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간 산책.

덜컥, 서른여섯(9)

by 갑자기 흰수염

야간 산책


바람이가 덩치가 있다보니 낮에 산책을 가는게 부담이었다.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사람을 마주칠 때 꺼리는 사람도 있었고 산책을 하다 작은 개들을 만나면 통제불능이 됐다. 자정에 이르는 시간에 나가는 산책이 여러모로 좋았다. 나도 사람 눈치 안 봐 좋고 바람이도 흥분하지 않고 풀과 꽃을 먹곤했다. 어느 날인가 바람이와 같은 종의 개를 만났다. 그 주인은 개와 자전거를 연결해 운동을 시키고 있었다. 같이 운동한답시고 바람이와 함께 공원 산책로를 뛰어보기도 했던 나였다. 질질 끌려가기 일쑤라 스트레스받고 포기하던 차에 그 주인과 개의 모습은 환상의 하모니였다.

중고로 자전거를 구매하고 자전거에 바람이를 연결해 함께 산책을 나가보았다. 처음부터 잘 되는 일은 없겠지만 바람이와 호흡이 맞지 않아 줄이 엉키고 자전거가 넘어지면서 무릎이 까졌다. 다행히 바람이는 다치지 않았다. 내가 넘어져도 아랑곳 하지 않고 넘어진 자전거를 끌고 계속 달리는 녀석이었다. 바람이가 좋아하는 것 같아 나도 계속 함께 자전거를 탔다. 언제나 바람이가 자전거보다 앞서 달렸지만 점차 익숙해졌다.


남들 다 자는 밤에 하는 산책은 좋았다. 가라앉은 공기를 얼굴에 흠뻑 맞으며 아무도 없는 산책로를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건 시원했다. 기분 좋아 눈을 동그랗게 뜨고 앞만 보며 달리는 바람이였지만 대소변이 보고 싶어 멈추려고 하는 기색이 보이면 나는 기똥차게 알아채고 자전거를 멈추었다. 산책로 주변에 작은 천에 들어가려고 끙끙되면 자전거를 한쪽에 세워두고 세월와 내월아 물속에서 놀았다. 한겨울에도 한여름에도 바람이는 자전거와 함께 달리다가 물속으로 빠져버렸다. 고개만 보일정도로 물속을 헤집고 다니다가 물도 마시고 다시 달리고 싶으면 물가로 나와 자전거에 줄을 연결할 때까지 기다려줬다. 비가 오는 날에도 눈이 내리는 날에도 바람이와 달렸다. 집으로 돌아오면 물 한바가지 먹은 바람이는 습관처럼 소변을 한사발하고 나에게 인사도 없이 배를 드러내고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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