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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효정 Sep 17. 2024

금붕어와 빅토리아 연꽃

작은 어항에 살던

아주 작은 금붕어는

어항 밖 세상이 궁금했어


투명한 유리벽 너머

저 넓은 세상에는

누가 살고 있을까


나는 얼마나 빨리

얼마나 멀리

헤엄칠 수 있을까


커다란 까만 눈 두 개가

날마다 나를 바라보더니

어느 날 이른 아침

어항을 안고 호수로 갔지


나는 학원 뺑뺑이로

갇혀 살지만

금붕어야 너는 이제 자유야


아이는 물 위에 사알짝

작은 어항을 기울여주었어


그렇게 나는 드넓은 세상을 만난 거야

물속을 통과하는 투명한 햇살

어둑한 대기 속의 풀벌레 소리

한 번도 보지 못한 세상의 문이

내 앞에 활짝 열렸어


세월이 흘러갔지, 아주 빠르게 말이야

아이는 자신이

금붕어를 놓아준 것도 잊어버리고

이 학원에서 저 학원으로

전전하다가 지친 얼굴로

어느 작은 대학에 들어갔어


달빛 그윽한 가을밤

키가 커진 아이가 호수 난간에 기대 서있어

어른 팔뚝만 한 잿빛 잉어 떼 사이에

잉어만큼 자란 주황빛 금붕어


몰라보게 자랐구나

나의 금붕어야

까만 눈이 반짝 빛났어

 

나의 친구 나의 은인

네 덕분에 호수 전체를 헤엄치며

나는 이만큼 커졌단다

금붕어는 신이 나서 춤추었지


빅토리아 연꽃 주위를

천천히 돌며

금붕어는 인사를 했어

당당하고 강렬한 연꽃

거대한 하트 모양의 푸른 이파리는

너에게 보내는 나의 정다운 인사


아이야 세상을 헤엄쳐라

유리벽을 넘어

너만의 빅토리아 연꽃을

찾아 떠나라


연꽃 주위를 도는

금붕어의 춤이

잔잔한 호수 위에

잔 물결을 만든다


달빛 속에

단 삼일 동안

뜨겁게 피어나는

빅토리아 연꽃



거대하게 자란 금붕어 2024년 9월


빅토리아 연꽃,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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