같이 살아서 인지 지나가도 잘 피하지도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아이는 까치가 오늘은 용기를 낸 거라고 그리고 까치도 입주민이라고 했다. 아파트에 같이 산다고 입주민이라고 해주는 마음이 예뻤다. 그리고 나는 까치처럼 '오늘은 용기를 낸' 사람인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보고 듣고 느낀 것을 말과 글로 제대로 표현할 줄 아는 사람


내 육아관은 '보고 듣고 느낀 것을 말과 글로 제대로 표현할 줄 아는 사람'으로 키우는 것이다. 그리고 나도 그런 사람으로 살고 싶다. 내가 키운 아이라서 나를 닮았다고 생각했는데 아이는 나보다 더 섬세하고 따뜻한 사람이다. 내가 매일 감탄, 감동, 감사하는 삶을 살게 한다. 아이의 예쁜 말이 순간 속에 흩어지지 않게 앞으로도 잘 기록해 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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