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고민상담 TV 프로그램 <무엇이든 물어보살>에서 화가 너무 많아진 여자 친구를 데리고 조언을 구하러 나온 남자의 사연이 소개되었다. 여자 친구는 사회 초년생으로, 입사한 회사에서 스트레스가 심해 시신경 혈관이 터질 정도였다고 했다. 어느 날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상사인 팀장에게 크게 화를 냈는데 그 결과가 꽤 만족스러웠던 듯했다. 문제는 화내는 것이 습관이 되어 이전보다 사소한 일들로, 다양한 사람들에게 화를 내게 된 것이었다. 화를 참는 게 힘들어진 것이다. 상담사 역의 연예인들은 출연자를 달래면서도 많이 참아주고 있을 주변 사람들을 위해 화를 조절하라는 요지의 조언을 해 주었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화나는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다. 부당하게 느껴지는 요구들은 기본이요 억울하게 누명을 쓰는 일도 종종 생긴다. 그때마다 바로잡기 위한 목소리를 내면 되지 않느냐고 쉽게 생각할 수 있으나 사회생활을 해 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즉각적인 해결책만을 생각하다간 또 다른 문제가 생긴다. TV 속 내담자는 화의 역치가 너무 낮아져 있었고 화내기의 즉각적인 효과에 중독된 듯했다. 균형을 맞출 필요가 있었다. 화는 유용하지만 시기적절하게 사용해야 하는 도구이다. 화에 사로잡혀 도구로써 사용하지 못하면 문제를 일으키게 될지도 모른다.
‘화’라는 유용한 도구를 잘 사용하기 위한 생각은 우습게도 ‘화기(火器)’라는 유용한 도구를 잘 사용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고민하던 날의 기억으로 이어졌다. 총을 쏘던 날의 기억이 떠올랐다는 말이다. 황당해 보여도 군인에게 이런 연상은 자연스러운 것이니 이해해 주어야 한다. 기억 속의 그날은 영점사격을 마치고 첫 실거리 사격을 나간 날이었다. 입소식날 총을 처음 받고 장난감 같다고 생각했던 것이 영점사격을 하며 조금 심각해진 직후였다.
영점 사격장에서 과녁을 향해 방아쇠를 당기면 터지는 화약 소리는 말 그대로 골을 울렸다. 해부학 책에 삽입된, 뇌척수액에 둘러싸인 뇌의 그림을 떠올리며 충격이 적절히 흡수되기를 바랐다. 귀마개를 하고 있어도 압력이 고막까지 전해졌다. 소리만 큰 것이 아니라 총을 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뜨거워지는 총신, 매캐한 화약냄새, 어깨를 밀어내는 반동은 총이 자신을 두려워하라고 전하는 메시지 같았다. 전쟁이 나면 누군가를 이 총으로 쏴야 한다고, 두꺼운 옷도 살도 철갑도 뚫도록 만들어졌다고 말하는 듯했다. 실제상황이라면 이보다 수십 배는 더 큰 소리와 눈과 코가 매울 화약 연기들이 곳곳에서 솟아날 것이었다.
그나마 영점사격은 원형의 과녁을 쏘는 사격에 불과했으므로, 나는 올림픽에서 보던 스포츠를 직접 경험한다는 생각으로 불안을 가라앉힐 수 있었다. 그러나 실거리 사격은 달랐다. 초단위로 등장했다가 사라지는 과녁들, 회차마다 거리가 바뀌는 과녁들을 상대하는 것에는 실전이 가정되어 있었다. 과녁 역시 군인의 상반신 형상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분명히 적을 상대한다는 기분으로 사격에 임해야 했다. 차례를 기다리는 동안, 높은 언덕 위에 있어 잘 보이지 않는 사격장에는 화약 터지는 소리가 천둥소리 같이 울렸다. 사격 대기자들의 얼굴은 긴장과 흥분, 걱정 등으로 상기되어있었다. 내 심장 또한 너무 크게 쿵쾅거려서 사격 중간에 쏜 총알 개수를 헷갈리는 건 아닐까 걱정스러울 정도였다.
나의 사격 결과는 처참했다. 나는 뭘 하고 있는지 정신도 못 차린 채 허둥지둥 사격을 마쳤다. 결과는 총 20발 중 10발 명중이었다. 사실 처음 몇 발을 쏘면서부터 감이 왔다. 화약이 터질 때마다 토끼처럼 깜짝깜짝 놀라 눈을 감았고 몸을 움찔거렸다. 실력은 나중에 꼭 기를 테니 운 좋게 합격 기준인 12발만 맞아달라는 생각으로 남은 사격에 임했다. 그러나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고 하지 않았는가. 나는 반타작으로 사격을 마쳤다.
사격장에서 내려오는 길에는 표정만으로 훈련병들의 합. 불 여부를 가릴 수 있었다. 합격의 기쁨을 숨기지 않는 이들과 불합의 슬픔을 겸연쩍은 웃음으로 숨기는 이들이 명확히 둘로 나뉘었다. 나는 그 두 그룹 바깥에서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은 한 사람이었다. 이 짓을 내일도 해야 한다니! 나에게는 사격이 문제가 아니었다. 내일도 산 넘고 물 건너 한 시간 반을 걸어왔다가 다시 돌아갈 것이 걱정이었다. 허락만 해준다면 나는 사격장에서 자고 가겠다고 의지 충만한 훈련병 행세도 할 수 있었다. 첫 사격 조의 발포 소리에 맞추어 기상해 자연스럽게 다음 사격을 준비하겠다는 계획도 세운 채였다.
사격 이후 나에게 총기에 대한 경외와 두려움은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다. 어떻게든 합격하겠다는 오기와 나에 대한 분노만이 남았다. 내일은 표적을 다 맞춰서 박살 내버리리라 하는 의지가 속에서 불탔다. 사격에 자질이 있어 보이는 훈련병을 붙잡고 팁을 전해 들으며 막사로 복귀했다. 아픈 손목을 무겁게 누르는 총을 받들고 막사로 돌아가는 길, 더 이상 총에 대한 공포와 책임감은 느껴지지 않았다. 내가 지워버렸다고 하는 편이 더 적합했다. 보충 교육을 피하고 주말다운 주말, 삶다운 삶을 얻어내기 위해 총은 완전한 나의 도구가 되어야 했다. 쓸데없는 감상을 불러일으키지 않는 한 몸이 되어야 했다. 배우 이병헌이 연기한 터미네이터 T1000 같은 감정 없는 병기가 되고자 했던 것이다.
일견 유용해 보이는 이 마취법에 대해 심보선 시인은 이렇게 말한다. 아래는 그의 시집 『슬픔이 없는 십오 초』 (문학과 지성사, 2008)에 수록된 시 <착각>의 일부이다.
깃발, 조국, 사창가, 유년의 골목길 내가 믿었던 혁명은 결코 오지 않으리 차라리 모호한 휴일의 일기예보를 믿겠네 지나가던 여우가 어깨를 다독여주며 말한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봐 그 모든 것들로부터 멀리 있는 너 또한 하찮아지지 않겠니? (…) 여기서부터 진실까지는 아득히 멀다 그것이 발정기처럼 뚜렷해질 때까지 나는 가야 한다 가난과 허기는 또 다른 일이고
시의 화자 ‘나’는 혁명을 꿈꿔온 사람이다. 그러나 어느 날 ‘내가 믿었던 혁명은 결코 오지 않으리’라는 깨달음과 마주한다. 화자는 회의적인 태도로 혁명보다 모호한 휴일의 일기예보가 더욱 믿을만하겠다고 독백한다. 그때 지나가던 여우가 화자의 어깨를 다독인다. ‘그 모든 것들로부터 멀리 있는 너 또한’ 하찮아질 것이라며 경고를 한다. 결코 오지 않을 혁명을 더는 믿지 않겠다고 다짐할 때, 혁명이 의미 없다고 여길 때, 자기 또한 하찮아지는 것이었다. 하찮지 않으려면, 작은 의미라도 지니려면, 이뤄지지 않을 혁명이라도 버려서는 안 된다. 잊어서는 안 된다. 시는 ‘그 모든 것들’에 가까이 있어야 한다.라고 나를 설득하는 듯했다.
마지막 연에서 볼 수 있듯 화자가 말하는 ‘혁명’은 진실을 추구하는 것이었다. 진실은 아득히 멀어 보이지 않을 뿐, 결코 오지 않을 것은 아니었다. 마지막에 나오는 ‘가난’과 ‘허기’는 시의 맨 처음에 등장하는 것인데, 시는 그 두 단어의 의미에 대해 혼란 을 느끼며 시작한다. 그리고 마침내 ‘가난과 허기는 또 다른 일’이 된다. 의심, 혼란이 해결되지 않아도 품고 가야 하는 일이 있음을 말하는 것 같았다. 비참할 정도로 낮은 확률이더라도 붙잡고 가야 하는 일이 있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하지 않으면 더 편리한 생각들이 많다. 화를 참으며 더 나은 해결책을 고민하는 것이 그렇고, 총의 무게를 느끼며 고민하는 것이 그랬다. 신경 쓰지 않으면 인생이 더 쉬워질지도 모른다. 신경 쓴다고 객관적으로 더 나은 결과를 낼 수 있으리라는 보장도 없다. 나는 이런 생각을 할 때면 늘 끝에 “하지만, 그러나”라는 말을 덧붙이게 된다. 지나가던 여우는 시인뿐 아니라 나의 마음도 툭 건드리고 갔다. “네가 버린 생각만큼 너도 하찮아지지 않겠니?” “보편적 편리로 구성된 삶을 너의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니?” 진실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이 끝까지 붙잡은 것 자체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시에서 말하듯 진실은 현재로부터 아득하게 멀다. 순수하게 사격에 집중하며 다른 생각들을 잠재우는 것과, 총이 갖는 책임과 무게를 떠올리며 극복하는 과정을 거치는 것. 둘 중에 무엇이 옳다고는 할 수 없다. 중요한 것은 내가 후자에 어떤 의미가 있음을 느꼈다는 것이다. 적어도 나의 첫걸음은 그렇게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진실은 내가 느낀 의미를 지켜가는 동안 조금씩 빛을 내기 시작했다. 나는 그것이 ‘발정기처럼 뚜렷’ 해질 때까지, 나의 원초적인 본능 같은 것이 될 때까지 가야 했다. 아득하게 먼 곳에 이르는 방법은 단순했다. 가던 걸음 그대로 한 걸음 더 내딛는 것. 그리고 오래 반복하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