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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 내가 있었다_바람의 꽃 루핀

영화 [인투더 와일드]를 보고

by 남효정 Jan 14.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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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 내가 있었다_바람의 꽃 루핀


                                            남효정


온전한 자신을 알기 위해

그는 모두 불에 태웠다

졸업장과 면허증과 주머니에

남은 몇 장의 지폐를


아무도 그의 삶에 관여하지 않는 곳

차갑고 또렷한 눈으로 자신을 보며

오롯이 이 순간을 살아

기운찬 연어처럼 펄떡거릴 곳

발가벗은 자연과 하나 되는 곳

알래스카로 그는 가고 싶었다


저 강을 건너면 알래스카야

거센 물결을 건너

뜨거운 심장이 원하는

바로 그곳으로 그는 가려했지


자신을 가둔

네모난 쇠창살을 뜯어내고

스스로를 탈출시켜

원시의 땅 위에 완벽하게

그를 풀어주는 꿈

참 근사한 일이었어


그가 원시의 숲에 버려진

버려진 버스 창틀에

낡은 신발을 신은 발을 올리고

톨스토이나 잭 런던을

소리 내어 읽을 때


바람이 불었다

그리고

그곳에 내가 있었다

바람의 꽃, 루핀


나는 너의 이야기를 모두 들었지

이제 네가 나의 이야기를 들을 차례

너는 그만 하늘의 별이 되었어

가장 반짝이는 별


네가 건너려 한 거센 물결

500미터만 옆으로 걸어가면

강을 건너는 도르래가 있다고

다른 방향으로 주위를 둘러보면

가까이에 산장이 있으니 가보라고

나는 너에게 말하고 있었어

울음 섞인 목소리로


알래스카의 주민이 되어

차가운 강물 속 물고기처럼

펄떡거리는 삶을 살길

나는 붉게 응원했어


네가 낡은 신발을 신은 발을

낡은 버스 창틀에 올리고

바이런의 시를

소리 내어 읊을 때


그때, 바람이 불었지

바로 그곳에 내가 피어 있었음을

기억해 줘

내가 너를 기억하는 것처럼


바람의 꽃, 루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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