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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오 Sep 30. 2023

밤을 주시하는 사람

3일차

 훈련소는 앞으로의 군생활을 축약해서 가르치는 곳이다. 대략 16개월의 군생활을 5주로 줄여놓은 코스이니 매일 새로운 것을 익혀야 한다. 그래서인지, 훈련소의 수면 시간은 22시부터 다음날 06시 까지로 충분히 길었음에도 피로는 매일 축적되었다. 육체적인 피로 뿐 아니라 심리적인 피로도 큰 원인었던 것 같다. 새롭기만 할 뿐 기대되지 않는 일정이 나를 기다리고 있으니 아침을 미루고 싶을 이유는 차고 넘쳤다. 


 익숙해지기 힘든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으면 오늘 밤부터 불침번을 서야 한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도 듣게 된다. 온갖 검사와 쏟아지는 정보 속에 지쳐가던 3일 차, 어리바리한 기분으로 새벽 한 시의 불침번을 서게 되었다. 군생활이라고 부를만한 첫 번째 일이었다.


 불침번이란 야간에 일어날지 모르는 비상사태를 경계하고 대비하는 인원이다. 비상사태라고 하면 탈영, 외부인의 침입, 화재 등 거창한 것들을 생각하기 쉬운데, 언제나 경계하고 있다는 것이 중요할 뿐 그런 류의 비상사태는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따라서 불침번의 주된 업무는 총 인원을 확인하고 건강상의 문제가 있는 환자가 있지는 않은지 살피는 일이다. 책임이 막중해 보이고 조금 살벌하게 들리기도 하는 '불침번'이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는 다정한 업무다.


 훈련소에서 강조하는 불침번의 특징적인 역할이 있는데, 야간에 화장실에 가는 인원의 소요 시간을 확인하는 것이다. 소변의 경우에는 1분, 대변의 경우에는 5분으로 기준을 정해두고 그 이상 화장실에 머무르면 특이사항이 있는지 점검을 해야 한다. 훈련소에서 생활하다 보면 긴장할 일이 많고 수분 섭취가 불규칙해 변비를 겪는 병사가 많다. 5분은 좀 짧지 않은가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실제로 두세 번씩 대변 칸을 오가며 문을 두드려 생존신고를 받는 일이 흔했다. 하지만 분명히 필요한 일이었다. 의지의 대상이 옆에 있었던 사회와는 달리 훈련소는 외로운 곳이기에 마음이 약한 친구라면 언제든 충동에 약해질 수 있는 곳이다.


 훈련소의 불침번은 1시간씩 교대로 근무를 섰다. 다들 22시의 불침번을 선호했는데, 1시간 늦게 잠들더라도 통잠을 잘 수 있기 때문이었다. 새벽에 깼다가 다시 잠드는 일은 고역이었다. 보통 근무 15분 전에 깨서 준비를 하고, 불침번이 끝나도 바로 누우면 잠이 오는 것이 아니다 보니 30분정도를 뒤척였다. 결국 1시간45분이상 수면 시간이 줄어드는 것이다. 그래서 불침번을 선 날은 다음날까지 졸음이 계속되었다. 가장 슬펐던 점은 불침번이 단회성 이벤트가 아니라 꽤나 자주 찾아오는 정기적 일정이라는 점이었다.


 불침번 근무 시작 15분 전에 이전 시간 담당 불침번이 나를 깨웠다. 15분이면 여유롭게 준비하고 갈 수 있겠다 생각했지만 아직 군복을 입고 군화를 신는 과정이 익숙하지 않아 시간이 꽤 걸렸다. 잠이 덜 깨 몽롱한 것도 한몫했다. 게다가 주변 친구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게 어둠 속에서 옷을 갈아입기란 보통 조심해야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때로 물건을 떨어뜨리거나 침대에 부딪혀 이층 침대 아래층 사는 친구의 항의성 헛기침을 듣기도 했다. 가까스로 시간에 맞춰 소변도 보고 근무 투입 보고를 한 뒤 지정된 위치로 이동했다.


 훈련소 주변에는 높은 건물이 없어서 창 밖의 풍경은 밤 하늘로 가득 차 있었다. 막사 건물의 조명만 꺼져도 어둠은 쉽게 찾아다. 짙은 어둠은 주변의 사물을 모두 삼킨 후 소리에까지 그 탐욕의 손을 뻗어, 창 밖과 복도는 온통 고요한 풍경이었다. 간간이 보이는 가로등을 제외하고 빛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새벽에 깨어 몽롱했던 정신은 근무에 투입되고 시간이 지나며 점차 맑아졌다. 나는 새벽의 조명가게에 홀로 켜진 전구처럼 적막하고 명료하게 자리에 섰다. 


 이내 잡생각들이 날파리처럼 달려들다. 잡생각들은 산만하게 춤추며 나의 신경을 분산시켰다. 나는 다음 날의 일정을 생각하다가 생활관 문 너머로 들려온 잠꼬대 소리에 꿈의 내용을 상상했다. 자대에서 불침번을 설 때면 전역 이후의 삶을 상상하기만 해도 시간이 훌쩍 갔는데 훈련소에서는 당장 내일도 그려지지 않았기에, 무슨 생각을 해야 할지가 막막다. ‘나는 누구인가?’, ‘무엇을 하고 살아야 하는가?’ 같은 질문에 쌓인 먼지를 겸연쩍게 털어내 보았지만 헛수고였다. 몇 년이고 우려내야 하는 질문을 컵라면처럼 급히 끓어 먹으려고 하니 만족스러운 대답이 나올 리 만무했다. 멋진 생각이 들 때를 대비해서 펜과 작은 수첩을 몰래 챙겨 나왔는데 멋진 생각은커녕 몇 분 이상 같은 주제의 생각을 이어가기도 쉽지 않았다. 모래사장에 쓴 글씨가 때마다 밀려오는 파도에 지워지듯 짧은 생각들이 재잘대다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이 정적인 소란에 적응하기 위해 나는 나를 관망하는 것을 택했다. 조급한 마음과 생각을 내려놓는 것이 먼저였다. 생각과 질문들에 끌려다니지 않기 위해, 그들이 내 마음에 위치하는 장소와 얼기설기 얽힌 그 주변의 상황을 멀리서 바라보았다. 우선 문제 그 자체를 살라고, 답은 삶에서 나올 것이라 했던 릴케의 편지를 떠올렸다. 이윽고 새로운 고요가 찾아왔다. 더 이상 꼬리를 물지 않는 생각들이 별처럼 제자리에 머물러 조용히 빛다. 평화롭고 아늑한 순간이었다. 여전히 정리되지 않은 모든 것들이 하나처럼 느껴졌다. 


 밤이 오면 우리는 시간을 상실한다. 동이 터 오기 전까지의 시간은 어둠의 반복이다. 어둠은 찾아와 머무르는 것일 수도 있지만, 멈추지 않고 영원히 계속되는 것일 수도 있다. 시시각각 변하는 낮의 풍경을 살다가 마주하는 어떠한 변화도 없는 공간이 밤이다. 깊은 밤에는 명암도 없고 오직 검은 풍경과 고요 뿐이지만 이것이 아무것도 없음을 의미하진 않는다. 아무것도 없는 곳에는 오히려 많은 것들이 제 자리를 만드려 달려든다. 그러나 한 가지 가득 찬 무언가가 있을때 다른 것들은 들어오지 못하고, 마침내 고요가 찾아온다. 


 그러나 모두가 알다시피 우리의 삶에 영원은 없고 밤의 시간도 결국은 흘러간다. 영원처럼 느껴지던 고요의 순간은 동이 트는 찰나에 사라진다. 무슨 말을 했는데, 무슨 생각을 했는데, 어떤 음성을 들었고 어떤 깨달음을 얻었는데 하다가도 모든것이 꿈의 문법처럼 사라진다. 두 발 뻗고 쉴 수 있는 생각의 끝이 어디었는지는 확실치 않고 끝의 존재를 알았을 때 얻었던 안도감만이 남는다. 그때의 마음은 아쉬움보다는 그리움이고 슬픔보다는 쓸쓸함이다. 하지만 밤은 또 온다. 내가 그 밤에 눈을 뜨고 있을지, 한 번의 상실이 아파 눈을 감고 보내버릴지는 나에게 달린 일이다.


 불침번은 영어로 'nightwatch'라고 한다. 밤에 눈을 뜨고 감시한다 라는 의미를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는 단어이지만 나에게는 '밤을 주시하는 사람'으로 읽혔다. 시간이 아닌 대상으로서 밤을 바라보는 이들이 불침번이 되는 것이다. 고요 속에서 알 수 없는 어둠을 주시하는 이의 마음은 어떤 것일까? 우리는 모두는 각자의 밤을 가진 적이 있기에 그 마음을 알고 있다. 덧없이 사라져 가는 것에 그리움을 심어 두고 때마다 들춰보는 이들. 우리들. 훈련소의 밤은 나에게 갑자기 찾아온 슬픈 운명이었지만, 때로는 내가 직접 밤을 찾아 나서는 날도 올 것임을 나는 막연하게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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