덜컥, 서른여섯(8)
엄마의 전화
엄마는 나에게 전화를 안 한다. 휴대전화에 엄마의 얼굴이 뜨고 받을라치면 순식간에 끊어진다. 다시 전화를 걸면 “너 바쁠까봐 그러지. 혹시 일하는데 방해될까봐”란다. 내가 사회생활을 시작하며 엄마는 나에게 쉽게, 자주 전화하지 않았다. 그런 엄마가 가끔 밤에 전화를 걸어올 때가 있다. 언제나처럼 난 들을 준비가 안돼 있지만 엄마는 고장난 수도꼭지처럼 쏟아낸다.
“함께 일하는 사람이 작정하고 괴롭혀. 내가 또 당하고 있을 수만은 없잖니. 그래서 나는 화내지 않으면서 논리적으로 지적했지”
“누이는 언제쯤 제대로 산다니. 내가 잘못 키웠나. 내가 힘들게 일하고 들어오면 방긋방긋 웃어주기라도 하지, 맨날 우거지 인상이야”
“너는 언제 결혼하니. 어디가 모자란가”
엄마를 힘들게 하는 주된 것들이다. 그런 문제들은 바로 해결되지도 않는다. 명확한 해답도 없고 골머리 썩으며 생각해봐도 길이 보이지도 않는다. 지금 당장 어찌할 수 없는 문제들로 고민을 털어놓는 엄마에게 말했다.
“지금해서 당장 바뀌지 않는 문제들로 엄마를 괴롭히지 말아. 엄마, 우리 조금 무덤덤하게 살아봅시다”
세상에 어찌할 수 없는 문제는 없다고 생각했던 적도 있다.
‘노력하면 다 된다. 반드시 길은 있다’
하지만 서서히 못 본 체하거나 체념, 단념하고 가슴속에 차곡차곡 답답함을 쌓아가는게 익숙해졌다. 내 바람, 욕망, 현실이 터지지만 않게끔 누르고 누르는 시간들이 익숙해져갔다. 술에 취해도 소리를 지르지 않았다. 거칠 것 없는 바닷가에 가도 내 가슴은 좀처럼 뚫리지 않았다. 그냥 체증이 익숙해졌다.
“나는 사는거 같은데 왜 살아가고 있지 못한거 같을까”
어느날 밤 엄마는 이렇게 말하며 무작정 울기 시작했다. 얼마간 번 돈과 대출을 받아 집도 산 엄마였다. 차도 있고 4대보험 되는 직장에 다니는 엄마였다.
“내가 돈 벌어서 집 대출, 차량 대출도 갚고 생활비하면 돈이 없어. 나는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하니”
짧은 두 문장과 달리 나오는 눈물은 깊었다. 덩달아 나도 울었다. 엄마의 고민이 내 고민이었야하는게 아닌가, 나는 잘 살지 못하고 있구나라는 자책도 있었고 엄마를 도와주지 못하는 무능력한 아들인 내가 싫어서이기도 했다. 별 말없이 수 분을 울었다. 전화기 너머 엄마의 울음소리가 내 눈물을 불렀고 훌쩍거리는 내 목소리가 엄마의 가슴을 울렸나보다. 그리고 별 말없이 끊었다. 엄마는 그렇게 잠들고 일어나 아침에 또다시 회사를 갔을 것이다. 예순을 바라보는 엄마에게 내가 보이는 건 슬프다. 서른 여섯쯤 되면 집도 사고 차도 사고 결혼도 해서 삶을 유지해나가는게 평범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남들 다 한다는 그 평범함과는 거리가 멀다. 특출나서도 아니고 뭔가 대단한 목표가 있어서도 아니다. 보통의 삶이라지만 그래서 더욱 어려운 그 삶을 예순의 엄마가 해내고 있었다. 언제나 그렇듯 엄마의 눈물을 따라갈 수조차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