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훈련소라는 이름의 소행성

훈련소의 날시(詩): 15일 차

by 정오

훈련소의 날시(詩): 15일 차


17. 훈련소라는 이름의 소행성


오전 중으로 마무리될 예정이었던 사격술 시험은 생각보다 지연되어 오후 2시쯤 끝이 났다. 덕분에 우리는 땡볕 아래서 몇 시간을 더 보내야 했다. 지연된 이유는 명확했다. 시험의 진행 방식에 질서가 없어 혼란스러웠던 것이 첫 번째였고 훈련병들의 준비가 미흡했던 것이 두 번째였다. 시험을 진행하는 간부와 조교들은 훈련병을 집합시켜 훈련병을 탓했고 훈련병들은 간부와 조교들이 안 듣는 곳에서 시험의 방식을 탓했다.


사격술 시험의 평가 방식은 팀별 상대평가였다. 각 팀이 획득한 점수를 비교하여 상위 50%의 팀만 다음날 영점사격의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팀 단위로 합격자 수를 집계하기 때문에 잘하는 사람이 몇 있는 것보다 팀원 한 명 한 명이 모두 평균 이상의 성적을 받는 것이 중요했다. 이런 시스템 하에서 ‘좋은 그림’ 이 나오려면 팀원들 각자가 잘하는 과목과 못하는 과목의 분포가 균등해야 했다. 예를 들어 A는 잘하지만 B는 못하는 팀원과 B는 잘하지만 A를 못하는 팀원이 만나 상호 보완하며 서로 이끌어주는 것이 팀제 평가 방식을 만든 기획자들의 의도였을 것이다. 그러나 보통 한 과목을 잘하는 팀원은 전반적으로 모든 과목에서 실력이 나쁘지 않았다. 반대로 한 과목을 못하는 친구는 전반적으로 모든 과목에서 실력이 좋지 않았다.


처음에는 우리 팀에 흔히 말하는 파이팅이 넘쳤다. “할 수 있다!”는 구호를 연신 외치며 부족한 친구들의 몫까지 채우겠다는 각오를 다지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실력이 좋지 않은 팀원의 불합격이 반복되자 짜증을 내는 팀원들이 하나 둘 생겨났다. 시험 시간이 지연되고 정오가 다 되어 날이 뜨거워질수록 짜증은 심해졌다. 대놓고 욕설을 하는 팀원도 있었다. 평소 같으면 끼어들어 제재했을 팀원들도 인상을 찌푸리고 가만히 있었다. 실력이 좋지 않은 팀원에 대한 태도는 격려로 시작해서 비난으로 마무리되었다. 떨어지면 쟤 탓이라느니 하는 성인답지 않은 대화들도 오갔다


나는 두배로 스트레스를 받는 기분이었다. 시험이 끝날 때까지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화가 난 팀원들을 달래야 했고 욕먹는 팀원들이 홧김에 의지의 끈을 놓아버리지 않도록 격려해야 했다. 어차피 다 똑같은 훈련병의 신분이라지만 가장 나이가 많은 형으로서 해야 하는 일이었다. 사실 어느 쪽이고 마음에 들지 않았다. 연습을 했으면 자기가 부족한 것을 알았을 것이고 부족함을 알았다면 더 노력했어야 했다. 비난을 할 생각이었다면 자기가 잘한다고 남는 시간에 놀고만 있을 것이 아니라 못하는 팀원을 이끌기 위해 노력했어야 했다. 서로 귀찮으니 미뤄놓고 실전에서 예상치도 못한 일이 터졌다는 양 헐뜯고 화내는 모습이 보기 좋지 않았다. 노력한 것이 없다면 결과에 초연하기라도 해야 할 터였다.


결과는 금방 나왔다. 저녁밥을 먹을 때쯤 복도의 칠판에 조별 점수가 게시되어 있었다. 우리 팀은 상위 30% 정도의 점수로 여유롭게 시험을 통과했다. 그렇게 짜증내고 서로 인상 쓴 게 무색할 정도였다. 팀원 모두 결과를 보고 신이 났다. 목소리가 큰 팀원들은 각자의 공적을 치하하며 기쁨을 나눴다. 소외받았던 팀원들은 기분은 좋아 보였지만 대화에서는 여전히 소외되었다. 가만히 지켜보니 이것은 다 같이 이뤄낸 승리에 대한 축하라기보다 ‘악조건’ 속에 승리를 이끌어낸 자기들의 활약에 대한 축하였다. 그리고 그 ‘악조건’은 목소리가 큰 그들이 대놓고 지적했던 실력이 좋지 않은 팀원들이었다. 물론 목소리가 큰 팀원들은 몇 안 되는 일부였지만 분위기를 주도하는 일부라는 것이 문제였다. 옆에서 동조하는 팀원들이 당연하게 생겨났다. 외향적이지 못하고 소극적인 팀원의 존재는 인정하지도 않겠다는 태도로 그들은 들떠있었다. 앞으로 3주는 더 함께해야 할 팀의 관계에 벌써부터 금이 가고 있었다.


신철규 시인의 시집 『지구만큼 슬펐다고 한다』(문학동네, 2017)는 <소행성>이라는 시로 시작한다. 시인이 시에서 만들어낸 세계는 아주 작은 소행성으로, 그곳에는 ‘너’와 ‘나’ 둘밖에 살지 않는다. 상상력 속에 만들어진 소행성은 사실 우리에게 낯설지 않은 공간이다. ‘나’가 밤이면 ‘너’가 낮인 곳. 서로가 보지 못한 것에 대한 우스운 얘기를 하면 거짓말하지 말라며 손사래를 치는 곳. 시를 읽고 있는 우리들이 사는 곳의 이야기를 옮겨놓아도 이와 같을 것이다. 공간뿐 아니라 ‘너’와 ‘나’의 관계 역시 낯설지 않다. 별의 반대편에 살지만 애초에 작은 행성 크기의 한계로 마주칠 수밖에 없는 관계. 익숙하기 그지없는 관계이다.


‘너’와 ‘나’의 관계에 대해서 시인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5,6연의 내용이다.

바다가 있으면 좋겠다
너와 나 사이에
너에게 한없이 헤엄쳐갈 수 있는 바다가
간간이 파도가 높아서 포기해버리고 싶은 바다가
우리는 금세 등을 맞대고 있다가도 조금씩 가까워지려는 입술이 된다


시인은 ‘너’와 ‘나’ 사이에 바다가 있기를 바란다. 바다는 그것을 극복해서라도 ‘너’에게 다가가고 싶게 만드는 시련이 되기도 하지만 반대로 ‘너’와의 관계를 포기할 수 있는 적당한 이유가 된다. 지극히 현실적인 바람의 시적 표현이다. 둘 사이에 놓이는 바다는 ‘우리’가 소행성 안에 있기 때문에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관계에 긴장감을 부여해줄 수 있는 존재이다. 바다는 물리적인 거리에 속아 놓친 극복의 요소들이 얼마나 많은지, 알고도 도전할 수 있는지 묻는다. 어쩧든 저쩧든 등을 맞대고 서로 다른 곳을 보며 앉아있다가도 가까워지는 입술이 되어 마주 봐야 하는 것이 ‘우리’의 관계이다. 결과적으로는 같은 모습을 하더라도 사이에 놓인 바다를 인지함으로 더욱 성숙한 관계가 되길 바라는 마음이 담겨있는 듯했다.


훈련소는 우리에게 소행성이었다. 그 밑에 연대가 있고 중대가 있고 소대가 있고 가장 밑에 16명이 한 팀을 이루는 생활관이 있었다. 함께 먹고 씻고 잠들며 좋든 싫든 마주 봐야 하는 관계들로 구성된 최소 단위의 소행성이었다. 모두에게 이 시 한 편이 간절했다. 같은 의무를 지녔다는 공통점 하나로 바로 옆자리에 누워 숨소리를 공유하며 잠들지만, 우리는 지역도 환경도 취향도 성격도 모두 다른 사람들이었다. 합의에 의해 한마음 한 뜻으로 모인 것이 아니었다. 소행성의 정반대에 살았던 ‘너’와 ‘나’처럼 그저 이 좁은 훈련소에 던져졌기에 마주칠 뿐이었다.


부정적으로 생각하면 한없이 억울할 뿐인 이 관계에 필요한 것은 바다였다. 정확히는 서로의 사이에 존재하는 바다에 대한 인지였다. 어쩔 수 없이 마주쳐야 한다면 우리는 한없이 헤엄쳐 갈 의지를 갖는 편이 좋았다. 그럴 의지를 서로에게 심어주어야 했다. 우리 사이에 있는 바다가 간간이 파도가 높아 포기해버리고 싶은 바다가 되지 않도록, 우리에게는 소행성에 불시착한 어린 왕자에게 비행사가 베풀었던 친절과 다정함이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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