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쳇바퀴에서 포장도로로

훈련소의 날시(詩): 19일 차

by 정오

훈련소의 날시(詩): 19일 차


21. 쳇바퀴에서 포장도로로


다람쥐 쳇바퀴 돌듯 한다는 속담이 있다. 다람쥐에서 햄스터로 주체를 바꿔줘야 할 것 같은 이 속담은 여전히 다양한 영역에서 사용되고 있다. 미성년 학생들은 학교 학원 집으로 반복되는 자기 일상을 쳇바퀴에 비유하며 한탄한다. 대학생들은 자유를 누리는 것도 1~2년 남짓, 강의, 알바, 취준으로 요약되는 삶에 뛰어든다. 그렇게 고대하던 직장인이 되면 곡소리는 더 커진다. 이때는 일상의 패턴 수준이 아니라 자기 삶 자체가 쳇바퀴에 빠진 것 같다는 인식마저 하게 된다. 인생이 쳇바퀴 돌리는 것 같다는 말은 일상의 변화 없음에 대한 한탄이자 꿈이 있어도 현실과 타협해야 하는 슬픈 패배자들의 절규이다.

쳇바퀴 돌리기의 비극들 중 기본적인 첫 번째는 언제나 제자리에 있다는 것이다. 이름하야 ‘제자리걸음’ 비극이다. 동명의 노래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이모작 하듯 부지런하게 매년 두 번 이상의 성화를 내며 살아온 사람들이 주로 겪는 비극이다. 아무리 달려도 목적지에는 다다를 수 없고 똑같은 매일을 살아야 한다는 비극이다. 이 비극은 성장하는 느낌을 삶의 원동력으로 삼던 이들로부터 뛸 의지를 앗아가곤 한다.

두 번째 비극은 첫 번째에 비해 꼭꼭 숨어 있어 잘 보이지 않는다. 두 번째 비극은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쳇바퀴에 적응해갈 때쯤 불쑥 찾아온다. 바로 ‘너 아니어도 돼’ 비극이다. 1차원적인 작명 센스를 비난하지는 말아달라. 뻔뻔함의 가면을 쓴 이 비극에 이만한 이름은 없다. 말 그대로 내가 하고 있는 일은 누구라도 대체할 수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드는 것이다.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나만이 가진 고유한 가치가 반영되어있지 않다는 자각이다. 내가 못하겠다고 버티다간 어느새 다른 사람이 그 자리에 들어와 열심히 달리는 것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


마지막 세 번째 비극은 가장 심각한 것으로, 첫 번째와 두 번째 비극의 합으로 찾아온다. ‘그것만이 내 세상’ 비극이다. 첫 번째와 마찬가지로 동명의 노래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쳇바퀴를 돌리며 제자리걸음을 하는 상태, 내가 아니어도 어떻게든 돌아가는 그 자리를 나의 한계로 인식하게 되는 비극이다. 패기와 도전정신은 사라지고 패배감이 정신을 좀먹는다. 이에 비하면 앞의 두 가지는 비극이라고 느껴지지 않을 수준이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격언의 아주 안 좋은 예시가 되는 비극이다.


그렇다면 이 쳇바퀴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무엇일까? 쳇바퀴를 벗어날 방법을 찾으려면 먼저 나의 삶이 언제 쳇바퀴 돌듯 하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반복되는 일상이 있다고 해서 삶이 쳇바퀴 돌리는 것으로 인식되지는 않는다. 저녁에는 자고 아침이면 눈 뜨는 삶은 반복적임에도 사람들은 이를 쳇바퀴라 부르거나 벗어나려 하지 않는다. 또 연애 초기의 두 남녀가 퇴근시간만 되면 급히 서로를 만나는 몇 달간의 일정(그 이후에는 점차 줄어들 것이다.)을 쳇바퀴 돌듯 산다고 하지는 않는다. 자연스럽고 자발적인 동기로 반복적인 삶을 사는 것은 쳇바퀴 돌듯 하는 삶이 아닌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햄스터들이 쳇바퀴를 돌리는 것을 강제적이고 지루한 삶의 양상에 비유하는 것은 귀여운 햄스터 신사 숙녀 분들께 꽤나 실례일지도 모른다. 그들은 폭발하는 도파민을 느끼며 즐겁게 뛰고 있을지도 모르니 말이다.) 직장 상사, 관습, 고정관념 등 무언가의 강제에 의한 반복적 삶이 쳇바퀴 돌듯 사는 삶이 된다. 정리하자면, 어떤 마음으로 삶에 임하고 있는지가 중요하다는 고리타분한 결론이다.


그러나 고리타분하다고 해서 무용한 것은 아니다. 강제적인 환경에 있을 지라도 성장할 수 있는 요소를 찾고 자발적인 목표를 세워 도전하다 보면 새로운 길이 보이기도 한다. 스스로 쳇바퀴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쳇바퀴 속에서 우리는 자신의 사소한 변화와 발전에 손뼉 쳐주는 다정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나는 이 이야기를 입대를 앞두고 있거나 군에서 적응 중인 모든 이들에게 해주고 싶다. 누군가는 반드시 돌려야 하는 국방이라는 쳇바퀴에 차례를 정해 번갈아가며 오르는 우리 군인들이 비극을 경험하지 않았으면 한다.


분단국가에서 살아가며 의무 복무와 징병제 속에서 군인들은 ‘제자리걸음’ 비극과 ‘너 아니어도 돼’ 비극에 자발적으로 뛰어든다. 가끔 ‘그것만이 내 세상’ 비극에 처해 직업군인으로 전향하는 안타까운 친구들도 있었다. 물론 농담이다. 나는 그들의 신념과 의지를 존중한다. 우리는 쳇바퀴 돌듯 사는 삶을 부정적으로 바라볼 때에도 그런 삶을 사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존중의 태도를 갖출 필요가 있다. 쳇바퀴에 몸을 실은 젊은 군인들은 멋지다. 거기서 자신만의 새로운 길을 만들어가는 군인들은 더욱 멋지다.


나는 두 번째 실거리 사격에서 여유롭게 합격했다. 나의 진보가 느껴졌다. 절치부심하고 올라간 사격장에서 나는 20발 중 16발을 명중했다. 준수한 성적이었다. 심지어 운이 좋았던 것이 아니라 확실히 조준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전날 쉬는 시간마다 사격 통과자들을 붙잡고 조언을 구하고, 머릿속으로 수십 번 상상훈련을 한 결과였다. 내가 생각해본 적 없는 방향이었지만 나는 성장하고 있었다. K2 소총 정도는 쏠 줄 알아야 대한민국 남자라고 할 수 있지 않겠는가. 평생 적을 쏠 일이 없기를 바라더라도, 사격장에서 폼 한번 잡고 자랑할 수 있는 이야기는 되지 않겠는가. 어찌어찌, 삐걱거리는 하루의 태엽들로 돌아가던 일상에 기름칠이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통제받으며 돌아가던 나의 쳇바퀴가 촤르륵 펼쳐지며 직선 주로가 되는 순간이었다.


임솔아 시인의 시집 괴괴한 날씨와 착한 사람들』(문학과 지성사, 2017)에는 <다음 돌>이라는 시가 실려있다. 아래는 시의 일부이다.

지하철의 다음 칸에도 내가 앉아있다. 문을 열면 거기에 앉아 있던 내가 그다음 칸 문을 연다.(…)
같은 길을 반복해서 걸으면 길을 잃었다는 느낌이 든다.
내일도 내일이 내일이니까 내일은 생각할 필요가 없다. 검은 돌을 주워 검은 돌밭에 던진다.

나의 하루는 지하철 다음칸에 앉은 나를 대체하는 정도의 의미를 지니고, 내일도 내일은 내일이고, 내가 던지는 검은 돌은 검은 돌밭에 쌓여 눈에 띄지도 않는 하루들이 지나간다. 제자리걸음은 계속 나를 같은 자리에 있게 해서 길을 잃었다는 느낌을 준다. 삶의 무의미, 허무주의를 노래하는 시는 많기에, 이 시 또한 그렇게 읽기 쉽다. 그러나 임솔아 시인의 시집 전반에서 느껴지는 초라한 따스함을 보았을 때 가장 중요한 부분은 마지막 문장일 것 같았다. ‘검은 돌을 주워 검은 돌밭에 던진다’


지하철 다음칸, 내일의 내일 같은 것은 수평적으로 이동하는 것들이다. 빠르게 스쳐가면 변함없이 이어지는 것으로 보인다. 자리를 한 칸 옮긴다고 해서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러나 제목의 ‘다음 돌’, 검은 돌밭에 던진 ‘검은 돌’은 부피를 가진다. 검은 돌 밭에 쌓이는 검은 돌은 잘 보이지 않겠지만 언젠가 차오르는 부피로써 변화를 드러낼 것이다. 모든 것이 반복되는 무엇이지만 유일하게 돌을 던지는 행위에는 쌓임이 있다. 이것은 더 이상 무의미한 반복을 말하고 있지 않는다. 느리지만 확실한 변화가 있을 것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내일의 내가 그저 오늘을 대체하는, 쳇바퀴 도는 하루를 살지 않으려면 돌이라도 던져야 한다. 작은 변화, 작은 성취들이 우리를 비극으로부터 지켜줄 수 있다. 다정한 시인의 눈으로 자신의 조그만 성장을 돌봐주면 쳇바퀴 같던 일상이 쭉 펴진 포장도로가 되기도 할 것이다. 취향에 따라서는 수풀 우거진 산책로로, 가로수길로, 해변의 도로로도 뻗어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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