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개는 아냐.

덜컥, 서른여섯(7)

by 갑자기 흰수염

내 개는 아냐


개를 기르기 시작하면서 집에 초를 켜놓는 습관이 생겼다. 자주 씻기면 피부에 안 좋다길래 2주에 한번 꼴로 샤워를 시켰지만 개를 기르는 집에서 나는 특유의 냄새를 없애려고 거실, 방, 화장실 등에 켜놓았다. 어느 날 밤 방에서 자고 있는데 ‘타닥타닥’ 소리가 거실에서 들려왔다. 늦은 새벽이라 잘못들었나 싶었지만 ‘타닥타닥’ 소리는 더욱 커졌다. 귀신이라도 들어왔나라는 황당한 생각에 잔뜩 몸을 움츠리고 조심스레 거실로 나왔다. 거실 식탁 위에 올려놓은 초가 다 타고 테이블로 불이 옮겨 붙어 나는 소리였다. 당황하면 멍청해진다고, 테이블 위에 붙은 불을 향해 물을 끼얹었다. 매캐한 연기와 함께 불은 더욱 거세졌다. 의자에 걸쳐둔 카디건으로 불을 마구 때렸다. 흩날리는 재와 함께 비교적 안전하게 불이 꺼졌다. 잠시 멍하니 타다 만 테이블을 지켜봤다. 정신이 들 때쯤 바람이를 찾았다. 베란다, 테이블 아래, 화장실 쪽을 두리번거렸다. 바람이가 보이지 않았다. 또 한번 당황의 순간이 찾아올 찰나 현관문 앞에서 나를 바라보는 바람이를 발견했다. 녀석도 적잖이 놀란듯 나를 보면서 ‘언능 문열고 도망가자’라는 눈빛을 보내는 것 같았다. 허탈한 웃음이 나왔다.


사람은 쉽게 기대한다. 자연스럽게 바란다. 나에게도 기적같은 일이 일어날거라 꿈꾼다. 개를 데려오면서 했던 여러 상상 중 하나는 위험한 상황에서 나를 지켜주는 개의 모습이었다. TV에서는 흔한 주제다. 불난 집에 주인을 지키려 몸부림쳤던 개, 도둑이 들어와 주인을 지키다 죽은 개. 주인을 잊지 못하고 한자리를 맴도는 개. 그런 일이 나에게는 일어나지 않았다. 자고 있는 나에게 위험을 알리려 하지 않았고 다급하게 불을 끄는 나와 달리 현관문이 열리자마자 나갈 채비를 한 듯한 바람이. 여러 생각들이 스쳐지나갔지만 조용히 바람이를 불러보았다. 탄 냄새와 어지러히 흔들리는 연기들이 무서운지 바람이는 한 발 한 발 조심스레 나에게 다가왔다.

“괜찮아. 불 다 껐어. 무서웠지. 이젠 다 괜찮아. 아들”

조심스레 앉아주고 머리를 토닥여줬다. 딱히 할 일도 없는 내일의 연속이니깐 새벽에 부산떨며 청소를 하고 싶지 않았다. 그냥 다 냅두고 다시 잠을 청했다. 왠지 모르게 편안한 마음이 들었다.

‘누구든 어때, 지켜주는 존재가 있으면 보살핌 받는 존재도 있는거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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