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한 지 얼마 안 됐을 때였다. 우연히도 나와 내 처 둘 다 실직과 이직의 중간에 있었다. 고정수입이 중단될까 걱정이던 때에 마침 여행을 다녀오자는 아내의 말에 내 어머님께 푸념 섞인 전화를 했다. ‘어머니, 어머니 며느리는 참 철이 없는 거 같아요. 지금 여행을 가재요…’라 했는데, 어머니의 대답은 뜻밖이었다. ‘준석아, 이럴 때 여행을 다녀와. 좋은 추억 같이 만들고, 또 힘든 일이 있을 때 그런 추억 돌아보면서 견디고 함께 사는 거야’..
‘여행’은 그저 즐거운 놀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여행’의 의미가 전혀 다르게 다가왔다.
2014년 1월 여행, 일본_교토_기온
고정불변인듯한 '의미'들은, 꼭 특별한 계기가 없이도, 단순한 시간의 흐름에 따라서 자연스럽게 변하기도 한다. 내게 ‘아들’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나 자신’이었는데 언제부터인가 ‘아들’ 하면 내 일곱 살, 세 살 된 아들 둘이 먼저 생각나기 시작했다. 그저 내 삶이 흘러감에 따라 ‘아들'이라는 단어의 의미도 함께 변했다.
그냥 아들이었지만, 22년 7월, 지금은 두 아들의 아빠
제주에 온 지 5년이 됐다. 단 5년이었지만, 그사이 다양한 변화들이 찾아왔다. 변화는 변화대로 의미가 있지만, 변치 않기를 바라건만 변해가는 의미들도 있는데 내게 ‘아버지’란 '단어'가 특히 그렇다.
일곱 살 때쯤이었을까? 친구들과 놀고 있었는데 갑자기 등에서 큰 고통이 느껴졌다. 소리를 "악!" 내지를 정도로 깜짝 놀라 다 팽개치고 집으로 펄쩍 뛰어 들어갔다. "아빠 등이 너무 아파!" 고통은 등의 어디랄 것 없이 침으로 콱콱 찔러대듯 여기저기 이어졌는데 눈물이 펑펑 나올 지경이었다.
황급히 내 윗도리를 벗긴 아버지는 이내 재미있다는 듯 하하 웃으며 말씀하셨다. ‘개미야, 개미. 개미가 물면 진짜 아파~ 하하하’ 처음에는 ‘아니, 이게 재미있는 일인가?’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잠시 후엔 ‘큰일은 아닌가 보다…’라며 되려 안심이 됐다.
아버지는 집에 있는 ‘소주’를 손가락에 찍어 아픈 곳에 살살 발라주셨는데, 두 손가락이 상처 위를 뱅글뱅글 문지르자 고통이 사라졌다. 또 어찌나 시원해지던지 오히려 좋은 기억이 됐다. 나에게 ‘아버지’는 이런 의미였다. 뭔가 너무 무섭고 두려운 일도 하하 웃어넘길 수 있을 만큼 크고, 무시무시한 고통도 살~살~ 문지르면 시원하게 없앨 수 있는 강인함.
하지만 지금의 내게 ‘아버지’는 파킨슨병에 '시들어가는 생명'이자, 요양원의 도움 없이는 하루도 이어질 수 없는 '노약함'이다. 꽃이 한번 피어나면 떨어지는 것이 당연하기에 이런 변화는 슬퍼하기보단 납득해야 하는 삶의 단편이고, 이제는 나를 ‘아버님’이라고 부르는 ‘순간’을 마주할 때마다 나도 아버지와 같이 늙어감을 되뇌면서 절대적인 것은 없음을 알고, 오만하지 않게 하는 달라진 의미, ‘아버지’.
내 아버지, 그리고 내 아들 둘
이처럼 모든 것은 변한다.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라는 사실만 제외하고 말이다. 끝없는 변화 속에서도 늘 같은 것, 그래서 편안하고 특별한 것이 ‘자연’ 같다. 그 속의 인간사는 사라지고 태어나길 반복하지만, 이를 둘러싼 자연, 그 자체는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다.
5년 전 처가 식구들과 왔던 제주도 여행에서 ‘성산일출봉’을 처음 봤다. 커다란 섬인지 산인지, 바다 위의 그 힘 있는 모습이 좋았고 올라가 보면 풀과 나무들이 푸근히 덮여있는 것도 좋았다. 이제는 함께 여행했던 장모님은 세상에 계시지 않지만 성산의 일출봉은 그대로 있기에 그곳에 가면 추억을 해 볼 수 있다.
2017년 5월의 성산 일출봉 2022년 7월의 성산 일출봉
변치 않으므로 특별한 자연은 그 변치 않음을 위한 지속적인 노력을 필요로 한다. 퇴색해 감 이상의 노력으로 늘 같은 자연, 제주를 지켜주는 사람들이 있다. 바닷가를 걸으며 쓰레기를 줍는 수많은 아빠와 아들들, 엄마와 딸들이 그 힘일 것이다. 우연히 그들을 볼 때마다 '나의 자연, 제주'가 어떻게 그 모습 그대로 있는지 깨닫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