덜컥, 서른여섯(5)
귀농
사람이 부른다.
“00가 너 보고 싶다는데 술 먹으러 나와라”, “어차피 복귀할 거잖아. 지금 00관계자와 저녁 약속 있는데 너 이야기하더라. 함께 마시자”
나가기 싫었다. 사회인 역할을 그만두고 싶었고 잠시 내려놓고 싶었는데 왜 부르는지 귀찮았다. 고마워해야 했을까. 그런 마음이 들지 않았으니 나름의 그럴싸한 이유를 만들어야 했다.
“현재 저는 지방에 내려와 있습니다. 자연과 함께 하고 있으니 약속에 참석할 수 없습니다”
내가 생각하기에 아주 좋은 이유였다. 세상을 등지고 잠시 모든 걸 내려놓고 자연의 순리대로 사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큰 이모가 거주하는 경남은 해가 뜨면 일하고 지면 잠을 청하는 동네였다. 가로등조차 해가 지는 순간보다 아주 조금 더 동네를 비춰줄 뿐이었다. 사람을 피하기 위한 아주 좋은 이유였다. 사회를 떠났지만 휴대전화를 놓지 못하는 버릇을 고치지 못했으면서도 그들의 전화와 문자를 그 순간에 마주하면서도 응답하지 않아도 되는 적절한 변명이었다.
자연과 함께 하고 있다는 나만의 그럴듯한 변명이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다가갔을까. 뒤늦게 들은 바로는 내가 본격적으로 귀농을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나는 농촌에서 자랐다. 전형적인 배산임수에 마을이 생겼고 할아버지, 아버지에 이어 나는 그 동네의 같은 집에서 태어났다. 아파트 붐이 불던 시기였지만 나는 집에서 떨어진 푸세식 화장실을 사용했고 신문지는 귀중한 밑거리였다. 그런 내가 아주 잘 아는 한 가지는 생명을 기르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농촌에서 자랐지만 텃밭을 가꿔본 적도 없고 절기에 따라 어떤 씨앗을 뿌리는지 모른다. 하물며 들판에 핀 꽃의 이름도 모르고 먹을 수 있는 작물도 분간할 수 없다. 그저 농촌에 살았을 뿐이다. 부모의 학구열 덕분에 농촌에 살면서도 위장전입으로 신도시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다녔을 뿐 대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 나는 그 동네에 살았다. 지금 생각해도 환경이 그러할진대 생명의 주기를 모르는 내가 이상스럽다. 분명 농번기에 경운기를 운전하기도 했고 소 여물을 줬는데 아무 생각없이 시키는 일만 해서 이다지도 무개념한건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그러면서도 자연을 아는 척하고 자연과 함께 사는 것이 인간답게 사는 것일지 모른다고 주장하는 나의 얄팍한 마음이 퇴사 후 그런 변명을 만들었을지 모르겠다. 하여튼 나만 생각하는 그럴듯한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나의 오늘을 알려줄 수 있었다. 그리고 시간을 벌었다. 왜 계속 나를 찾는 타인으로부터 시간을 벌려고 했는지 지금도 모르겠지만 그들의 관심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시간을 벌었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