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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미영 sopia Aug 19. 2022

영화 리뷰 - 《 비커밍 아스트리드》

스웨덴 2021년  / 감독 - 페르닐레 피셰르 크리스텐센 / 123분

이영화는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1907년~2002년)의 생애를 바탕으로 제작된 실화다. 우리에게 '말괄량이 삐삐'로 크게 알려진 세계적으로 유명한 스웨덴의 아동문학 작가이다. 미혼모를 거쳐 1944년 문학상에 당선하여 작가와 사회 활동가로도 활약했다. <비커밍 아스트리드> 영화는 주인공 아스트리드 10대 중반부터 20대 중반까지의 시절을 소환해 관객에게 울림과 깊은 여운을 남긴 작품으로 평가된다. 주인공이 신문사 수습기자로 일하다가 그만두고 비서학교를 수학, 유능한 비서로 활약하던 시기까지만 영화에 담겼다. 노인이 된 아스트리드가 어린이들에게 우상이 된 자신에게 온 편지를 읽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야기는 아스트리드 소녀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농사와 농장 일을 하는 부모와 살면서 가족이 교회를 가고 일을 거들며 보내던 시절이다. 아스트리드는 현실이 답답하다고 소리를 질렀다. 부모는 아스트리드에게 오빠보다 한 시간 빨리 들어오라고 하자 공평함을 주장했다. 말을 잘했던 아스트리드는 동생들에게 곧잘 이야기를 들려줬다.

취업한 출판사 인턴 아스트리드


아스트리드는 아버지의 소개로 신문사에 인턴을 하기 위해 찾아갔다. 자신은 철자법에 강하고 성실하다며 초과근무도 자청했다. 면접에 합격했고 부고문, 생일, 결혼식, 은혼식에 관한 짧은 글을 쓰기 시작한다. 신문사는 학교 친구 베르타의 아버지 레인홀드가 운영하는 곳이다. 출판사 사장 레인홀드는 부인과 별거 상태로 불편한 관계에 있었고 딸아이를 잃었다고 고백했다. 아스트리드의 잉크 자국을 닦아주기도 하고 타자를 잘 치던 아스트리드에게 신철도 개통 기사를 쓰도록 했다. 아스트리드는 잡지 속의 신여성과 똑같이 머리를 자르고, 자전거를 타고 시원하게 달릴 때 행복해 보였다. 레인홀드는 딸 같은 아스트리드에게 측은함으로 접근했고 관계까지 갖게 되면서 임신하게 만든다. 엄마는 사실을 알고 절대 들키지 말라고 타일렀다. 레인홀드가 찾아와 책임지겠다고 했지만 아스트리드의 부모는 절망했다. 레인홀드는 아스트리드가 재능도 뛰어나고 생명력도 넘친다며 사랑한다고 했다. 아스트리드는 배가 불러오기 전에 비서 수업을 듣기 위해 스웨덴 스톡홀름으로 떠나게 된다.


아스트리드는 비서에게 꼭 필요한 속기를 배웠다. 그러다 우연히 임신한 여성을 돕는 신문 기사 내용을 보게 된다. 레인홀드는 전 아내가 간통죄로 자신을 감옥에 보내겠다는 내용을 전했다. 아스트리드는 1921년 11월 스웨덴 미혼모 센터의 도움으로 아들을 낳았다. 친절하게 아기 낳는 것과 산후조리도 잘 챙겨 주었다. 울며 보채는 아기를 두고 크리스마스를 맞아 아스트리드는 고향집에 가게 된다. 친정엄마는 그녀의 젖가슴을 붕대로 감싸 주었다. 고향에 간 아스트리드는 레인홀드에게 코트를 선물 받고 덴마크에 두고 온 아들도 데려온다는 약속을 받았다. 엄마는 아스트리드가 꼭 결혼하지 않아도 되며 비서가 되라고 강조했다. 위탁모에게 아들 라세를 맡기고 잊고 살라고 했다. 그러나 어린 나이고 여건이 되지 않았지만 아들에 대한 사랑은 지극했다. 포기할 수 없었던 아들을 보러 덴마크로 갔고 위탁모는 와줘서 기쁘다고 했다.

레인홀드와 아스트리드

아스트리드와 아들 라세

스웨덴 서적 보관소에 근무하던 아스트리드에게 레인홀드는 전화로 문제가 생겨 라세를 데려오는 일은 미뤄지며 돈만 보낸다고 했다. 아스트리드는 라세가 배가 고픈 건지, 기저귀 가는 방법도 서툴기만 해서 키울 자신이 없다. 1927년이 됐고 라세는 컸다. 레인홀드는 간통죄 유죄로 벌금만 내고 감옥엔 안 가도 된다고 했다. 라세도 데려오고 봄에 결혼하자고 반지를 끼워 주었다. 아스트리드는 돈으로 해결해도 되는데 일 년이나 라세를 떼어놓은 것에 기분이 몹시 상했다. 게다가 그건 네 생각이었다는 말에 기가 막혔고 반지를 빼놓고 방을 나와 버렸다. 양육비가 없어 위탁모에 맡긴 아이는 집세만 벌면 데려오기로 작정한다. 아들은 2살 6개월이 되었다. 라세에게 엄마하고 살 거라며 다가가자 위탁모만 찾는다. 안아주는 것도 잠자는 것도 친모 아스트리드를 부정했다. 라세는 엎어져 눈도 안 마주친다. 다시 위탁모에게 어쩔 수 없이 맡기게 된다.

스웨덴 서적 보관소에서 아스트리드

스투레 린드그렌과 아스트리드

그 후 아스트리드는 아들 라세를 잊어보려 한다. 왕립 자동차 연례 파티에 서적 보관소 사장이 함께 참석했다. 술 취한 아스트리드는 춤을 추기 시작했고 사장은 일으켜 세우며 춤을 청했다. 위탁모가 아파서 더는 라세를 못 본다는 편지가 왔다. 엄마는 잊으라고 했지만 아스트리드는 소리를 지르며 악을 썼다. 집에 오지 않겠다고 짐을 싸서 위탁모에게 가게 된다. 내 아이를 키우는 건 힘들지만 꼭 해야 하는 일이었다. 인간쓰레기가 되기는 싫었다. 그래서 아들과 생활하게 된다. 라세에게 배고프냐고 물어도 무슨 말인지 모르고 위탁모만 찾았다. 아이의 마음을 열어보려고 부단히 노력했지만 거리가 좁혀지지 않아 마음이 아프다. 강압적으로 소리를 질러 보았다. 아이는 백일해로 열도 나고 기침을 해대며 울었다. 이튿날 스투레 린드그랜( 후에 아스트리드 남편)은 편지에 오타가 많다고 지적했다. 라세가 아프다고 하자 병간호하도록 배려해 주었고 의사까지 보내 준다. 그 후 라세는 진정됐고 이야기를 자주 들려주자 마음을 열고 다가왔다. 아스트리드는 아이들 이야기를 주로 쓰게 된다. 스투레 사장에게 당신은 좋은 사람이라고 고마움을 전했다. 후에 아들을 데리고 고향으로 돌아오고 교회에서 레인홀드를 보게 되지만 대면 대면했다.


영화는 첫 장면으로 돌아갔다 아스트리드는 스투레와 결혼 후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이 되었다. 실제 아스트리드는 결혼과 함께 생계를 돕기 위해 `자동차 클럽`홍보를 위한 경기 진행요원을 했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저명한 잡지에 기고하는 등 본격적인 아동문학 작가로 데뷔하기 전 수많은 매체에 자유롭게 기고한 이력이 있다고 한다. 제2차 세계대전 시기에는 꾸준히 일기를 쓰며 시대의 슬픔을 함께 호흡했다. 딸에게 즉석에서 해준 이야기에 기초한 말괄량이 삐삐를 간행하여 더욱 유명해졌다. `삐삐 롱스타킹`시리즈만 전 세계에서 6,000만 부 이상이 판매됐고 여러 작품이 76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었으며, 100개 국 이상의 나라에 출판되었다고 한다. [삐삐 롱스타킹], [사자왕 형제의 모험], [개구쟁이 에밀] 시리즈를 시작으로, 모두 대표작이라 불릴 정도로 유명하다. 이후 아스트리드는 아동인권 수호자로 사회의 큰 울림이 되어 국민의 공감을 이끌어내게 된다. 그러면서 스웨덴은 1979년 세계 최초 가정 체벌금지법을 시행한 나라가 되었다.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실제 가족

이외에도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은 노년에 스웨덴 사회민주당 정부가 과도한 과세 정책을 펴자, 무너뜨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또한 스웨덴은 물론 전 세계 아동들의 인권 향상에 크게 기여했고 1978년 유엔 아동권리협약이 공포되는 데도 공헌을 했다. 나아가 동물복지운동부터 환경보호운동까지 스웨덴 시민들의 행동을 격정적으로 촉구하는 스웨덴 녹색운동계의 주요 인사가 되었다. 말년에는 스웨덴 국내외에서 개인과 단체 가릴 것 없이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은 수년 동안 많은 사람들과 단체를 위해 자선 활동에 힘썼다. 책의 홍보문, 광고 카피 초안 또는 서적상을 위한 판매 집계표 작성 등 매우 반복적이고 사소한 일까지 마다하지 않고 성실하게 일했다. 자신의 명성을 다른 무명작가들을 위해 기꺼이 사용하면서 소임을 다했다고 전한다. 아동문학 작가로 데뷔해 작가와 출판사 편집인 업무 모두 뛰어난 솜씨로 처리해서 오랜 기간 각광받고 영향력 있는 인물이 되었다.


볼거리가 많지 않았던 70~80년대에 말괄량이 삐삐는 선풍적인 인기를 누렸다. 양갈래 머리를 따고 주근깨 많은 캐릭터에 동네 아이들을 데리고 항상 모험을 떠나던 말괄량이 삐삐가 스웨덴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작품이었다는 건 잘 몰랐다. 그녀의 생애가 미혼모로 시작해 어려운 삶을 살았다는 것은 더욱 믿기지 않는다. 그럼에도 아이들을 위해 수많은 작품을 쓰고 세계적으로 유명해지기까지 주인공의 삶이 녹록지 않았음에도 오히려 결핍을 채웠던 그녀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져온 결과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어린 나이에 아들을 낳고 친부의 무책임한 행동들로 더 단단해질 수밖에 없었던 그녀의 삶이 측은하지만 결과론적으로는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작가가 되었으니 그녀의 숨은 노력을 높게 평가해주고 싶다. 지금도 미혼모라 하면 사회적으로 당당히 살기가 어려울 텐데 '백 년 전에는 과연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그런 환경에서 아스트리드는 얼마나 많은 외로움과 힘겨움에 부딪쳐야 했을지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그런 모든 걸 극복하고 아이들에게 보석 같은 책들을 발행하고 세계적으로 많이 볼 수 있도록 영상 작품으로 제작이 되었으니 정말 대단하신 분이다. 1세기 전에 미혼모로 살면서 많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아이들을 위한 책을 쓰고 독립적으로 자신의 꿈을 펼친 버커밍 아스트리드, 부모라면, 글을 쓰는 분이라면, 특히 브런치 작가라면 감동으로 보게 되는  《커밍 아스트리드》 영화를 꼭 추천드린다.


https://youtu.be/7mWRvOfZ7fY

(유튜브에서 보기 누루면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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