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필영 Dec 24. 2023

그까이 거 대충 읽어도 남는 장사

진짜라니까 그러네

당신은 신문을 왜 읽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첫 번째 글에서 말했듯, 정보를 얻기 위해서? 문해력을 기르기 위해서? 트렌드를 알기 위해서? 이 모든 것들이 다 신문을 읽는 이유가 될 것이다.

 

내가 신문을 보는 가장 큰 이유는 다른 세상을 세밀하게 상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신문에 상상이라니. 좀 엉뚱하다고 느낄 수 있는데 오늘 내가 본 뉴스, 따끈따끈한 신문 한 모퉁이를 공유하자면 이렇다.      




이걸 읽고 사진이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기사에 따르면 여기는 지난 19일 새벽 5시, 서울 구로구 남구로역 삼거리 인력시장이라고 한다. 체감 온도는 영하 11도인데도 불구하고 길거리에 일감을 찾아 나온 사람이 400여 명.  한두 시간씩 머무르면서 자신의 이름이 호명되기를 기다린다고 한다. 그중 한 명은 “추운 것보다 일감이 없는 게 더 무섭지.”라고 했다고 한다. 이들은 주로 오전 7시부터 일을 시작해서 평균 9시간~10시간 정도 일을 한다고 하는데 일당은 13만~18만 원 수준이라고 한다. 일요일은 일이 많이 없고 어떤 날은 6시간씩 기다리기도 한다고.  이들이 일이 이렇게 줄어든 이유는 올해 아파트가 지어지지 않아서라고 한다. 착공이 작년 반토막이라서 일용직 노동자들이 일이 많이 없는 것이다. 문득 이 기사를 보자 아쉽게 발걸음을 돌리는 그들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얼마나 아쉬울까.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이 사람을 쓰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19일 새벽 세상 한쪽 모퉁이에서는 그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고 나는 아이들이 먹다 남긴 과자 조각을 치우지 못한 채 퇴고에 열중하고 있었다.


     

대 때였을까. 심즈라는 게임을 한 적이 있다. 그 게임에는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집을 짓는다. 물론 돈이 있어야 그것도 가능하기는 한데 나는 이미 치트키를 알고 있었기에 돈을 마구마구 생산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때부터는 내 입맛에 맞는 캐릭터도 설정하고 집도 짓기 시작했다. 우선 수영장은 꼭 있었다. 집 밖에. 그리고 집안 화장실에는 욕조가 있는데 길쭉한 작은 욕조 말고 조금 더 럭셔리해 보이는 정사각형의 큰 욕조를 설치했다. 지금으로 치면 월풀욕조인가, 스파? 그런 것을 설치했다. 변기는 제일 큰 것, 바닥재는 나무로 했다. 샤워부스도 설치하고, 음악감상하는 방을 따로 만들었다. 거실보다 부엌을 크게 만들었다. 모든 집을 2층으로 지었던 걸로 기억한다. 내 취향으로 지어진 그 집을 보고 있으면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내 마음에 드는 방을 다 만들고 나니 어느 순간 재미가 없어져서  게임을 그만두게 되었다.      




나는 머릿속에 내 세계를 만드는 일도 심즈와 비슷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정말 마음에 드는 것을 보고 우리는 공감을 하고 내 공간이 그것으로 채워졌기에 그 감정, 혹은 물건, 기분, 사람 이 모든 것들은 내 세계에 들어온다. 딱 내가 접한 것들이 내 세계를 채운다. 이런 자기만의 세계가 채워지지 않은 사람들은 우선적으로, 열심히 독서를 하고 글쓰기를 통해 분명히 자신의 취향을 쌓는, 집을 채우는 시간이 필요하다.


'나 이런 사람이었네, 이런 것을 좋아했었지.'


그렇게 공간을 채우다가 보면 어느새 내가 좋아하는 걸로 가득 차게 된다. 나는 이다음부터 필요한 게 외부세계에서 무언가, 내가 좋아하지 않았던 것들, 혹은 잘 몰랐던 것들이라도 마음을 열고 들여다보면서 그것에 대해 공감을 하고 공감한 것을 내 세계, 내 집에 들어오게 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거기에 큰 몫을 한 게 내게는 신문보기였다.      





우리 집에는 사실 며칠 째 신문이 문밖에 그대로 있는 날도 허다하다.


"아 맞다 신문!"


 하고 문을 급하게 열어보면 이미 그게 이틀째라서 신문이 문 앞에 두 개가, 그러니 총 8개의 신문이 문 앞에  올라와있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신문을 계속 읽는 이유는 자꾸만 내가 내 세계 안에 매몰되어 있다는 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나는 글쓰기를 누군가에게 가르치는 일을 남들보다는 쉽게 기회를 얻었고 빨리 밥벌이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그런데 그런 게 빨리 가능해져서 오히려 스스로에게는 굉장히 불안한 시간들이었다. 실력을 채운다고 정말 많은 글쓰기책과 관련 수업을 진짜 졸면서 울면서 들었다. 특히 22년도에 제일 많이 그랬던듯하다. 그런 시간이 거치고, 지금도 그러고 있으니 사실 수업은 점점 나아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오히려 잘 될수록 여기에 갇혀서 다른 곳에는 관심도 없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는 기분도 떨칠 수가 없다.

마치 콧구멍 한쪽으로만 바람을 낼 수 있어서 그게 장기라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장애임을 인식하게 된 것이다.





오늘 나는 크리스마스이브이자 일요일이라서 교회에 갔고, 교회에서 주일학교수업을 먼저 아이들과 함께 들었고, 대예배를 함께 들었다. (사실 그것만으로도 이미 힘이 많이 빠진다.) 그 뒤 점심을 먹고 아나바다 장터를 했다. 그 뒤 달란트시장을 했다. 집에 오니 이미 녹초였지만 12월 31일까지 원고 마감이 있다. 다시 집중해서 원고를 읽었다. 사실 100번 가까이 읽은 원고라 집중도 되지 않는데도 억지로 정신을 부여잡고 초코송이 두 개와 예감 과자를 먹고 이것저것을 입에 쑤셔 넣어가며 집중하려고 애썼다.      




아마 오늘 내가 저 기사를 접하지 않았더라면, 퇴고가 지긋지긋하네, 진짜 할 게 많다. 나는 왜 이렇게 일이 많은 거야. 같은 생각이나 하고 있었을 것이다. 배부르고 등 따뜻한 곳에 앉아서 타자기만 치고 눈만 뻐끔뻐끔 거리면서 인생의 모든 고난을 짊어진 사람처럼 억울함이라는 통에 갇혀서 말이다. 저 기사로 인해, 하루에도 몇 번씩 나라는 사람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현재 지금 여기 세상에는 수많은 일이 일어나고 있다. 세상의 중심은 내가 아니다. 세상이지, 내 중심은 나겠지만. 뭐 이런 생각을 하면서 조금 머리가 가벼워진다.

감사일기를 쓸 때도 세상에 이렇게 감사하지 않았는데 신문 보면서 이 정도 생각을 한다면 정말 2만 원에 남는 장사 아닌가?


오늘 당신이 읽은 기사는 어떤 내용인가? 종이신문이 아니라도 좋다. 그 기사는 어떤 기사였는데 보고 어떤 생각이 들었는가. 머릿속으로만 생각하지 않고 댓글로 달아주면 함께 소통해 주면 더 좋을 듯하다. (내가 본 기사라면 반갑게 아는 척도 해드리겠다). 그렇게 다른 세상에 관심을 갖고 그것에 대해 생각하는 사이 내 세계가 넓어진다. 그러면서 조금 더... 음.. 어떤 장점이 있는가 하면 사실 정확히는 모르겠다. 다만 계속 같은 것만 보면 오히려 행복이나 재미 같은, 무언가를 느낄 수 없게 된다. 나는 분명히 심즈에서 내가 원하는 집을 수십 개나 만들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아예 집을 짓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내 안을 나로만 쌓는다면 사는 게 재미없어진다.      



종이신문, 그까이 거 대충이라도, 함께 대충이라도 읽자. 딱 며칠만 읽어도 말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