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고기.

덜컥, 서른여섯(6)

by 갑자기 흰수염

아버지의 고기


가끔 전화가 왔다.

“대화역이니깐 고기 가져가라”

내가 스무살 이후 집을 나간 아버지는 가끔 연락해 밑간 한 돼지고기를 가져다주셨다. 넉넉하게 엄마 집에 한 통, 내 집에 한 통. 몇십 분이고 나를 기다리는 아버지를 보러가는 길은 막막함과 슬픔, 고통이 오장육부에서 돌고 돌면서 밖으로 나갈 구멍을 찾는 느낌이었다. 허름한 옷을 걸치고 지하철 역사에 앉아 멍한 곳을 보고 있는 아버지를 항상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밥이라도 드시고 가세요”

“아니야. 먹고 왔어. 다시 지하철 타고 가야지”

강하게 붙잡지도, 멋쩍게 응하지도 못하는 두 남자의 만남은 항상 그랬다. 먼저 돌아 나올 때도 있었고 먼저 돌아가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지켜본 때도 있었다. 어느 상황이든 응당 그랬어야만 하는 행동을 한 적이 없었다. 그게 뭔지 알았다면 할 수 있었을 것이란 자신도 없었다.

카드 사용 내역으로 아버지의 거주지와 소비를 알 수 있었을 뿐이었다. 씨유불광점에서 1200원 사용했다는 문자가 날아오면 막걸리 하나 사서 드시겠거니 했고 동일유통에서 12570원이 결제되면 또 며칠 뒤에 제육볶음용 돼지고기를 해서 가져오시겠구나를 알 수 있을 뿐이었다. 처음에는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도대체 어째서 맛도 없는 고기를 굳이 먼 거리를 오면서까지 가져오시나. 이런저런 양념을 넣어도 맛이 없는 고기를 가져다주느니 그냥 오시지 말지.


엄마와 단 둘이 저녁을 먹던 어느 날 푸념하듯 엄마가 말했다.

“네 아빠가 돈 필요하대서 얼굴도 볼 겸 지하철 역에서 만났는데 밥도 안 먹고 그냥 가더라”

단돈 천원도 허투루 쓰지 않고 쉰을 훌쩍 넘긴 나이에 첫 사회생활을 시작한 엄마였다. 아버지의 문자에 십만원을 찾아서 건네준 듯했다.

“나랑도 잘 안 먹어. 딱히 만나도 뭐라고 해야 할지도 잘 모르겠어”

엄마는 무조건 내 편이었다. 아버지가 내가 준 카드를 사용하는 것도 몹시 싫어했다. 일상이 견디기 어렵고 숨 막혀올 때 “나도 혼자 알아서 잘 살테니, 애들 돈 쓰지 말아요”라고 아버지에게 문자를 보내는 엄마였다. 그래도 사람이 숨은 쉬고 살아야하지 않겠느냐며 엄마를 말려도 꾸준하게 아버지에게 같은 내용의 문자를 보내곤 했다. 밥을 다 먹고 설거지를 하던 내 등 뒤에서 엄마는 아버지와 만난 이야기를 이어갔다. 지하철 개찰구를 들어가기 전에 편의점에 들른 아버지가 5000원어치 로또를 샀다는 것이었다. 아무 말 않고 바라보던 엄마에게 아버지가 이렇게 말했다고 했다.

“아들이 돈이 없는 거 같아서 이거라도 해보려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내 아버지를 생각했다. 아버지 재산이 몇십억 빚으로 되돌아온 후부터 아버지는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몇십만원이라도 벌어 쓰시길 바랐던 엄마와 누이, 나는 어느 순간 아버지를 놓아버렸다. 제 앞길 살아가기도 벅찬게 우리들이었다. 돈이 필요하다고 하면 미운 마음과 함께 돈 몇푼 보내드릴 뿐이었다. 그런 아버지가 엄마, 누이, 나에게 해줄 수 있는건 고기 한 통이지 않았을까. 가장 싼 돼지고기 부위로 불투명한 거주지에서 밑간을 해서 몇시간이고 지하철을 타고 몇십분이고 자식을 기다리다 웃는 얼굴을 한번도 해주지 않은 아들에게 유일하게 전달할 수 있는 아버지의 마음이 아니었을까.

이전 05화귀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