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내구성

어떻게 살아내야 할까..

by 걱정 많은 아저씨

나는 어느 정도까지나 인생을 살아 낼 수 있을까?

그래도 아깝지 않고, 나쁘지 않게 살아낸 인생이라 돌아볼만한 것에 대해 생각해 본다.


일상에서 마주치는 뺨을 후려갈기는 듯한 사건들을 겪으면, 가슴이 파여나가는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내가 존경하는 형님의 경우, 아픈 몸을 이끌고 돌아가 형수님을 안고 십 분이고, 이십 분이고 힐(heal) 받으면 그 정도는 치유할 수 있다고 한다. 나도 이와 같은 방법으로 우리 아들 둘이 이래저래 자고 있는 모습을 볼 때, 내 코를 그 둘 머리에 박고 냄새를 맡아보고, 안아도 본다. 그러다 보면 가슴 부근의 자글거림이 잠잠해지고, 휑하던 느낌이 채워진다. 일상의 타박상들이 이 마음에 쌓이면서 흉터는 늘겠지만, 이런 마찰은 누구에게나 언제든 일어나는 것인 만큼, 인생을 살아가며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생활 흠집 정도라며 넘어갈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작은 상처들과는 다른, '장기적인 삶의 어려움'은 목표한 바를 이뤄감에 있어서 지불되는 세월의 무게에 더하여, 목표라는 것의 설정에 있어서도 점점 더해지는 한계와 제약을 마주할 때 실감한다.

우리 학생들을 볼 때면, 이들이 얼마나 잘 될 수 있을까? 재미있는 상상이 되기도 한다. 이 친구들이 취업을 한다면? 창업을 한다면? 유학을 간다면? 호텔, 외식기업 등, 전통적인 취업처의 색이 바래가는 느낌이고, 요즘엔, 이전에는 없던 프리랜서 작가라던지.. 유튜브 크리에이터라던지.. 다양한 도전으로 성공하는 새로운 사례들까지 볼 때마다, 성공의 크기라는 것도 오래된 내 머리와 기준으로는 가늠도 되지 않는다. 다양하게 커져가는 이런 가능성들은 이제 40대 중반인 나와는 조금 거리감이 있다.

자꾸 환경 탓을 하게 되는데, 내가 치유받고 살아갈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한, 우리 처와 아들 둘을 꾸준하고도 빠짐없이 살펴야 하기에, '직'을 때려치우거나 안정적인 수입이 확보되지 않는 상황에서, 낯선 무언가를 '가능성의 크기'와 '개인 기호'만 가지고 시작해 볼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선다.


이와 같은 환경 속에서라도 무언가를 시도를 해본다는 것은, 현직에서 해내야 하는 업무를 수행하며, 가족으로서 해야 할 일은 지속하고, 추가적인 시간을 만들어 내어, 그것을 '금과옥조'처럼 사용해야만 꿈이라도 꿔 볼 수 있다.

어느 정도 삶이 진행되면서 얻게 되는 '안정성'은 한편으로는 '의무와 제약'이 되고, 빠르게 변해가는 세상 속에서, 이제는 그 변화에 끌려가며, 그나마 올라온 괘도에서마져 이탈되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은 비단 나만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래도, 이와 같은 걱정은, 뚜렷한 목표와 그것을 해내려는 의지, 노력이 있다면, 결국에는 이뤄낼 수 있으리라 희망을 가져볼 수는 있다. 나는 아직 해내지 못했지만, 지속적인 성장과 성공을 이뤄낸 우리 주변의, 그리고 동서고금의 존경할 만한 인물과 사례들을 종종 마주치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얼마나 잘 살아가는가는 각개인에게 주어진 환경과 스스로 만들어낸 도전, 가해지는 압박을 얼마나 잘 관리하느냐에 달려있는 것 같다. 살면서 우리를 얼마나 잘 만져주고 만들어내느냐에 달려있는 삶.

결국엔 해보면 해낼 수 있지 않을까? 여기까지는 한번 해볼 만하다.


그러나, 누구나 겪는 시련과는 비교도 안 되는 비극적 사건들도 있는데, '사고'와 '병'이 그 둘이다.

평소엔 잘 고민하지 않는 이 둘인데, 살다 보면 이런 슬픈 일들이 없지 않다.

서른 살 무렵이었다. 목표한바 학업을 준비하고 있는 상황이었는데, 집에서 온 전화를 받았다. 어머님의 교통사고가 났다는 전화였다. 고속도로 주행 중에 어머님 차가 도로를 이탈했고 반파되었다고 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커다란 외상은 없었고, 전화위복인가? 반파된 자동차 대신에 아버지가 어머님께 안전하고 좋은 차를 구입해 주셨다. 그러나, 그 이후로는 왠지 어머님 댁에 내려가도 어머님께서 터미널까지 데리러 나오시거나, 일부러 누군가 운전을 더 해야 하는 상황은 되도록 피하고 싶어졌다. 한 번의 사고는 무사히 지나갔으나, 그 누가 다음 사고가 없음을 보장할 수 있으랴? 아침에 인사하고 저녁에 보기로 했는데, 그 사람을, 혹은 나를 볼 수 없게 되는 상황은 그야말로 사고. 피한다고 피할 수 없는 이런 사건들은 상상만으로도 두렵다.


다음 '병'은 개인적으로 봤을 때, 더 자주, 그리고 더 장기적으로 고통스러운 삶의 변수이다.

노화에 수반되는 것이 병이 아니냐고 쉽게 말할 수도 있겠지만, 죽음과 직결되는 치명적인 병을 마주해 보면 그렇지가 않다. 가족이 병에 걸리는 경우를 겪기도 했고, 종종 암으로 힘들어하는 어른들을 보기도 하지만, 노령자가 아닌, 사회생활을 하다가 만난 동료와 친구들이 아플 때. 그리고 우리 아이들이 위중한 병에 걸린 경우를 보면 마음이 참 먹먹하다.


20230829_195344.jpg 내가 아무리 사랑해도, 나는 나, 우리 아들둘은 둘, 각자의 삶을 스스로 살아가야겠지. 지켜보며 박수만 쳐줄수 있는것만도 감사한 일임을 잊지말고, 늘 서로 응원해 줄 수 있기를..


삶을 살아내는 것만으로도 힘든 그들이 아플 때, 더 나아가 성인이 되지도 못한, 성장의 한가운데에서 병에 걸린 아이들, 그리고 그 아이들의 눈부신 성장에 기쁨을 느껴도 아쉬운 때에, 그 아픔을 함께해야 하는 부모님들을 본다. 매일같이 일어나는 삶의 아픔을 겪어내고 살아가는 노력은 보통이요, 아픈 아이를 돌보면서, 그 고통을 함께해 간다는 것이 인간으로서 가능한 것인가? 감히 가늠도 되지 않는 무거움을 느낀다.


그래, 결국에는 얼마 살아보지 않아서 모르겠고, 아직 죽어보지 않아서 모르겠다.

매일을 살아내는 것도 힘들고 버겁다며 투정해 보지만, '그 정도는 누구나 하는 거야.'라면서 슬픔과 고통을 짊어지고 살아가는 '대인'들이, 우리 주변에는 생각보다 많이 있겠지..

내가 모를 짐과 고통을 이겨내며 살아가는 삶의 선배들에겐 존경을 표하며, 나와 같은 어려움을 겪어내며 공감해주는 동료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고, 새롭게 피어나는 후배들에게는 응원을 보내면서, 오늘을 또 망가지지 않게, 나를 보듬어 가며 살아봐야겠다.


20230802_051549.jpg 언젠가 해뜨기 전 새벽.. 달님은 그래도 별들이 있어서 보기에 허전치 않은데, 햇님은 밝은 낮에 떠있어도 혼자만 있는듯해 쓸쓸하겠다란 생각이 들었다. 좀 덜 빛나도 달이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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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신

어떻게 살아내야 하지?... 생각을 하다 보니 그럼, '죽음'은 무엇일까 궁금증이 피어나는 밤.

'신세한탄'은 이제 그만하고, 잠이나 쳐 자야겠다. 코~자자.


내가 믿는 분명한 한 가지는 '죽음'은 '벽'이 아닌 '문'이라는 것이다.

두려워 말자. 혼자지만, 나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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