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 백합의 골짜기로
남효정
코 끝이 빨개지는 추운 날
또각또각 걸어서 도착한
남대문 꽃시장
나는 눈부시게 하얀
백합을 한 아름 산다
꽃이 피어나는 걸
바라보며
작은 식탁에 앉아
밥을 먹을 때
나는 듣게 되었지
차가운 대기 저편
멀리 몇 개의 능선을 넘으면
백합의 골짜기가 있다는 걸
그곳은 진실의 돌과 바람이
천둥처럼 살아 있는 곳
가자, 백합의 골짜기로
하얗게 피어나는 마음
가득 모아서
쓰고 간 챙 넓은 모자에
가득 담아 오자
거무튀튀한 거짓말은
길고 날카로운 은빛 칼로
단박에 베어내
발아래 힘차게 던져버리고
순백의 오롯한 마음만 남는
백합의 골짜기로, 가자
얼음을 깨고 찬 개울물에
맑게 눈를 씻고
작은 새가 날아오를 때
흐린 귀를 닦아보리라
진실만 골라 담는
단단한 주머니를 들고
백합의 골짜기에서
아이들이 힘차게 걸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