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우연한 하루

훈련소의 날시(詩): 17일 차

by 정오

훈련소의 날시(詩): 17일 차


19. 우연한 하루

군에서는 자유시간을 개인정비 시간이라고 부른다. 아무리 자유로운 시간이라도 군인의 본분을 잊지 말라는 의미이다. 개인정비 시간에는 세면, 세족, 빨래, 관물함 정리, 군화 세척 등 따로 시키지 않아도 해야 할 위생 청결과 관련된 일들을 우선으로 해야 한다. 하지만 그것도 훈련병 때 잠깐이고 시간이 갈수록 개인정비 시간은 자유시간의 군대용 대체어 정도의 의미로 변질된다. 그렇다고 너무 신경 안 쓰다간 행보관님으로부터 “개인정비 시간이 너 놀라고 주는 시간이야?”라는 꾸지람을 듣게 될 것이다. 항상 최소한은 지켜며 지내야 한다.


영점사격을 한 번에 통과한 훈련병들에게는 파격적인 하루간의 개인정비 시간이 주어졌다. 낮잠을 잘 수 없고 벽에 기대어 앉는 것도 금지하는 훈련소에서는 개인정비라고 해봤자 책을 읽거나 친구들과 떠드는 것이 다였다. 그래도 이 더위에 실내에서 쉴 수 있는 것 자체가 신나는 일이었다. 우리 생활관에서는 딱 절반의 인원이 재시험 대상자였다. 아침부터 출발 준비로 부산스러운 그들과 침상에서 쉬고 있는 나머지의 대비가 뚜렷했다. “땡볕에 사격장까지 한 시간을 걷고 사격장에서 또 몇 시간씩 대기할 생각 하니까 죽고 싶다.”는 한 훈련병의 말에 “네 총은 영점이 안 맞아서 쏴도 빗나갈 거라 못 죽는다.”는 다른 훈련병의 농담으로 유쾌하게 하루가 시작되었다. 물론 남아있는 사람들만의 유쾌함이었다.


나는 오래간만에 얻은 이 시간을 어떻게 사용할지 계획을 세웠다. 우선 의무대에서 진료를 받고 싶었다. 나는 보라매병원에서 손목터널 증후군 진단을 받고 3주 치 약을 받아 훈련소에서도 복용 중이었는데, 훈련을 하다 보니 손목 통증과 저림 증상이 갈수록 심해져서 불편을 겪고 있었다. 훈련소에서는 매일 아침저녁으로 환자를 조사하여 1차적으로 의무대에서 진료를 받도록 한다. 그러나 진료를 받기 위해서는 그 시간에 하는 교육에 빠져야 했고 보충도 해야만 했기에 훈련병도 조교들도 병원 진료를 웬만해서는 꺼렸다. 오늘 같은 날이야말로 진료를 받기에 완벽한 날이었다. 진료 후에는 독서와 편지 답장을 쓰며 하루를 보내기로 마음먹었다.


의무대에서 진료를 봐주는 군의관은 신체검사 때 봤던 군의관들보다는 훨씬 친절했지만 별다른 의료혜택을 누릴 수 없다는 점은 같았다. 내가 현재 복용 중인 약이 의무대에서 줄 수 있는 가장 강한 신경 계열 진통제와 동일했기 때문이었다. 통증이 지속되면 상급 의료시설인 지구병원에 가라고 군의관이 말했다. 더 나은 진료에의 다짐을 받아내고 돌아와 차분히 책을 읽고 있으니 만족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쫓기는 듯한 마음으로 목적지를 향하다가 우연히 발견한 기분 좋은 길 위에 선 듯했다. 책에서 좋은 문장들을 노트에 옮겨 적고 때로는 편지 속에 옮기기도 하며 나는 이런 하루를 위해서 살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이성복 시인의 시집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

(문학과 지성사, 1980)에는 <그러나 어느 날 우연히>라는 시가 실려있다. 시에는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난 수많은 일들이 나열되어 있다. 갑자기 일어난 일들의 내용은 대부분 씁쓸한 현실이어서 시는 한 편의 블랙코미디처럼 느껴진다.

어느 날 갑자기 망치는 못을 박지 못하고(…)
어느 날 갑자기 새는 갓 낳은 제 새끼를 쪼아 먹고(…)
어느 날 갑자기 미루나무는 뿌리째 뽑히고 선생은 생선이 되고 아이들은/ 발랑 까지고 (…)
어느 날 갑자기 여드름 투성이 소년은 풀 먹인 군복을 입고 돌아오고(…)

화자는 갑작스러운 일들 사이에서 마침내는 사는 이유조차 상실하고 만다.

어느 날 갑자기 주민증을 잃고 주소와 생년월일을 까먹고 갑자기,
왜 사는지 도무지 알 수 없고

이때 ‘그러나’로 시의 모든 내용을 받아주는 마지막 연은 지금까지와 다르게 ‘갑자기’가 아닌 ‘우연히’의 일을 다루고 있다.

그러나 어느 날 우연히 풀섶 아래 돌덩이를 들치면 얼마나 많은 불개미들이/ 꼬물거리며 죽은 지렁이를 갉아먹고 얼마나 많은 하얀 개미 알들이/ 꿈꾸며 흙 한 점 묻지 않고 가지런히 놓여 있는지

시에서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난 일들에는 예비할 틈 없이 덮쳐오는 폭력적인 삶의 이야기들이 나열되어있다. 당황스럽고, 일어났기 때문에 인지할 뿐 거기에는 사건의 인과관계와 책임여부가 주석으로 달려있지 않다. 판단하고 해석해야 한다는 불안감이 함께한다. 그러나 ‘우연히’는 단어의 뜻 자체에서 인과가 없음이 밝혀진 것이다. 그래서 마음 편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일이다. 그리고 시에서 우연한 일의 내용은 ‘풀섶 아래 덩이’라는 변변찮은 주소를 가진 불개미들이 흙 한점 묻지 않게 개미 알들을 지켜내는 풍경에 대한 것이었다. 지렁이의 죽음이 새 삶으로 이어져 가는 과정에 대한 발견이다. 즉 가장 근본적인 삶의 모양에 대한 이야기였다. 비극적이고 불쾌한 모든 갑작스러운 일 이전에 자리하는 생의 신비, 흰 개미 알처럼 순백한 모양에서 시인은 희망을 보고 있었다. 의도를 가지고 보는 것이 아니라 우연히 스치는 눈길로 보고 있었다.


나는 갑자기의 삶을 살아왔다. 갑자기 대학을 졸업했고 갑자기 취업전선에 뛰어들어 돈 버는 사람이 되었다가 갑자기 군인이 되어 ‘여드름 투성이 소년’의 처지로 ‘풀 먹인 군복’을 입게 되었다. 그리고 ‘갑자기, 왜 사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순간도 여러 번 지나왔다. 갑자기 일어난 일들은 당황스럽지만 어찌할 수 없어 무력함을 키웠다. 시에서 ‘갑자기’는 이 모든 일들에 대한 시인의 해석이자 위로이기도 했다. 모든 것이 예비하기에는 힘든 순간임을, 당황해서 급하게 뛰는 심장의 옆에 다가와 속삭이며 그 박동을 가라앉히는 다정한 목소리였다.


그리고 오늘 같은 하루는 나의 우연한 하루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이 모든 갑작스러움 속에 때로 찾아오곤 하는 평화. 우연하기 때문에 영원히 반복할 능력은 누구에게도 없으나 찾아오고야 마는 그 장면, 그날이 오늘 같았다. 군의관에게 아픈 곳을 이야기하고, 책을 읽으며 좋은 문장을 기록하고, 가까운 사람들에게 전할 나의 소식을 적으며 나는 죽은 지렁이를 먹고 흰 개미알을 지키던 불개미처럼 살아있음의 순수한 즐거움을 누렸다. 아주 우연히, 한편으로는 필연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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