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인투더 와일드]를 보고
그곳에 내가 있었다_바람의 꽃 루핀
남효정
온전한 자신을 알기 위해
그는 모두 불에 태웠다
졸업장과 면허증과 주머니에
남은 몇 장의 지폐를
아무도 그의 삶에 관여하지 않는 곳
차갑고 또렷한 눈으로 자신을 보며
오롯이 이 순간을 살아
기운찬 연어처럼 펄떡거릴 곳
발가벗은 자연과 하나 되는 곳
알래스카로 그는 가고 싶었다
저 강을 건너면 알래스카야
거센 물결을 건너
뜨거운 심장이 원하는
바로 그곳으로 그는 가려했지
자신을 가둔
네모난 쇠창살을 뜯어내고
스스로를 탈출시켜
원시의 땅 위에 완벽하게
그를 풀어주는 꿈
참 근사한 일이었어
그가 원시의 숲에 버려진
버려진 버스 창틀에
낡은 신발을 신은 발을 올리고
톨스토이나 잭 런던을
소리 내어 읽을 때
바람이 불었다
그리고
그곳에 내가 있었다
바람의 꽃, 루핀
나는 너의 이야기를 모두 들었지
이제 네가 나의 이야기를 들을 차례
너는 그만 하늘의 별이 되었어
가장 반짝이는 별
네가 건너려 한 거센 물결
500미터만 옆으로 걸어가면
강을 건너는 도르래가 있다고
다른 방향으로 주위를 둘러보면
가까이에 산장이 있으니 가보라고
나는 너에게 말하고 있었어
울음 섞인 목소리로
알래스카의 주민이 되어
차가운 강물 속 물고기처럼
펄떡거리는 삶을 살길
나는 붉게 응원했어
네가 낡은 신발을 신은 발을
낡은 버스 창틀에 올리고
바이런의 시를
소리 내어 읊을 때
그때, 바람이 불었지
바로 그곳에 내가 피어 있었음을
기억해 줘
내가 너를 기억하는 것처럼
바람의 꽃, 루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