덜컥, 서른여섯(10)
프리랜서
통상 남들 다 아는 회사면 무슨 일을 하는지 설명 안 해도 된다. ‘어디 다녀’라고 자기소개를 하면 그걸로 끝인 회사들이 있다. 나 같은 경우는 성격이 모가 나서 남들 다 아는 회사에 다닌다고 해도 ‘그래서 그곳에서 너는 무슨 일을 하느냐’고 묻기도 하지만 대개는 회사 이름으로 그 사람에 대해 더 묻지 않는다. 회사 이름을 조금 알기 어려우면 직무에 대한 추가 설명이 필요하다. ‘어디 어디 회사에서 전산계열에서 일한다’ 그래도 여기까지는 좀 낫다. 둘 다 정규직이라는 설명을 안 해도 된다. 정규직이라는 단어가 주는 사회적 안정감을 갖고 있다고 해야할까.
서른일곱이 된 나는 어렵사리 일을 시작했다. 원래 하던 일이었으나 정규직이 아닌 프리랜서. 바람이도 있고 내가 하고 싶을 때 일한다는 좋은 느낌. 인생을 내가 하고픈 대로 살아간다는 일종의 자부심까지 가질 수 있는 단어로 다가왔다. 그렇지만 프리하게 살면서 일하고 싶을 때 일해서 먹고 살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런 능력을 가진 사람이 몇명이나 있을까. 프리한 일정으로 프리하게 들어오는 돈은 삶은 자유롭게 만들지 않았다. 쪼들리고 전전긍긍하며 생활비를 고민하는 나를 남겨놓았다. 뒤늦게 따박따박 들어오는 월급의 무게를 알았달까. 사회생활을 하면서 애사심을 가져본 적은 없었다. 내 생활을 지켜주는 회사, 조직을 고마워해본 적은 없었다. 회사 시스템이 마음에 들지 않고 연봉협상에서 항상 ‘을’이 될 수밖에 없는 구조를 만든 조직이 좋지 않았다. 다만 내가 하는 일이 좋았고 함께 고생하며 일하는 동료들이 좋았을 뿐이었다. 그런 단체에서 떨어져나오자 나는 철저하게 기댈 곳이 없었다. 국민연금은 내지 못했고 건강보험 미납을 이어가다 힘겹게 납부했다. 개인적으로 사보험, 사연금을 가입하지 않았기 때문에 노후 보장의 최저단계인 국민연금마저 내지 못하자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 휩싸이기도 했다. ‘프리랜서’라는 이름으로 사회에 재진입했지만 최소한의 삶의 미래를 위해 납부해야 하는 돈은 더 버겁기만 했다. 정규직으로 회사에 다닐 때 “국가에서 돈을 너무 많이 떼어가는것 아니냐”는 볼멘소리가 얼마나 복에 겨운 소리였던지 알았다. 내가 선택을 했다지만 같은 일을 하면서 나는 프리랜서 대우, 내 옆자리는 정규직 대우가 주는 위화감도 쉽지 않은 감정으로 다가왔다. 내가 선택을 다시 해서 정규직으로 갈 수 있는 것도 아니었으므로 동일한 일을 하며 마주하는 그들에게 다가가기 어려웠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 일해 격의없이 대해주지만 내안에서 작아지는 나를 어찌하진 못했다.
몇개월이 지나자 프리랜서 딱지를 떼게 해주려는 내부의 시도도 있었다. 조금만 더 하면 정규직으로 들어올 기회가 있을거다 등등의 조심스러운 말들이었지만 말을 건네는 쪽도 듣는 나도 그런 일이 쉽게 오지 않는다는 걸 알만한 나이였다. 프리랜서지만 이제는 한 팀원이 된 것 같아서 나온 말들이었지만 그런 말들을 들으면 어떻게 반응해야하는가도 고민거리였다. 해맑은 표정으로 긍정의 기운을 내뿜으며 “열심히 해야죠”라고 해야할까, 약간 정색하며 조심스럽게 “그냥 하던대로만 하다 기회가 오면 좋겠네요”라고 해야 할까. 밥을 벌어먹고 살아야 하는 사람에게 프리랜서란 이름은 가혹하다. 물론 내가 프리랜서로 살만한 능력이 없는 것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