덜컥, 서른여섯(11)
두 번째 기회
늦은 아침 휴대전화 진동소리에 잠이 깼다. 모르는 번호였다. 전화 올 곳이 딱히 없는 하루들이지만 어딘가 날 알아준 곳에서 취업 관련 좋은 소식을 줄거라는 막연한 상상에 목소리를 가다듬고 전화를 받았다.
“바람이 기르는 사람인데요. 잘 지내셨어요?”
그랬다. 서른여덟이 됐지만 사회로 돌아가지 못한 나였다. 더이상 버티기 어려운 시기가 찾아왔고 공공임대 주택 입주시 넣었던 보증금을 빼서 남은 빚을 청산하고 엄마 집으로 들어온 터였다. 바람이는 그보다 몇개월 전에 다른 집으로 보냈다. 변명같은 건 할 수 없다. 내 삶조차도 책임지지 못하는 생활이었다. 사지 멀쩡한 나는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서 바람이를 책임지지 못했다. 아직 젊으니까, 그래도 하고 싶은 일이 있으니까, 뭐라도 더 해볼 수 있는 나라며 위로하고 가족의 사랑도 받았다. 하지만 안됐다. 정규직 일자리는 구하지 못했고 프리랜서 일도 점점 줄어들었다. 닥치는 대로 원서를 넣었다. 족족 떨어졌다. 간혹 최종면접까지 가더라도 쉽게 떨어졌다. 그래서 바람이를 놓았다. 그게 사실이다.
바람이 파양처를 찾다가 관련 업체를 인터넷 검색으로 알게 됐다. ‘부득이한 사정’으로 개를 파양할 사람이 주로 찾는 곳이었고 전화문의를 해보았다. 전화를 걸면서도 파양 이유를 무엇이라 말해야 할까 고민하는 내가 혐오스러웠다. ‘돈이 없어서요. 직업이 없어서요’ 라고 말할 수도 없었지만 거주지 이동이니 갑작스런 해외 유학이라는 그럴법한 이유를 대려고 하니 더욱 내 자신이 싫어졌다. 가장 마주하기 싫은 나를 처참하게 느끼는 몇초 후에 전화기 너머에 무미건조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업체는 나의 이유 따위는 묻지 않았다. 애초에 파양을 선택한 사람에게 해서는 안되는 질문이라는 교육이라도 받은걸까. 업체 관계자는 개의 종류와 나이, 접종여부, 습관 등을 물어왔다. 나의 짧은 답변 후에 업체는 초기 견적을 내줬다.
“개가 좀 크네요. 그래도 종이 좋으니 금방 다른 집으로 갈 수 있겠네요. 견주께서는 개가 나쁜 습관이 없다고 하지만 저희가 와서 한번 지켜봐야 하고요. 일단 이 정도 되는 개는 최저 120만원에 입소시킬 수 있습니다”
듣는 순간 비용이 부담됐다. 다른 업체에도 전화를 해봤다.
“보통 큰 개는 150만원에서 200만원 선인데, 생긴거 보니 잘 생겼고 큰 문제 없어보이네요. 80만원에서 120만원까지 낮춰드릴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점점 화가 났다. 생활이 쪼들려 몇개월 전에 타던 차를 팔 때가 떠올랐다. 여러 중고차 업체를 돌면서 견적을 받았었다. 응대 자세와 바람이를 대하는 태도가 중고차를 사고파는 업자들 같았다. 하나의 생명을 대하는 태도라고 볼 수 없었다. 알 수 없는 분노로 파양 업체 전화걸기를 포기했다. 누가 누구를 욕할 수 있을까. 장난기 섞인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바람이 앞에서 전화를 건 내가 무슨 자격이 있어서 이런 마음이 드는건가.
인터넷카페를 통해 바람이 파양처를 구했다. 여러 곳에서 연락이 왔다. 물을 자격이 없을 수도 있지만 거주형태와 반려동물 입양 경험 등에 대해 문의한 후 적당한 곳을 결정했다. 미안해라는 말 한마디 해주지 못하고 바람이를 그 집에 보냈다. 종종 바람이가 커가는 사진을 보내줬다. 사진을 확대해서 쳐다봤다. ‘바람이 표정이 조금 뚱한데, 잘 안해주시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의심할 자격도 물어볼 용기도 없었다. 주기적으로 바람이 사진을 받았으나 한번 찾아간다는 말조차 나오지 않았다. 나는 죄를 지은 사람이었다. 바람이를 보낸 후 길거리에서 만나는 개들을 예전과 같이 살갑게 마주하지 못했다. 스쳐지나가는 수많은 개들을 보며 계속 죄지은 사람처럼 멈칫하거나 일부러 시선을 피했다. TV에서 개가 나오면 채널을 돌렸다. 엄마 집으로 들어온 뒤에도 내 옷에 묻어있는 바람이 털을 보면 순간 멍해졌다. 얻어먹은 술로 잔뜩 취하면 휴대전화에 저장된 바람이 동영상과 사진을 보곤했다. 그렇다고 지은 죄가 사라지진 않았다.
바람이를 보낸 집에서 걸려온 전화는 사정상 집을 옮겨야 해 기르던 개들의 거취를 고민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아파트로 이사를 해야 하는데 지금 살고 있는 집에 개들을 두고 2~3일에 한번 꼴로 밥을 주러 오는 방향도 생각하고 있느나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 같다는 말과 함께 바람이와 기르던 개를 주변 집에 맡기는 방향을 고민하고 있다고 알려왔다. 순간적으로 이 사람도 파양을 실질적 방안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걸 느꼈다. 자연스레 바람이를 보냈던 내가 먼저 떠오른 것 같았다.
“아버님 뜻대로 하시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저는....아직....”
말을 다 잇지 못했다. “저는 바람이를 데려올 여력이 안됩니다”라는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 말마저 하면 안될 것 같았다.
‘다행입니다. 바람이가 너무 보고싶었습니다. 그동안 잘 보살펴주셔서 감사합니다. 허락해주신다면 다시 바람이와 함께 살고 싶습니다’
잇지 못하는 말 뒤에 이런 생각이 머릿속을 휘져었다. 하지만 월요일 늦은 아침, 엄마는 일을 나가 집안은 고요했으며 나는 좁은 침대 위에 앉아있을 따름이었다.
“그동안 바람이 잘 길러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아버님 상황이 그러하니 그 방향으로 하시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