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정확도와 정밀도

훈련소의 날시(詩): 16일 차

by 정오

훈련소의 날시(詩): 16일 차


18. 정확도와 정밀도


정확도와 정밀도는 실험이나 통계 관련 강의를 들으면 늘 초반에 강조되는 개념이었다. 일상 대화에서는 정확하다는 말로 두 개념을 뭉뚱그려 사용하지만 둘은 뚜렷하게 구분되는 개념이다. 정확도가 높다는 것은 기준(목표) 값에 가까운 결과를 낸다는 의미이고 정밀도가 높다는 것은 반복적이고 재현가능한 일정한 결과를 낸다는 의미이다. 예를 들어 과녁판에 찍힌 점들이 흩어져 있더라도 과녁의 중앙에 가깝게 흩어져 있다면 정밀도가 낮지만 정확도는 높다고 말한다. 반대로 과녁의 중앙과 멀리 있더라도 점들이 모여있다면 정확도는 낮지만 정밀도가 높은 것이다.


두 개념에 대한 내용이 나오면 교수님들은 항상 군대를 다녀온 사람이 있는지부터 조사하곤 하셨다. 그도 그럴것이, 수업 자료에는 언제나 과녁판이 사진이 있었다. “군필들은 익숙하지?” 라는 질문으로 시작된 수업은 과녁판에 찍힌 점을 보며 어떤 것이 정확한 것이고 어떤 것이 정밀한 것인지 구분하는 식으로 진행되었다. 시간이 지나 나는 대학을 졸업했고. 원래 꿈꾸던 대학원 진학은 포기했다. 보통의 직장인으로 지내게 된 나에게 정확도와 정밀도는 알고 있을 뿐 큰 의미는 없는 개념이 되었다.


그렇게 잊고 있던 정확도와 정밀도에 대한 이야기를 참 오랜만에 영점사격 사전 교육에서 듣게 되었다. 영점사격이란 총으로 목표물을 조준할 때 사용하는 가늠자가 총 끝의 가늠쇠와 일직선으로 잘 맞추어져 있는지 확인하는 사격이다. 각자의 총이 사격할 준비가 되었는지 확인하는 과정이아. 영점사격에서 정확하지 않은 사격을 하는 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애초에 정확성이 높지 않을 것을 예상하기 때문에 시행하는 것이 영점사격이었다. 사격결과를 보고 가늠자 위치를 조정하면 정확성은 금방 올라간다. 문제는 정밀하지 않은 사격을 하는 것이다.


호흡이나 견착(총을 고정하는 자세), 팔에 힘이 들어가는 정도가 달라지면 총알이 맞는 위치가 제각각으로 흩어진다. 이런 실수는 정밀하지 못한 결과를 만들어낸다. 이는 사격술에 포함된 과목들을 숙지하지 못했다는 뜻이었다. "처음부터 정확할 수는 없다.", "영점사격은 정확하게 쏘는 것이 목표가 아니다.", "지금까지 배운 사격술에 근거해서 정밀한 사격만 할 수 있으면 통과할 수 있다." 나는 교육을 하는 조교의 말들이 왠지 위로처럼 들린다는 생각을 했다.


정확도와 정밀도는 언젠가 모두 높여야 하는 과제이다. 하지만 선행되어야 할 것은 높은 정밀도였다. 사격에 있어 정밀도를 높인다는 것은 내가 나의 미세한 움직임들에 집중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내가 호흡을 배로 하고 있는지 가슴으로 하고 있는지, 호흡을 멈출때는 어느정도 공기를 들이마신 상태에서 멈추는지, 방아쇠를 당기는 손에는 어느정도의 힘을 주고 있는지, 개머리판을 어깨에 붙일 때 어깨는 뒤로 쭉 빠지는지 중간쯤에 멈춰있는지 등등 모든 상황에 주의를 기울여야 가능한 일이었다. 정밀하다는 것은 결국 나 자신에게 충실하다는 의미였다. 정밀도가 우선되야 한다는 것은 내가 나를 알기 전에 목표만을 쫓아서는 안된다는 경고였다.


우리가 살면서 행하는 많은 일들의 이유는 아마도 행복일 것이다. 삶의 목표가 행복에 있다고 해도 과장이 아니다. 우리 삶의 과녁판의 중앙에는 행복이 동그랗게 위치하고 있다. 우리가 선택의 순간마다 쏜 총알들은 아주 느리게 이동하다가 어느날 과녁 어딘가에 자국을 남긴다. 나는 그동안 여러가지 성취를 통해 행복을 느껴왔다. 공부를 열심히 하기도 하고 집단의 대표가 되어보기도 했다. 돈을 열심히 모으고 열심히 모은만큼 열심히 써보기도 했다. 남들보다 다양한 경험을 해보려고 애썼다. 그러나 새로운 경험들은 나를 행복하게 하다가도 때로 알 수 없는 이유로 나를 우울하게 만들곤 했다. 성취만큼 행복하지 않다고 느낄 때도 많았다. 열심히 무언가를 이루며 행복의 과녁판에 총알을 쏴 왔지만 총알을 갯수를 늘려 우연히 표적에 맞추는 경우를 늘렸을 뿐이었다. 나는 과녁판에 새겨진 총알자국에 집중해왔고, 총을 쏘는 순간에 집중했던 경우는 드물었다. 가끔씩 명중했으나 영원할 것이라 장담할 수 없었다.


대학을 졸업한 후 나는 대학원 진학을 포기하고 바로 사회로 나왔다. 대학원 진학을 포기한 이유는 글을 쓰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주변 친구들이 다 돈을 벌고 있는데 백수로 글만 쓰겠다고 할 수는 없어 직장은 구해야 했다. 직장을 다니기 시작하니 여러가지 핑계가 자연스럽게 생겨나 글을 쓰겠다는 열정은 조금씩 사그라들었다. 그렇다고 삶이 무너지거나 불행했던 적은 없었다. 이전과 다를 것 없이 무난했다. 그렇게 지내다가 군대에 왔다. 처음에는 스트레스가 많았지만 어느정도 적응하고 나자 마음에 여유가 생겼다. 남는 시간을 독서와 글쓰기에 집중하면서 비로소 나는 무엇이 나에게 가장 큰 행복을 주는지 깨달았다. 나의 생각들이 잘 정리되어 좋은 표현들과 함께 완성된 한편의 글이 될때 나는 행복했다. 높은 확률로 과녁의 중앙에 뚫리는 사격이었다. 다양한 장르의 글을 시도해 보았고 시를 쓸 때가 가장 좋았다. 글쓰기는 대체로 나를 안정적인 상태에 있게 했다.


행복의 과녁판을 조준할 때 정확하다는 것은 ‘내가 지금 알고 있는 행복의 기준에 맞다’는 것이고 정밀하다는 것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정밀하게 전에 정확하기만을 바란다면 미성숙한 행복의 기준, 대중적인 행복의 기준만을 노리게 된다. 그러나 대중적인 행복의 기준이 나에게 맞을 것이라고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정확하고 싶은 욕구만으로 살아가면 나의 좁은 시야가 넓어질 수 없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아갈수록 행복의 중심 원의 크기가 점점 커 보이기 시작한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아는 것은 때로 내가 지금 알고있는 ‘나’이상이 있음을 인정하는 일이다. 나의 배경지식 밖에 있는 것들을 마음에 있는 열정으로 도전하는 것이다. 한동안 방송에서 유행처럼 돌고 지금은 정착한 문화중에 ‘부캐’문화가 있다. 개그맨이 가수가 되기도 했고 화가가 된 가수의 이야기도 있었다. 여러가지 이유로 억눌러온 자신의 모습을 발산하는 부캐 열풍은 자기가 자신에게 영감이 되며 삶의 새로운 가치를 깨우치도록 했다.


이런 현상은 사실 한참 전에도 있었던 것이다. 대표적인 부캐 소유자로 포르투갈의 모더니즘 시인 페르난두 페소아(Fernando Pessoa)가 떠오른다. 그는 내가 아는 한 가장 부캐의 목적을 잘 살린 사람이다. 페소아는 생전에 다양한 이명으로 글을 썼다. 이명들은 페소아가 자기를 숨기 위해 지어낸 이름이라기 보다 자기 안에 사는 또다른 삶에 가까웠다. 그중 가장 유명한 이름은 이명들의 스승이라 불리는 알베르트 카에이루 이다. 아래는 알베르트 카에이루라는 이름으로 쓴 시 <양 떼를 지키는 사람> 연작 중 1편 일부 내용이다.

나는 한 번도 양을 쳐 본 적이 없지만,
쳐 본 것이나 다름없다
내 영혼은 목동과도 같아서,
바람과 태양을 알고
계절들과 손잡고 다닌다
따라가고 또 바라보러

내게는 야망도 야욕도 없다
시인이 되는 건 나의 야망이 아니다
그건 내가 홀로 있는 방식

그는 한번도 양을 쳐 본 적 없지만 쳐 본 것이나 다름 없다며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이야기한다. 시는 나에게 새로운 시도에 대한 가능성과 자신감을 열어주었다. 시의 내용을 따라 “나는 한권의 책을 내본 적도 없지만 작가나 다름 없다. 내 영혼은 시인과 같아서 세상 모든 사물과 생명에 사랑 어린 눈빛을 건낸다.” 같은 생각을 가능하게 했다.


또한 그는 시인이 되는 것에 대해 그것은 자신의 야망이 아니라 '홀로 있는 방식'이라고 말한다. 작가가 작품을 창작할 때는 멋진 작품을 남기고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남기고 싶은 욕심을 갖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그에게 시의 의미는 소박하고 담백하다. 홀로 있을 수만 있다면 그는 어떤 상황에서도 시를 쓸 것이다. 행위의 의미를 자신에 맞추어 완벽하게 정의하는 깊은 자기성찰이 느껴지는 시였다.


나는 영점사격을 겨우 통과했다. 조교는 불합격 통보를 내렸지만 최종 점검관은 실거리 사격에서는 조금만 더 신경쓰라며 합격점을 주었다. 세발씩 세번을 쏘는 영점사격에서 세발 중 두발이 모여있으면 꼭 한발이 다른곳에 날아가있었다. 아직은 불안정한 호흡이 탓이었다. 나를 잘 알고 그렇게 행동하며 살아가려 해도, 가끔씩 외부의 시선과 고정관념의 압박에 거칠어지는 나의 숨과 꼭 닮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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