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료.

덜컥, 서른여섯(4)

by 갑자기 흰수염

사료


반려견 운동장을 찾았다. 풀어놓고 자유를 느끼게 하고 싶었다. 냄새 맡고 뛰어놀고 헤집고 다니길 바랐다. 나 없이. ‘내가 너에게 이만큼 해주니 알아서 잘 놀아봐, 이 시간만큼은 너의 것이야’라는 마음이었다. 역시 개는 혼자 놀지 않았다. 운동장에 홀로 두고 담배를 피우러 가거나 커피를 사러가는 그 짧은 시간동안 짖거나 끙끙대거나 운동장 벽을 마구 긁었다.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는 나는 개가 이해되지 않았다. 시간을 줘도 자유롭지 못한 바람이가 야속했다.


이른 시간에 도착했지만 운동장에는 개들이 많았다. 평일임에도 많은 개들이 차에서 내렸다. 뭐하는 사람들이길래 평일에 이런 시간을 낼 수 있는지 의심의 눈초리로 그들을 보았다. 그들의 차, 복장을 봤다고 하는게 솔직하다. 돈이 많은지를 염탐한 것이리라. 단정하게 손질된 털, 개가 차고 있는 목걸이, 개를 끄는 줄의 품질이 눈에 들어왔다. 3000원짜리 내 것과 비교됐다. 개들이 들어오자 바람이는 미친듯이 좋아했다. 나의 빈자리 따위는 안중에도 없이 함께 뛰고 짖고 장난치며 놀아댔다. 자연스레 보호자들과 말을 섞었다. 바람이와 같은 종의 개도 있었기에 그 보호자와 많은 이야기를 하게 됐다. 같은 종인데 확연히 차이나는 몸의 크기가 눈에 밟혔다. 짧은 지식이지만 개는 태어나서 1년이면 몸이 다 큰다고 들어왔던 터였다. 내 개가 정확하게 언제 태어났는지 알 수 없지만 데려올 당시 2017년생이라고 추정했고 그러면 2018년 말을 향해가는 지금은 이미 다 큰 성견이여야 했다. 티 나게 작은 바람이를 보고 남들의 시선이 두려워서였을까. 슬며시 그 보호자에게 뭘 먹어야 저렇게 건강하게 크냐고 물어봤다. 사료부터 간식까지 줄줄이 이어져 나왔다. 나의 사료는 대형마트에서 파는 가장 싼 제품이었다. 상대 보호자가 내 개의 사료부터 물어봤을 때 솔직하게 말하지 못했다. 인터넷에서 얼핏 본 비싼 브랜드를 말하니 그정도면 충분히 더 클 거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돈이 없어서 사랑이 부족해서 가장 저렴한 사료를 먹이는게 아닐까하는 열등감 비슷한 감정이 들었다. 개를 위해 건조기를 사고 수제간식을 만들어 준다는 보호자가 간식을 꺼내 바람이에게 주자 좋아하는 모습을 보며 또 한번 자격지심이 들었다. 평일에 반려견 운동장을 찾는 보호자들의 삶 또한 나를 작아지게 만들었지만 무엇보다도 개 한마리 제대로 키우지 못하고 있는 것 같은 마음이 더 싫었다. 서둘러 바람이를 차에 태워 집으로 향했다. 가기 싫은 녀석을 억지로 태우니 차 안에서 끙끙대고 계속 뒤를 쳐다보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

"뭘 더 바래. 이만큼 해줬잖아. 내가 여길 온 것만으로도 고마워해야 하는거 아니냐"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었겠지만 소리를 지르니 꼬리를 내리고 내 눈치를 봤다. 또 내가 싫어졌다. 집으로 돌아오는 30분이 지옥같았다. 퇴사 이후 뭐하나 제대로 하는 게 없는 나를 개를 기르면서 늘 마주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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