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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효정 Jun 03. 2024

선유도와 망고 빙수

6월이 시작되는 첫날.

마침 토요일이라 선유도 공원에 다녀왔어요.

해야 할 일들도 많고 부족한 잠을 더 자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새로운 공간이 주는 새로운 아이디어 대한 기대와 반가운 얼굴들을 만날 생각에 이른 아침부터 서둘렀지요.


사진 왼쪽이 선유도 공원이에요


참 쨍그랑하게 맑은 날. 선유도에는 밤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고 담쟁이덩굴이 싱그럽게 자라고 있습니다. 그런데 바람은 쌀쌀하고 햇살이 살갛에 뜨겁게 내려 꽂히는 참으로 낯선 날씨입니다.


시원하게 차려입은 여름 원피스가 나무그늘에서는 조금 춥게 느껴지지만 햇볕으로 나오면 다시 열대의 나라에 와 있는 듯이 덥습니다. 사진을 배우기 시작한 언니가 의상까지 준비해 와 동생을 모델로 여러 컷의 사진을 찍는 사이 저는 천천히 걸으며 선유도의 초록빛 싱그러움에 흠뻑 취합니다.


 선유도 공원은 원래 선유봉이라는 작은 봉우리가 있던 자리였대요. 일강점기에 길 포장과 홍수방지 등을 위해 암석을 채취하기 시작하면서 섬의 모습이 변화되었고 제2 한강교를 건설할 때(1962년~1965년) 선유봉은 완전히 사라졌다고 합니다. 1978년부터 2000년까지 서울시민들이 사용하는 물의 정수장으로 사용되었고 2000년에 폐쇄되었어요. 그 후 선유도는 물을 주제로 한 공원으로 다시 태어나 물을 소중함을 경험하는 시민 공원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물을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저는 큰 아이 이름에 물 하(河) 자를 넣을 정도로 물을 의미 있게 생각합니다. 신기하게도 아이는 엄마, 아빠라는 말 보다 '물'이라는 말을 제일 먼저 말하여 저희를 깜짝 놀라게 하였습니다. 물은 생명입니다. 물이 있는 곳에서는 생명이 자라납니다. 시냇물에도 송사리, 가재, 다슬기, 피라미 등 온갖 생명이 살아요. 강물은 굽이굽이 흘러 수많은 동식물들의 생명수가 됩니다. 바다는 더 큰 생명의 보고이지요. 물은 유연합니다. 모든 것을 품고 살아나게 합니다.


물은 신비롭고 끝없이 영감을 불러일으킵니다.


몇 해 전 데이비드 호크니의 전시회가 시청역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렸습니다. 수영장의 물을 튀기는 순간을 포착하여 생동감 있게 표현한 '더 큰 첨벙(A Bigger Splash)라는 작품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데이비드 호크니 '더 큰 첨벙(A Bigger Splash)'


마침 그날은 선유도에서 ‘선유로운 축제’를 하는 날이라 학생들이 그림 그리기 대회에 참여하기 위해 모여들고 있었고 마칭 밴드의 흥겨운 음악이 자그마한 섬에 흥겹게 울려 퍼졌습니다. 악기를 연주하며 춤추듯 움직이는 젊은이들을 구경하노라니 저기 파란 하늘에 흰구름처럼 가볍고 유쾌해 보입니다.


마칭 밴드(Marching Band) 공연 모습


점심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눕니다. 우리 자매들은 만나면 할 이야기가 너무나 많습니다. 평소에 전화 통화를 오래 해도 나중엔 꼭 자세한 이야기는 만나서 하자고 마무리하곤 하였습니다. 투덕투덕 다투기도 하고 다시 화해하고 마음속 이야기를 나눕니다. 엄마와 딸이 그러하듯이 자매들도 끝까지 평생친구인 것 같아요.


“여기 동네 맛집인가 봐. 할머니들이 똑같이 머리에 미용실캡을 쓰고 식사하러 오셨어.”

“뭔가 되게 귀여우시다. “

“저 연세에 동네에 다 같이 미용실 가서 머리 말다가 같이 밥 먹을 친구가 있으면 얼마나 행복해.”


 정답게 이야기를 나누며 식사를 하던 할머니 세 분은 잰걸음으로 다시 같은 방향으로 움직였어요. 아마 미용실에서 중화제를 바를 타이밍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도 식사를 마치고 동네산책을 하다가 눈에 보이는 가장 큰 카페로 들어갔습니다. 기온이 많이 올라 후덥지근합니다. 망고빙수에 콤부차와 커피를 주문하는데 아르바이트를 하는 대학생쯤 되어 보이는 사람이 매우 건조한 얼굴로 표정 없이 말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어서 웃음이 나옵니다.


“저렇게 일하면 에너지가 하나도 필요하지 않겠어.”

“신기하다. 어떻게 저리 무표정일까?”

“아니야, 주문하면서 망설이면 미간을 찡그리며 인상을 쓰던데. 그러려니 해. 요즘애들 다 그래.”


우리는 화제를 우리에게로 돌려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가족을 아끼고 사랑하지만 가족이야기를 많이 하기보다는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더 좋습니다. 가족을 보살피고 신경 쓰느라 우리 자신을 위해 해야 할 일들을 미루어 두지 않도록 잘 챙겨서 언제나 건강하고 소중한 나로 남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행복해야 가족도 행복하게 해 줄 수 있으니까요.


“언니, 요즘 사진 열심히 배우네.”

“웅, 사진도 배워야 잘 찍지. 조금만 기다려봐. 내가 아주 멋지게 사진 찍어줄게.”

“너는 요즘 떡 많이 배웠지?”

“많이 배웠지, 이제 웬만한 떡은 다 만들 수 있어. 근데 요즘은 아저씨들이 떡 강좌에 왜 이렇게 많은 거야?”

“좋은 일이지. 잘 배워가지고 집에서 떡 해주는 아빠, 멋진데! 나는 운동을 좀 배워야겠어. 체력을 좀 키워서 등산도 가고 캠핑도 가고 도보여행도 하고 싶다.”


이야기를 나누며 카페 통창으로 보이는 거리의 사람들을 관찰합니다.

아이 엄마가 풍선을 줄에 매단 아이 둘을 양쪽으로 한 명씩 손을 잡고 횡단보도를 건너고 흰 셔츠와 청바지로 커플룩을 맞춰 입은 연인 한쌍이 지나갑니다.


카페 안에서는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 수화로 하는 손짓만으로도 한바탕 수다가 이어지는 나이 든 커플도 보이고요. 또 편안한 시간이 흘러갑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시민들의 편안한 일상을 지켜내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가?' 


망고빙수가 녹아내립니다.

올여름은 매우 더운 날씨가 지속된다고 하니 모두들 건강하시길 기원하는 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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