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정말 식겁했잖아!"

식겁(食怯)

by 쓰야


여러분들도 문득 그런 날이 있지 않나요. 지금같이 눈이 펑펑 쌓인 날, 아무도 밟지 않은 눈을 밟으며 뒹굴거나, 동심(童心)으로 돌아간 것처럼 눈사람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요. 이렇게 방구석에만 있을 수 없겠다 싶어 부랴부랴 옷을 입고 나갈 채비를 했어요. 집 앞 놀이터로 가서 원 없이 눈을 맞으며 방방 뛰기 시작했지 뭐예요. 30대 중반을 향해가고 있지만 뭐 어때요? 이제 쌓인 눈을 가지고 눈사람을 만들어보기로 합니다. 주변에 여기저기 쌓인 눈을 한 데 모아야 하는 작업이 필요하죠. 화단에 쌓인 아주 깨끗한 눈으로만 선별해 옵니다. 눈사람의 몸통부터 아주 커다랗게 굴려줘야 해요. 굴리고 또 굴리고를 반복하면.. 꽤나 봐줄 만한 눈사람의 몸통이 되어가요. 또 굴리고 굴려 머리까지 만들고 주변의 나뭇가지를 활용해 제법 '사람'같은 눈사람이 되어가요. 그럴싸 보이나요?



신나게 눈사람을 만들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갑자기 고양이가 튀어나오는 게 아니겠어요? 가슴을 쓸어내리며 '와, 방금 진짜 식겁했다'라고 중얼거립니다. 우리는 아주 무섭거나 깜짝 놀랄 때 '식겁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삽니다. 어감이 찰져서일까요?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이 단어를 '겁나다'의 강조형인 순우리말이나, 혹은 경상도 방언 정도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단어, 알고 보면 꽤나 뼈대 있는 한자어랍니다!


식겁 (食怯)
食 (먹을 식): 먹다, 삼키다
怯 (겁낼 겁): 겁을 내다, 두려워하다


직역하면 말 그대로 '겁(怯)을 먹다(食)라는 거죠.

우리가 흔히 "겁먹지 마!"라고 할 때의 그 '겁을 먹다'를 한자화한 것이 바로 '식겁'인 셈이죠.


왜 '식겁'일까?

우리는 음식을 먹을 때는 '식(食)'을 쓰지는 않아요. '충격을 먹다', '나이를 먹다', 심지어 '욕을 먹다'처럼 외부의 자극이나 상태를 내 몸 안으로 받아들일 때도 '먹는다'는 표현을 쓰죠.

'식겁'도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예상치 못한 공포나 두려움이 불쑥 닥쳐왔을 때, 그것이 내 몸속으로 훅 들어와 심장을 덜 터 내려앉는 상태를 아주 역동적으로 표현한 단어인 거죠.


이것도 알아두면 완전 꿀잼!

‘식겁’과 비슷한 느낌으로 ‘기겁(氣怯)’이라는 말도 자주 쓰시죠?

식겁(食怯)이 겁을 몸으로 ‘먹은’ 상태라면,

기겁(氣怯)은 너무 놀라 기운(氣)이 겁을 내며 꺾여버린 상태를 말합니다.


이제 누군가 놀라는 모습을 본다면 속으로 생각해 보세요.

‘아, 쟤 식겁했구나!’ 하고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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