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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오 Sep 28. 2023

흰 꽃나무 이름이 알고 싶다.

2일차

 산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특징이 있다. 심성이 고우며 성품이 바르고 학업 성적이 우수하며 대인관계가 원만하다는 것이다. 


 맞다. 내 소망 사항이다.


 나는 산책을 매우 좋아하는 사람이다. 산책 예찬론자를 자처하기엔 운동화 끈이 짧지만(글을 쓰는 지금은 6년차가 되었다.), 내가 느낀 산책의 좋은 점을 여기저기 설파하고 다니곤 했다. 식후 산책이 혈당을 떨어뜨려 체중 감량에 도움이 된다든지, 고민거리가 있을 때 동네를 한 바퀴 걷고 오면 새롭게 생각할 기분이 든다든지 하는 것들이었다. 특히 연애를 꿈꾸는 친구들에게는 상대방과 뜬금없더라도 가볍게 정감 가는 산책을 할 것을 권유하곤 했다. 이는 실제 절친한 친구의 경험담에 기반했다는 점에서 권위를 얻기도 했다.


 사실 처음부터 산책을 좋아하진 않았다. 나는 밥을 먹고 침대에 바로 눕는 것을 무엇보다 좋아했다. 물론 지금도 좋아하지만 몇가지 제약이 해결되기 전에는 바로 누울 수 없다. 체중 증가에 영향을 주지 않아야 하고, 소화에 무리가 없어야 하며, 역류성 식도염을 재발시키지 않아야 한다. 좋아하는 음식에 약간의 술을 곁들인 후 바로 침대에 눕는 것 만큼 큰 행복이 어디 있을까? 이런 마음으로 얻게 된 역류성 식도염으로 한동안 고생하고 나서야 의도적으로 식사 후에 걷는 시간을 갖기 시작했다. 그러나 단순히 건강에 대한 염려만이 산책을 시작한 이유는 아니었다.


 글 쓰는 사람 중에는 산책을 즐기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들은 적이 있었다. 실제로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의 작품 중에는 '산책'을 소재로 한 것들이 더러 있다. 김연수 소설가의 <산책하는 이들의 다섯 가지 즐거움>, 김행숙 시인의 <산책하는 72가지 방법> 이 대표적이다. 물론 경험하지 않은 것도 글로 쓰는 것이 작가라지만, 산책을 즐기지 않고서는 쓸 수 없었을 글이라고 나는 믿는다. 산책하다 본 풍경같은 것이 쌓여 영감이 되고 글이 되었을 것이다. 이런 막연한 동경이 내가 산책을 시작하게 된 계기였다. 사색으로 가득한 나의 산책이 수많은 영감을 제공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었다.


 사색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산책에도 분명한 숙련도가 존재했다. 나는 초보 산책가였으니 그냥 걷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음악을 들으며 아무런 생각 없이 걷고 안 가본 길을 신기해하며 기웃거리는 것이 다였다. 심심할 때는 전화를 하며 걷기도 했다. 산책이 나의 고차원적인 사유에 도움이 되지 못하고 일종의 멍 때리기, 운동의 수단이 되는 것이 언짢았으나 이것대로 유익함이 있어서 꾸준히 걸어 다녔다.


 주에 2~3회 씩 한달을 다니다 보니 길에 있는 다양한 사물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버려진 TV, 세탁기, 가로등, 비닐봉지, 마트, 물 웅덩이, 고양이, 연인들을 눈으로 좇다가 시야에서 벗어난 후에는 마음으로 좇으며 각자의 이야기를 상상했다. 내가 기대했던 종류의 사색은 아니었지만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떠오를 때면 즐거웠다. 산책은 그렇게 나의 즐거움 중의 하나가 되었다. 산책의 시작은 내 안에서 출발한 욕심이었으나, 결과적으로 산책은 나를 내려놓고 주변을 살피는 시간이 되었다. 이제는 산책을 취미라고 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가장 즐거운 산책은 두말할 것 없이 여자 친구와 함께 하는 산책이었다. 여자 친구는 나의 좋은 산책 메이트였다. 주로 고민거리를 나누었고, 말 없이 손만 잡고 걸을 때도 많았다.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아도 좋을 유일한 산책이었다. 온전한 행복의 손을 잡고 걷는 것 자체로 만족스러웠다. 마주 잡은 손에 가장 큰 확신이 들어있었으니, 답을 찾아 고민하며 걷는 일은 오히려 어울리지 않았다.


 나는 산책하며 눈에 띄는 것들을 손으로 짚어가며 여자 친구와 대화하는 것을 좋아했다. 벚꽃이 예쁘게 핀 봄날에는 산책하며 꽃 이야기를 하고 지나가는 고양이가 예뻤던 날은 고양이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야기는 진지해지지도 끊기지도 않으며 인스타그램에서 본 귀여운 강아지, 함께 갔던 겨울의 동물원, 여자친구의 손에 이끌려 갔던 놀이공원, 그리고 생애 처음 보았던 불꽃놀이와 내가 왜 그 순간을 사랑하는지까지 이어졌다. 함께 하는 시간에 함께 했던 추억들이 어울리며 산책은 더욱 아름다워졌다. 


 그러나 이 소박한 취미마저도 입대하기 전에나 가능한 일이었다.


 훈련소 첫 주에는 각종 검사와 물품 지급이 이루어진다. 훈련소가 나의 신체적, 정신적 건강과 신원을 확인한 후, 훈련병 자격을 주면 그에 필요한 물품들을 받는 것이다. 또한, 정신교육을 비롯하여 각종 기본 제식 교육들을 시행한다. “군기가 바짝 들었다.”할 때 그 군기가 무엇인지를 배우는 시간이다.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일과를 한다. 규칙적 생활을 한다는 느낌이 좋아 보일 수도 있지만 이제 막 훈련소에 들어온 이들에게는 모두 버거울 뿐이다. 아침에 자리에서 일어나면 그 후로는 취침 전까지 침대에 누울 수 있는 시간은 없다. 모든 이동은 분대 혹은 소대 단위로 실시되어 출발하고 도착할 때마다 인원을 점검한다. 누구 하나가 밥을 늦게 먹어서 밖에 오래 서 있게 되면 모두의 미움을 산다. 최대한 폐가 되지 않도록 신속하게 움직이며 꼼꼼하게 자기를 점검해야 한다.


 이렇게 생활 방식이 정형화됨에 따라 생활 반경 역시 제한된다. 첫 주간은 코로나 탓에 모든 점호가 실내에서 시행되었기에 연병장(훈련을 위한 일종의 운동장)에도 나가지 않았다. 강의실에 모여 교육을 받고, 밥 먹고 샤워하는 동선이 전부였다. 그 이외에는 막사 안에서 하루 내내 앉아 있어야 했다.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상상은 할 수도 없었다. 막사에는 창마다 철망이 붙어 있었고 밖에 나가는 일과가 끝나면 외부로 출입하는 문 자체가 폐쇄되었다.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기 위해 엄격하게 통제한다는 것을 머리로는 이해했지만, 답답하고 불편하다는 생각은 계속해서 들었다. 게다가 2~3인이 드시 함께 다녀야 한다는 전우조 단위의 생활은 적응하기가 힘들었다. 문 열면 바로 앞에 있는 화장실에 갈 때도 아직 이름도 외우지 못한 동기들에게 양해를 구해 같이 가야 했다. 이런 상황이니 산책은 할 수 있을 리가 만무다. 길과 걸을 다리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든 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나의 취미생활이 완벽하게 불가능해진 것이다.


 이 갑갑한 생활 중에 그래도 산책이라고 부를만한 게 하나 있었다. 신체검사를 하기 해 지났던 길은 산책로로 손색이 없었다. 며칠에 걸쳐 받은 신체검사는 막사(병사들의 숙소)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시행되었다. 첫날 가족들이 모였던 입영 심사대 쪽으로 가는 듯했다. 조교들의 통제에 따라 몇백 명의 인원이 무엇을 하게 될지도 자세히 모른 채 걸었다. 꽤 먼 거리였지만 막사가 있는 교육 연대를 빠져나와 사회라고 불릴만한 그 중간 지대를 걷는 것은 즐거웠다.


 훈련소가 위치하는 '논산'이 논과 산밖에 없어서 논산이라고 하는 말이 있는데 사실 틀린 말이다. 한자를 보면 논산의 산은 '뫼 산'이 맞지만 논은 논밭 할 때 쓰이는 한자를 쓰고 있지 않다. 음차 해서 쓴 한자일 뿐이다. 그러나 왜 그런 오해가 있는지 알 수 있을 정도로 길에는 논이 참 많았다. 5월 중순 모내기를 할 시기가 되었는지 모들이 여기저기에 모여 있었다. 머리를 위로 질끈 올려 묶은 어린아이들이 잔뜩 모인 유치원 같아 보기 흐뭇한 마음이 들었다.


 평화로운 풍경이었다. 풀밭과 논 사이로 난 길을 지나 아직 키 작은 나무들이 좌우로 늘어선 길을 걸었다. 좌우 걸음을 맞춰라 열 간격을 맞춰라 등등 여러 통제가 있었지만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그저 서울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자연 한복판에 있다는 것이 좋아서 걸었다. 이런 길을 매일 다닐 수 있다면 군 생활에도 위로는 있는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늦은 봄에 피는 꽃들이 초록 잎사귀 사이로 눈에 띄었다. 희고 자그마한 꽃들이 아기 볼에 묻은 밥풀처럼 나뭇가지마다 매달려 흔들리고 있었다.


 내가 이런 작은 즐거움들을 느끼고 있다고, 여자 친구에게 편지를 써 보내야지 다짐하다가 흰 꽃나무의 이름을 알고 싶어 졌다. 사진을 찍어서 보낼 수도 없고 설명하기 위해 자세히 들여다보고 싶어도 열을 맞추어 스치듯 지나가야만 하니 어찌할 수가 없었다. 어떤 모양의 꽃인지, 내가 이 꽃이 왜 아름답다고 생각했는지 전하고 싶었다. 이름을 알아서 보냈다면 여자 친구가 검색해보고 예쁘다고, 꽃말까지 알려줬을 것이다. 같은 것을 바라보고 있을 때 경험하고 나눌 수 있는 행복이 얼마나 큰 것인지 생각하며 수없이 많은 꽃송이를 뒤로 보내며 걸었다. 


 같은 것을 보고, 같거나 때로는 다른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우리의 일상이었다. 나의 이야기와 너의 이야기를 우리의 이야기로 만들 때까지 예정되지 않은 길을 오래 걷는 것이 우리가 사랑한 산책이었다. 그러나 함께하는 일상이란 몸이 옆에 있을 때만 가능한 것은 아니다. 꽃 이름을 많이 알아두는 것처럼 사소한 일일지라도 함께한다는 것은 공유할 수 있는 것을 꾸준히 늘려가는 것이겠다. 그날 나는 혼자 걸어온 산책의 길에 너를 초대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소망했다. 손을 잡고 있지 않더라도 가장 가까운 마음의 친밀함으로 항상 최고의 산책이 우리와 함께하길 기도했다.


 나는 여전히 그때 본 흰 꽃나무의 이름을 알지 못한다. 한국의 야생화를 소개해놓은 책을 찾아보기도 했지만 내 기억이 선명하지 않아 찾을 수가 없었다. 대신 지금부터라도 잘 기억하자는 마음으로 이름 모르는 꽃들을 보면 찾아보는 습관이 생겼다. 기술이 발달해서 사진을 직접 검색할 수도 있는 세상이라 이름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더욱 가까운 마음으로 내가 보고 느끼는 것들을 나누고 싶은 마음이다. 


 우리의 삶은 어쩌면 구체적인 산책이겠다. 나로부터 출발해 바깥을 알아가는 여정이겠다. 함께 한다는 것은 앞으로 같은 산책로를 걷자는 약속이겠다. 잠시 다른 길을 걸을 때는 다시 만나는 날을 기대하며 나눌 수 있을만큼 기억해두고, 나누는 일이겠다. 그날을 준비하며 오늘을 걷는다. 삶이나 산책 같은 것은 이제는 낡은 비유지만, 멋진 추억이 담긴 헌 옷 처럼 때로 꺼내 입어보며 그 먼지덮인 포근함에 몸을 맞춰보고도 싶은 날들도 있는 거니까. 가볍게. 산책하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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