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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오 Sep 17. 2023

오늘을 산다는 것

1일 차

 입대 당일 아침, 평소와 다름없이 느지막이 잠에서 깼다. 휴대전화로 시간을 확인하니 오전 8시였다. 얇은 흰색 커튼 너머로 날이 밝은 것이 느껴졌다. 창문 틈으로 들어오는 바람에 커튼이 펄럭일 때마다 햇빛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쉽게 잠에서 깨지 못하는 나를 머리 쓰다듬어 깨우는 사려 깊은 손길 같았다. 얼굴을 볼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느끼셨는지 어머니는 먼저 일어나 나갈 준비를 마치고 계셨다. 나도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나 간단히 샤워하고 가장 편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방을 정리하고 나가기 직전에 이미 수십 번을 확인한 가방을 다시 한번 뒤지며 준비물을 확인했다. 가장 중요한 신분증, 입영통지서부터 선크림, 로션, 평소 먹던 약, 무릎 보호대, 여자 친구가 챙겨준 시계까지. 애초에 훈련병에게 허락되는 물품이 많지 않은 것도 있었지만 정말 소소한 짐이었다. 여기에 이제 밖에 나가서 우표와 편지지를 사면 준비는 끝난다. 나를 증명하는 데 필요한 물건, 나를 지켜줄 수 있는 최소한의 물건, 그리고 나의 소식을 전하기 위한 물건까지어쩌면 우표와 편지지가 유일한 사치품인 짐을 꾸렸다.


 13시 30분까지 입영 심사대에 도착해야 하는 일정이었다. 마지막 점심을 가족들과 함께 하라는 배려 것이다. 우리는 10시에 맞춰 을 여는 중국집을 찾아 아침 겸 점심으로 짜장면을 먹었다. 초, 중, 고 졸업식마다 연례행사처럼 먹었던 음식이었다. 부모님 학창 시절에는 짜장면이 매우 비싼 음식이었기에 특별한 날에만 먹을 수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언제든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되었지만, 그런 시대를 살아온 부모님이 사주시는 짜장면에는 자식에게 가장 큰 기쁨을 주고 싶은 마음이 들어있었다.


 아버지께 마지막 연락을 드릴 겸 식사 후 우리는 카페를 찾아 들어갔다. 영상통화로 연결된 아버지는 무척이나 바쁘셨다. 손님들 틈바구니에서 간간 나의 말에 대답하시며 아무렇지 않 잘 다녀오라고 말씀하셨다. 어머니 역시 형과 나를 데리고 세상 돌아가는 일, 종교 그리고 학문 등에 대한 대화를 이어갔다. 금기인 것처럼 몇 시간 뒤면 가야 할 군대에 관해서는 쉽게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괜히 마지막 분위기가 우울해지는 것은 누구도 바라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나 역시 이전에 군대 이야기가 나오면 최대한 유쾌하고 빨리, 그 주제를 넘겨버리곤 했다. 슬픔을 미룬다고 이별이 미뤄지는 것은 아닌데, 우리는 항상 눈물을 참고 걱정, 염려를 말하는 것을 참는다. 이별의 순간에 모두 쏟아내고, 미처 다 쏟아내지 못한 것을 생각하며 뒤늦게 슬퍼하기도 한다. 즐거운 대화 속에서 나는 벌써 이별의 순간을 생각하고 있었다.


 입영 심사대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많은 사람들로 주차장이 꽉 차 있었다. 주차할 곳이 없어 주변을 맴돌다가, 형은 차를 몰고 먼저 나가야 해서 미리 인사를 했다. 한참을 같이 있었으면서 막상 마지막 인사를 제대로 하지 못하니 아쉬움이 컸다. 어머니와 나는 다른 사람들 다 하는 대로 훈련소 앞에서 사진도 함께 찍고, 적당한 대화를 주고받으며 작별 인사를 해야 할 장소까지 걸어갔다. 걷다 보니 머리를 짧게 민 아이들이 가족들과 마지막으로 포옹한 후 한 명씩 한 명씩 걸어가는 길이 보였다. 이제 가봐야겠다고 나는 어머니에게 말했다. 막막한 기분에 눈물이 날 것 같았지만, 알아서 잘 가겠다고, 걱정하지 마시라고, 뒤돌아보지 않고 쭉 갈 테니 돌아가시라고 말했다. 어머니는 알겠다고 걱정 안 한다고 말씀하시면서도 눈시울을 적시셨다. 


 얼마 걷지 않아 길이 꺾이는 곳 앞에서 나는 어머니의 뒷모습이 보고 싶어 졌다. 잘 가고 계실까 돌아본 자리에는 내 걸음을 뒤쫓는 어머니의 바쁜 눈이 그대로 있었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어머니는 어린 친구들이 서로를 부르는 목소리보다 훨씬 큰 목소리로 “정오야 잘하고 와!”소리치셨다. 그래, 잘 다녀와야지. 한번 더 다짐하며 이번에는 주저하지 않고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5주간 함께 생활할 동기들을 만나고 막사로 가기까지 행정적인 분류 절차와 보안을 위한 여러 검사 과정들을 거쳤다.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던 시기라 건강에 대한 검사도 많았다. 입대 신청을 한 병무청 주소별로 인원이 분류되었고 개중에 남은 인원들은 지역별로 남는 인원이 섞여 소대가 완성되었다. 내가 그런 경우였고 나는 26 연대 3중대 2소대로 배치되었다. 몇 번씩 따라 복창하며 외우려 했지만 금방 외워지지 않았다. 쏟아지는 정보가 너무 많고 환경적 변화가 커서인지 알려주는 것들이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훈련병들을 통제하는 저 조교들은 대체 몇 살일까 같은, 앞으로의 내 생활에 도움이 되지 않을 생각들 자 들었다. 잡생각들과 불만이 고개를 들었다가, 정신없이 이끌려가는 상황에 묻혀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저녁에는 조교들이 기본적인 보급품들을 지급해 줬다. 개인별로 크기를 조사해서 군복, 군화, 생활복, 운동화, 슬리퍼 등 필수적인 물품들을 나누어 주었다. 내 발 크기는 245로 남자 중에서는 정말 작은 편이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245 크기의 신발은 준비되어 있지 않다. 군화는 어떻게든 발 크기에 맞는 것을 받으라고 들었었다. 크기가 맞지 않는 군화를 대충 신었다가 발톱이 상하거나 족저근막염으로 고생한 사례는 심심찮게 들을 수 있었다. 분위기에 따르지 말고 필요한 것은 모두 요구해라.라는 어느 군필자의 조언에 따라 조금 번거롭더라도, 눈에 조금 띄더라도 기다리기로 했다.


 그러나 훈련소에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훨씬 많았다. 개인 맞춤, 요구사항 등은 입을 옷, 신을 신발 사이즈 이외의 요소에 적용될 수 없었다. 저녁 식사를 하며 그런 생각은 더욱 커졌다. 나는 급식소의 분위기를 싫어해서 대학을 다닐 때도 학식을 먹지 않았다. 식사가 더욱 즐겁고 의미 있는 행위이길 바라서, 정해진 시간을 지키기 위해 배를 채우기 위해 하는 식사를 싫어했다. 훈련소에서는 어쩔 수 없이 출발하는 시간, 자리에 앉는 시간, 다시 집합해야 하는 시간까지 모두 통제받으며 식사를 했다. 친절은 당연히 없는 것이고 나를 주장하기도 어려운 분위기 속에서 모두의 머리 위에 ‘X 됐다.’하는 생각이 담긴 말풍선이 떠 있는 듯했다.


 이곳이 나에게 어떤 유익을 줄 수 있을까, 나는 이곳을 어떻게 추억하게 될까, 첫인상이 이렇게 좋지 않은데 과연 앞으로는 괜찮아질까. 민하며 조교 통제에 따라 돌아다니다 보니 첫째 날이 벌써 저물고 있었다. 저녁 점호를 위해 침대 위에서 양반다리를 하고 자세를 고쳐 앉았다. 나를 포함한 16명의 훈련병이 함께 생활하게 된 생활관의 이층 침대 위에 앉아 낮은 천장을 바라보았다. 쭉 뻗은 손 끝 너머 높은 하늘은 자유로운 상상을 가능하게 지만, 고개만 쳐들어도 닿을 만큼 낮은 천장은 모든 사고의 폭을 좁히는 듯했다. 


 아무런 상상을 할 수 없을 때가 있다. 눈앞의 현실이 너무 압도적이고 버거울 때가 그렇다. 미래에 대한 낙관적인 생각은 불가능하고, 머릿속 줄넘기 줄이 자꾸 발 끝에 걸리기만 할 때, 우리는 무슨 생각을 해야 할까. 이 순간 내가 겨우 떠올릴 수 있었던 것은 아침에 가족들과 나누었던 대화, 훈련소로 향하는 차 안에서 울먹거리며 받았던 여자친구의 영상통화 내용 같은 것들이었다. 어쩌면 우리가 현재를 살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도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좋은 과거를 만들기 위해서.


 현실이 버겁고 손 뻗어볼 미래조차 없을지라도, 한 번 더 조우하고 싶은 과거가 있다는 사실. 나아가고 싶은 길이 있을 때만큼이나 돌아가고 싶은 길이 있다는 것은 살고 싶은 이유가 된다. 먼 길을 떠나기 전 몸과 마음을 뉘어 쉼을 얻었던 그곳. 먼 길을 떠나고 있는 우리의 중심에는 그곳이 있을지도 모른다. 별 모양으로 뻗어나가는 빛나는 우리네 삶의 중심. 우리는 다시 돌아오기도 하고 돌아갈 날을 꿈꾸며 걷기도 한다. 그러나 디아스포라의 마음으로 떠나온 우리는 새로운 곳에 정착하기도 하며 따스한 중심을 새로 만들기도 해야 한다. 중심들은 이어져 별자리가 된다. 어제와 오늘과 내일은 이렇게 어울리며 아름다운 밤 하늘을 장식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새로운 만남으로 이어지며 확장되는 우주 이전에 말이다. 

 

 점호를 마치고 자리에 누워 눈을 감았다. 16명의 낯선 사람들이 들이쉬고 내쉬는 숨소리, 이부자리를 고치며 부스럭거리는 소리, 뭔가를 쓰는 듯 사각거리는 소리 등 사연 있는 소리들이 생활관을 채웠다. 불안이 자리할 공간마저 없는 빽빽한 이곳은 5주간 생활하게 될 좁은 방. 함께 누운 훈련병들은 모두 같은 생각을 하며 누워 있었지만 서서히 다른 미래로 흩어질 것이다. 각자의 과거를 만들며 이 순간이 언젠가 돌아가고 싶은 길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느끼는 날도 있을 것이다. 한동안 머물러야 한다면 이곳 역시 하나의 중심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훈련소의 밤은 아주 어두워서, 하늘에는 별이 참 많이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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